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김현주의 일상 톡톡] 취업관문 통과? 결혼·집마련 관문은 어쩌려구요

"결혼이라는 또 다른 장벽이 기다리고 있었네요"
어렵사리 취업관문을 돌파한 청년세대는 결혼이라는 ‘높은 문턱’ 앞에서 또 다시 좌절합니다. 가족·친구·지인 등에게 축복받아야 할 결혼임에도 돈 문제라는 녹록하지 않은 현실 때문인데요. 직장생활을 하면서부터 결혼을 생각해 알뜰히 자금을 모으지만, 치솟는 물가를 감당해 내긴 없습니다. 신혼집을 구하기 위해 발품과 손품 등을 팔아보지만 이미 전세매물이 씨가 마른데다, 그나마 나온 물건의 가격은 치솟아 제대로 된 주택을 찾기 어려운 현실인데요. 예물·예복·신혼여행 비용까지 생각하면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옵니다. 대한민국 신혼부부들의 결혼자금 실태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1. 서울 종로구에 사는 주부 김모(62)씨는 지난해 11월 아들을 장가 보내면서 마음 고생을 심하게 했다. 결혼자금이 부족해 아들이 신혼집을 제대로 마련하지 못하는 것을 지켜만 봐야 했기 때문. 김씨는 "내가 가진 건 지금 살고 있는 집 한채뿐인데, 당장 이 집을 팔고 지하셋방으로 이사를 할 순 없었다"고 울먹였다.

#2. 경기 수원시에 거주하는 박모(63)씨는 오는 10월 결혼할 아들 최모(35)씨를 위해 보유하고 있던 수도권의 한 오피스텔을 팔기로 했다. 부모의 도움 없이는 사실상 신혼집을 구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 문제는 최씨의 반응이었다. 그는 "직장이 서울 서부권인 양천구 목동이라 경기 남부지역에서 출퇴근하기 어렵다"면서 "부모님 명의의 주택으로 담보대출을 받아 서울 시내 아파트를 원한다"고 밝혔다. 이에 박씨는 "결혼자금 문제로 갑자기 돌변한 아들이 마치 딴 사람처럼, 남 같이 느껴진다"며 "30년 넘게 고생해 가면서 어렵게 키웠는데 배신감마저 든다"고 토로했다.

◆신혼집 마련, '부모 vs 자식' 주요 갈등 요인

위의 사례처럼 신혼집 마련을 놓고 부모와 자식 간 크고 작은 다툼이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대한민국 신혼부부들은 결혼 비용으로 얼마를 생각하고 있을까.

한국 대표 웨딩컨설팅 ‘듀오웨드’에서 최근 2년 내 결혼한 신혼부부 1000명을 대상으로 신혼집 마련 비용 등 결혼 자금을 조사한 '2016 결혼비용 실태 보고서'를 보면, 평균 결혼비용은 2억7420만원으로 전년 대비 3622만원(15.2%) 증가했다.

신혼부부 결혼자금 용도별 금액은 △주택 1억9174만원 △예식장 2081만원 △웨딩패키지 344만원 △예물 1826만원 △예단 1832만원 △혼수용품 1628만원 △신혼여행 535만원이었다.

신혼주택 자금은 전국 평균 1억9174만원으로, 전체 결혼 비용의 69.9%를 차지했다. 지난해 조사액(1억6835만원)보다 13.9%(2339만원) 늘었다.

◆신혼주택 자금, 학력·소득에 비례…나이에 반비례

주택 자금은 나이와 반비례하고, 학력과 소득에 비례했다. 연령별로는 △20대 2억537만원 △30대 1억8961만원 △40대 1억8305만원으로 젊을수록 주택자금이 많이 들었다. 학력별로는 △고졸 이하 1억7574만원 △대졸(재학) 1억8580만원 △대학원(재학) 2억4640만원이었다.

