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림화산(風林火山). 손자병법에 나오는 말이다. 상황파악은 숲이나 산처럼 침착하게 하되, 행동이 필요한 시기에는 바람처럼 신속하고 불처럼 맹렬하게 해야 한다는 뜻이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15일 금융시장점검회의에서 유서 깊은 이 사자성어를 인용했다. 시장상황이 어려워지고 투자심리가 과도하게 위축되면 비상대응계획(컨틴전시 플랜)을 과감히 사용할 것이라고 밝히는 대목에서다. 임 위원장은 “풍림화산의 자세로 상황을 냉정하고 침착하게 주시하면서 필요한 시점에 정책수단을 과감하고 신속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 둘 것”이라고 밝혔다. 금융불안이 증폭될 경우 시장개입에 나설 것임을 분명히 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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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룡 금융위원장(왼쪽 두번째)이 15일 서울 중구 금융위원회에서 금융시장점검회의를 주재하며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최근 글로벌 증시의 변동성 확대에도 국내 증시는 주요국 증시보다 하락 폭이 작고, 상대적으로 저평가돼 있는 만큼 앞으로 상승 잠재력이 어느 시장보다 크다고 강조한 점도 같은 맥락이다. 임 위원장은 “각국의 금융시장이 불확실성의 영향하에서 조기에 안정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투자자들이 차분하고 냉정한 자세를 가져줄 것을 당부했다.
임 위원장은 비상대응계획에 대해 “정부는 시장 변동성 확대에 대비해 투자심리 안정, 매수 여력 확대, 시장안정 등을 위한 비상조치 등 정책 대안을 마련해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금융위는 구체적 내용에 대해선 함구했다. “특수한 상황이 닥쳤을 때 어떤 대처를 할지 미리 공개하는 것은 국제 금융시장에 우리나라의 패를 보여주는 것과 마찬가지인 데다가 그 자체로 시장이 왜곡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금융권에선 금융당국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나 2011년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 때 단행한 조치들이 다시 등장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당시 정부는 한국거래소, 한국예탁결제원, 증권협회, 자산운용협회 등이 5000억원을 출자해 증시안정공동펀드를 조성해 운용하도록 한 바 있다. 또 국민연금, 우정사업본부 등 연기금의 주식 매수를 독려하고 공매도를 일시 제한하기도 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비상대응계획은 금리, 주가, 환율 등의 변동성과 낙폭을 감안해 각 부서가 매뉴얼을 만들어 관리하고 있다”며 “이 매뉴얼을 기초로 국제금융시장의 상황과 분위기를 감안해 금융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임 위원장은 특히 “거래소와 협회는 시장변동성을 높이거나 투자자 신뢰를 저해하는 행위를 하지 않도록 업계 자율적인 규율을 강화해 주기 바란다”며 시장 참가자의 책임 있는 행동을 당부하기도 했다.
금융감독원도 이날 양현근 금감원 부원장보 주재로 5개 시중은행 자금담당 부행장과 시장전문가를 불러 긴급 외화유동성 상황점검회의를 열고 최근 국내외 금융시장 여건과 은행의 외화자금 상황을 진단했다. 점검 결과 지난 1월 말 현재 국내은행의 3개월 외화유동성 비율은 108.1%로 충분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잔존 만기 3개월 이내 외화자산을 3개월 이내 외화부채로 나눈 외화유동성 비율이 지도기준인 85%를 넘으면 합격선으로 간주한다. 최근 국내은행을 상대로 위험상황을 가정해 실시한 외화유동성 스트레스 테스트에서도 모든 국내은행이 과거 금융위기와 비슷한 수준의 충격을 3개월 이상 견딜 수 있는 것으로 평가됐다고 금감원은 전했다.
최근 위기설이 대두하고 있는 유럽계 은행과 관련해 국내 금융회사가 가진 위험노출액(대출·유가증권·지급보증 합계) 규모는 총 74억달러(약 9조원)로 집계됐다. 이는 전체 대외 위험노출액의 5.5% 수준에 불과하고 건전성도 양호한 편이라고 금감원은 평가했다.
박세준 기자 3ju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