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천진난만하던 아이… “엄마, 무섭고 아파” 공포의 눈빛만

못된 어른에 짓밟힌 7세 여아의 꿈
사소한 일에도 항상 깔깔대던 명랑한 아이였다. 도대체 어두운 구석이라곤 없던 아이였다. 하지만 성폭행을 당한 뒤 웃음을 잃었다. 연신 눈물을 흘리고 “무섭고 아프다”는 말만 했다. 30일 새벽 잠을 자다 이불에 싸인 채 끌려 가 성폭행을 당한 A양이 이날 오후 수술에서 깨어나서 한 말은 “엄마, 아파”라는 짧은 한마디였다.

엄마의 회초리를 맞으면서도 애교를 부리며 때리지 말라던 장난기어린 모습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A양은 5시간에 걸친 대수술을 받았다. 엄마가 “괜찮냐”고 묻자 A양은 엉엉 울었다. 성폭행의 공포가 떠올라서였을까. 엄마는 눈물을 감추며 “딸이 이렇게 우는 모습은 처음”이라고 했다.

A양은 명랑하고 똘똘하기로 소문난 아이였다. 초등학교의 담임교사는 “A양은 발표를 잘하고 항상 웃는 밝은 아이였다”고 말했다. 하교 때 거의 날마다 교실에 남아 친구들이 버린 휴지를 줍고 책걸상을 정리하는 모범생이기도 했다. 올 여름방학을 앞두고 초등학교 입학 후 처음 치른 지필고사에서는 ‘우수’를 받을 정도로 공부도 썩 잘했다.

전남 나주 초등학교 어린이 성폭행 사건의 용의자 고모(23)씨가 31일 경찰에 붙잡혀 수사본부가 꾸려진 나주경찰서로 압송되는 과정에서 한 시민이 용의자를 갑자기 공격하자 경찰이 용의자를 감싸고 있다.
나주=연합뉴스
경찰이 범인을 잡는 데도 A양의 정확한 기억력은 결정적 단서가 됐다. 범인 고종석은 31일 순천에서 경찰에 검거될 때만 해도 범행을 부인했다. 경찰이 A양이 알려준 범인의 옷색깔과 옷차림을 들이대자 고종석은 그제야 성폭행 사실을 시인했다. 이명호 나주경찰서장은 “A양이 범행 후 범인의 옷차림을 정확히 말해줘 검거에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초등학교 생활기록부에 기재된 A양의 장래 꿈은 간호사다. 넉넉지 않은 가정에서 자란 때문인지 남의 어려운 처지를 잘 이해하고 남을 돕겠다는 의지가 강했다고 한다. 이웃주민 김모씨는 “다리가 불편하거나 눈이 잘 보이지 않는 동네 할머니를 보면 그냥 지나치지 않고 꼭 부축해 주곤 했다”고 했다.

‘백의의 천사가 되겠다’는 A양의 꿈은 찟겨질 위기에 놓였다. A양의 가정형편은 넉넉한 편이 아니다. 부모는 지난해 7월부터 방 두 칸이 딸린 분식가게를 열었지만 7개월 만인 올 2월 장사를 접어야 했다. 수입이 줄면서 언니, 오빠, 막내동생을 두고 있는 A양의 용돈은 늘 부족했다. 그래도 친구들과 잘 어울렸다. 또래친구들은 쾌활하고 배려하는 고운 마음을 가진 A양을 좋아했다. 어머니는 “어려운 처지에서도 꿋꿋하게 자라준 딸이 항상 고마웠다”며 또 눈물을 흘렸다.

A양 부모는 걱정이 태산이다. 아직 어려 아무것도 모르지만 자라면서 성폭행을 당했다는 사실을 어떻게 감당할까 생각하면 가슴이 무너져 내린다고 했다. 30일 수술실에서 만난 A양의 부모는 “아이가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에는 아이를 지켜주지 못한 후회가 묻어나 있었다. 딸의 일이 외부에 알려지는 것도 꺼렸다. A양 부모와 친척들은 “모른 척해 주면 안 되겠느냐”고 했다.
나쁜 어른의 저주받을 짓. 고운 꿈만 꿔야 할 7세 어린 소녀의 가슴에는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 깊게 파였다.

나주=한현묵 기자 hanshim@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