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올 시즌은 대한항공의 V-리그 첫 챔프전 우승의 적기로 보였다. 군 복무를 마친 국가대표 주전 세터 한선수와 V-리그 3년차를 맞은 세계 최고 테크니션 공격수 마이클 산체스의 시너지 효과가 큰 주목을 받았다. 여기에 김학민-신영수-곽승석-정지석으로 이어지는 토종 레프트 라인은 7개 구단 통틀어 최강으로 평가받았다.
시즌 도중 산체스의 부상 이탈 등 예상치 못한 변수가 있었지만, 대체 외국인 선수 파벨 모로즈가 파이팅 넘치는 세리머니로 팀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4라운드를 마칠 때까지만 해도 선두 OK저축은행에 승점 1 뒤진 2위(승점 49, 16승8패)에 오르며 선두 등극도 가능해 보였다.
그러나 5라운드 들어 상황이 급변했다. 잦은 범실과 조직력 난조에 발목이 잡히며 5연패의 늪에 빠졌다. 불과 열흘 전만 해도 창단 첫 포스트시즌 진출 좌절을 걱정하던 삼성화재(승점 52, 18승12패)에도 추월당해 4위(승점 52, 17승13패)까지 뒤처졌다. 선두그룹의 OK저축은행(승점 65), 현대캐피탈(승점 63)과의 격차는 크게 벌어져 사실상 정규시즌 우승은 물 건너갔고, 이젠 포스트시즌 진출 자체를 고민해야 할 처지다.
대한항공의 이런 부진은 구단 프런트가 현장 일선에 지나치게 개입하는 이른바 ‘프런트 배구’의 예고된 비극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대한항공은 구단 고위 관계자가 현장 일선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는 김 감독의 리더십이 선수단 전체를 장악하기에 쉽지 않았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그렇게 우승에 대한 강박과 반대로 부진이 계속 되던 대한항공은 5라운드에 곪았던 상처가 터졌다. 지난달 27일 수원 한국전력전에서 1-3으로 패하자 구단 고위 관계자가 코트에 도열한 선수단과 김 감독에게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격앙된 김 감독은 양복 재킷을 집어던졌다. 불협화음이 공개된 장소에서 고스란히 노출됐고 결국 이 장면은 현실이 돼 김 감독이 옷을 벗었다. V-리그 출범 후 대한항공을 이끈 5명의 감독 중 김 감독을 비롯해 문용관, 진준택, 신영철 감독까지 시즌 도중 옷을 벗었다. 과연 팀 분위기 쇄신은 감독 교체라는 카드밖에 없는 걸까.
이제 대한항공은 장광균 감독대행이 팀을 맡는다. 장 감독대행 체제에서의 첫 경기는 15일 현대캐피탈전. 현대캐피탈은 현재 12연승을 달리고 있는 V-리그 최강팀이라 사령탑 교체의 효과를 바로 보기엔 결코 쉽지 않은 상황이다. 2003년 대한항공에 입단한 장 감독대행은 현역 시절 대한항공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주장을 맡으며 비범한 리더십을 뽐낸 바 있다. 현재 주축선수들과도 선수 시절을 함께한 장 감독대행의 ‘형님 리더십’이 벼랑 끝에 몰린 대한항공호를 기사회생시킬 수 있을까.
남정훈 기자 ch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