연 소득별로는 △‘2000만원 미만’ 1억4077만원 △‘2000만~3000만원 미만’ 1억7078만원 △‘3000만~4000만원 미만’ 1억7778만원 △‘4000만~5000만원 미만’ 1억9306만원 △‘5000만원 이상’ 2억4951만원이었다.

주택 자금을 제외한 결혼 비용은 총 8246만원이었다. 예식장과 웨딩패키지(스튜디오·드레스·메이크업) 등 예식 비용은 2425만원이며 예물·예단·혼수·신혼여행을 포함한 예식 외 비용은 5821만원이다. 예식 비용과 예식 외 비용은 약 3대7이었다. 이중에서도 예식장 비용은 2081만원(25.2%)으로 가장 많은 금액을 차지했다.

남녀 결혼 비용 분담률은 63%(男)대 37%(女)였다. 전체 결혼 비용 2억7420만원(주택 포함) 중에서 남성은 1억7275만원, 여성은 1억145만원을 부담한 셈이다. 남성은 전년(1억5231만원) 대비 13.4%, 여성은 전년(8567만원) 대비 18.4% 증가했다. 지난해와 비교하면 신부 결혼 비용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모든 결혼자금을 지역별로 비교하면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가 컸다. 전체 결혼 비용은 수도권(2억9410만원)이 지방(2억5692만원)보다 3718만원(14.5%)이나 더 많이 사용했다. 주택비용은 수도권(2억387만원)이 지방(1억8123만원)보다 12.5%(2264만원) 더 지출한 것으로 조사됐다.

◆결혼 비용 분담률, 男 63% vs 女 37%

예물 비용은 수도권 2044만원, 지방 1637만원으로 지역간 가장 큰 편차(24.9%)를 보였다. 이어 △혼수(21.1%) △웨딩패키지(17.9%) △예단(17.4%) 순으로 지역 간 차이가 났다.

박수경 듀오 대표는 "결혼 준비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경제적 자금 마련이 아닌, 두 사람의 결혼에 대한 소신 있는 합의와 주인인식"이라며 "진정한 '혼(婚)테크'란 언제든 사라질 수 있는 물질적인 것이 아닌 정신적인 것에 있음을 잊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결혼 시기가 늦어지는 것에 대해 남성은 결혼비용을, 여성은 출산과 양육 부담을 가장 큰 원인으로 생각했다.

인구보건복지협회(이하 인구협회)가 최근 공개한 저출산 인식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남성 응답자 333명 가운데 39.5%와 여성 응답자 1090명 가운데 34.2%가 늦은 결혼의 원인으로 각각 "결혼 비용이 너무 비싸서"와 "출산·양육 부담이 커서"를 꼽았다.

◆출산·양육 부담에 결혼 미룬다

혼인율 상승에 가장 필요한 정책으로는 남녀 모두 '출산 비용 절감·육아 지원 정책'(남자 44.1%·여자 51.1%)을 가장 많이 택했다. 일자리 지원·고용안전(남자 26.4%·여자 25.1%), 신혼부부 주택지원(남자 26.1%·여자 20.5%)이 그 뒤를 이었다.

결혼 준비 비용으로는 남성이 6624만원, 여성이 3465만원을 사용했다고 답했다. 남성이 여성보다 2배 정도 더 지출하는 것이다.

결혼 비용 마련 방법은 여성의 47.5%가 '내가 모은 돈으로 준비한다'고 답했다. 남성의 39.3%는 '모은 돈과 부모님 지원으로 결혼한다'고 말했다.

결혼 비용 중 아깝다고 생각한 것에 대해선 여성이 '예물·예단'(35.2%)을 가장 많이 택했다. 남성은 '스드메(스튜디오·메이크업·드레스) 비용(35.9%)을 가장 많이 선택했다.

인구협회는 "결혼 비용과 출산·양육 부담이 만혼화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며 "결혼 친화적인 사회분위기 조성을 위해 고비용 결혼문화를 개선하고, 신혼부부를 대상으로 한 주택공급 활성화 등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