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서에 들지 못할까봐 날밤을 새우고 오전 3시50분에 가장 먼저 도착했어요.”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1000만원을 신속 대출해 주는 ‘소상공인 직접대출’이 본격 시행된 1일 오전 소진공을 찾은 상인들은 새벽부터 분주하게 움직였다. 같은 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피해를 본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연 1.5% 초저금리 신용대출이 시작된 시중은행들의 영업점에도 이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소진공은 최근 일주일간의 시범운영을 거쳐 이날부터 신용등급 4등급 이하 저신용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직접대출을 시작했다.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침체로 대출을 원하는 사람이 많아서인지 대출 현장의 ‘병목현상’은 크게 개선되지 않은 모습이었다. 직접대출은 이날부터 홀짝제 실시 등을 도입했지만 혼란이 이어진 것이다.
이날 오전 6시30분 서울 영등포구 소진공 서울서부센터의 어두컴컴한 복도엔 소상공인 20여명이 대기하고 있었다. 일부는 피곤에 지쳤는지 앉은 자세로 기다렸으며, 일부는 일어선 채로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렸다. 인근 지역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이모씨는 “(시범운영 기간인) 어제 아침에 와서 10명까지만 접수를 받아 헛걸음을 했는데, 온라인 신청도 15분 만에 마감됐다”며 이날 오전 4시가 되기 전에 현장에 도착한 이유를 설명했다.
이씨 등이 줄을 서기 시작한 지 3시간이 흐른 오전 7시쯤 김선희 센터장이 사무실에 도착했다. 소상공인들이 줄서기를 계속하자 평소보다 일찍 센터를 찾은 것이다. 그는 소상공인들을 향해 “여러분도 힘들고 직원들도 힘드니 앞으로 제발 줄서기를 그만했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그의 호소를 증명하기라도 하듯이 건물 복도엔 ‘3월27일부터 사전예약시스템을 통해서만 대출접수가 가능하다’며 현장접수가 안 된다는 안내문이 부착돼 있었다.
하지만 안내판은 온전히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다. 간절함 때문에 직접 센터로 찾아오는 이들이 줄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소상공인들은 탄식으로 답을 대신했다. 한 소상공인은 “온라인으로 신청했는데 금세 마감돼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렇게 왔다”며 “새벽부터 와서 기다렸는데 우리들이라도 접수해 달라”고 애원했다.
센터는 어쩔 수 없이 사전에 예약하지 않고 현장을 찾았던 이들의 접수도 일부 받아주었다. 그렇다고 모든 이들의 요구를 수용할 수는 없었다. 태어난 연도에 따라 접수가 가능한 ‘홀짝제’가 이날 처음 시행됐지만 이를 인지하지 못하고 현장을 찾은 이들도 많았다.
소진공 센터 직원들의 업무 과중도 심각했다. 김 센터장은 “온라인 예약시스템에도 새벽부터 줄을 서는 분들이 많은 실정이라 온라인 예약시스템을 30%가량밖에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직접대출 접수 업무 때문에 기존 소진공 업무는 오히려 옆으로 밀리고 있다. 폐업 컨설팅 등 시급한 업무마저 주말, 야간 등 업무 외 시간을 활용해야 하는 처지라는 게 소진공 측의 설명이다.
그나마 접수에 관련된 병목현상의 벽을 넘으면 이후 절차는 수월해 보였다. 소진공 관계자는 “일단 접수가 되면 이틀에서 늦어도 닷새 이내에 대출금 1000만원이 곧바로 지급된다”고 전했다.
긴급 자금이 필요한 소상공인들의 발길은 시중은행 영업점으로도 이어졌다. 다행이 영업점이 여러 곳이어서인지 소진공 센터처럼 길게 줄을 서지 않아도 됐다. 소상공인들은 시중은행 영업점 창구에서 조금 기다리다가 상담을 받는 모습이 곳곳에서 목격됐다. 대신 시내 영업점들에는 관련 내용을 문의하려는 전화가 이어졌다. 일부 은행 창구에서는 시중은행 이차보전 대출이나 대출 만기 연장, 이자상환 유예에 관해 아침부터 많은 문의가 있었다고 전했다. 시중은행들은 소상공인들의 상담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대출 창구를 확대했다. 우리은행 서울 남대문지점도 평소 1곳이었던 대출 창구를 6곳으로 늘렸다.
당국은 이날부터 사흘 동안 소상공인에게까지 대출금이 원활히 흘러가도록 현장 지원시스템을 가동했다고 설명했다. 그간 정부가 수조원씩 ‘코로나 대출’을 내놓아도 소상공인·중소기업인이 돈을 받기까지 1, 2개월씩 기다려야 했던 문제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다.
당국은 현장에서 은행 직원에 대한 면책과 금융회사에 대한 금감원 검사 제외를 또다시 확인시켰다. ‘코로나 대출’에서 부실이 발생할 경우 직원·회사가 책임 추궁이 두려워 몸을 사릴 필요가 없다는 점을 재차 강조한 것이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이날 서울 서대문구 신용보증기금 유동화보증센터와 소상공인이 밀집한 지역의 시중은행 지점들을 방문해 이 같은 입장을 개진했다.
시중은행에서 차례를 기다리던 고객들은 “좋은 상품이어서 친구에게 알려주고 같이 왔다”고 말했다. 반면 “2개월 더 기다려 만기 5년인 소상공인진흥공단 상품을 (은행 대신) 이용하는 게 나을 것 같다”고 고민하는 모습도 보였다.
이우중·송은아 기자 lol@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