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단순한 논리가 한국에서는 너무나 복잡한 문제다. 창조적 파괴는 좀처럼 작동하지 않는다. 방해하는 세력이 너무 많다. 경영자(CEO)는 실적을 부풀린다. 대규모 적자가 흑자로 둔갑한다. 이른바 분식회계다. 이를 감사하는 회계법인은 눈뜬 장님이다. 조작된 성적표에 ‘적정’이라는 확인도장을 찍어준다. 애당초 회계법인은 일감을 수주한 ‘을’일 뿐이다. 을이 ‘갑’을 감사하는 건 한계가 있는 일이다.
류순열 선임기자 |
창조적 파괴를 방해하는 세력으로는 정치권력이 최강이다. 입으로는 개혁을 외치지만 미루고 또 미룬다. 표를 의식한 태만이고 직무유기다. 결국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막지 못한다. 이명박정부에서 저축은행 사태가 그랬고, 지금 기업 구조조정도 그렇다. 경고등은 진작에 들어왔지만 미루고 미뤄 사태를 키웠다.
와중에 낙하산 투하는 어김없다. 앞날이 어찌될지 모를 대우조선에 정권 인수위 출신 인사를 내리꽂으려 했다. 구조조정의 진정성을 의심케 하고 신뢰를 허무는 일이다. 이 판국에서도 전리품을 살뜰히 챙기려 한 정권 실세의 상황 인식이 놀라울 따름이다. 요샛말로 멘탈 갑이다. “안 된다”는 직언을 아무도 하지 않은 것일까.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노코멘트”라며 입을 닫았다. 하긴 대우조선 사장부터 최대주주인 산업은행도 어쩌지 못하는 자리다. 홍기택 전 산은 회장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대우조선 사장은 산업은행보다 더 큰 배경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대마불사의 유혹도 가공할 방해 요인이다. 덩치를 키워놓으면 못 죽일 거라는 발상으로 국민경제를 볼모 삼은 물귀신 작전을 벌인다. 신규자금 4조5000억원을 지원받고도 결국 법정관리로 간 STX조선에 그런 혐의가 어른거린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강덕수 회장의 STX조선을 두고 험구를 쏟아냈는데, 이유는 “말도 안 되는 저가 수주를 엄청나게 했다”는 것이다. “자기들 살려고 부실이 뻔한데도 몸집을 마구 불려놓았다”는 원망이다.
그렇게 사방이 적이다. 자본주의를 유지시키는 창조적 파괴는 정치권력의 탐욕과 태만, CEO의 분식회계, 대마불사의 유혹, 회계법인의 겉핥기 감사, 낙하산 행렬에 포위됐다.
이게 전부가 아니다. 바닥엔 보다 구조적인 방해꾼이 있다. 부실하기 짝이 없는 사회안전망이다. 창조적 파괴의 충격을 흡수할 완충장치가 빈약하다보니 창조적 파괴가 무섭고 어렵다. 고용보험만 해도 과감한 구조조정을 감당하기엔 너무 허약하다. 통상 실업급여는 해고 전 월급의 절반 정도인데 그것도 캡(상한선)이 씌워져 있고 기간도 6개월 정도에 불과하다. 고용보험 전문가 K씨는 “평균적으로 20∼30년 다니다 해고된 사람이 월 150만원 정도 받는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해고 전 월급의 70∼80%를 1년 반에서 2년까지 지급하는 선진국 고용보험과는 비교 자체가 무색하다. 교육비, 주거비 부담의 차이도 현격하다. 선진국에서 부실기업 퇴출이 상대적으로 원할한 것은 탄탄한 사회안전망 덕분이다.
결론. 사회안전망 없이 창조적 파괴는 없다. 제대로 갖춘다면 반복되는 구조조정 지각사태는 줄어들 것이다. 문제는 다시 정치권력이다. K씨는 “고용보험 얘기를 꺼내면 관심이 없다. 표가 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금 그들은 ‘네 탓’ 하며 서로를 물어뜯고 있다. 안전망은 요원하고, 피해는 다시 죄 없는 국민들 몫이다.
류순열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