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최숙현 선수가 남긴 녹취 내용에서 가장 폭력적인 인물은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철인3종경기)팀이 ‘팀 닥터’라 부른 안주현씨다. 그는 폭행 뿐 아니라 피해 선수들의 성추행 폭로가 쏟아지면서 추악한 민낯이 드러나고 있다. 이러자 연락을 끊고 종적을 감춘 안씨는 자신이 대한철인3종협회 징계 대상이 아닌 점을 활용해 감독과 선수들을 비호하기 위한 사전 공모에 나선 의혹까지 불거졌다.
안씨는 물리치료사 자격도 없는 일개 운동처방사에 병원에서 잡무를 본 것이 전부지만 선수들에게는 의사행세를 했다. 이런 그가 팀에서 권력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팀 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주장 장모 선수의 영향력 때문이었다. 안씨는 장 선수의 어머니를 알게 된 인연으로 장 선수를 치료했고 이후 장 선수와 감독의 비호 아래 팀의 실세가 됐다.
이렇게 얻은 권력을 이용해 안씨는 선수들에게 폭행을 일삼았다. 2019년 뉴질랜드 전지훈련 당시 감독과 와인을 마시면서 20분 동안 최 선수 등을 폭행한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또한 치료를 빙자해 여자 선수들의 가슴과 허벅지 등을 만지는 등 추행도 했다고 선수들이 폭로했다.
하지만 안씨는 지난 6일 열린 협회 스포츠공정위원회에서 징계 대상에 오르지 않았다. 팀과 정식 계약하지 않아 협회에 등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안씨는 선수들로부터 치료비 명목으로 걷은 돈을 받아온 것으로 밝혀졌다. 실제 최 선수도 2016년부터 1500만원을 송금했다. 다만 안씨에게 피해를 본 선수가 속출함에 따라, 협회는 안씨를 상대로 고발 등 법적 절차를 밟기로 했다.
안씨가 이런 자신의 입장을 이용해 감독, 주장 등과 입을 맞춘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안씨는 6월23일 체육회 클린스포츠센터 조사관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 자신의 폭행 사실을 인정하고 감독은 이를 말렸다면서 누명을 풀어달라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안씨가 징계 대상이 아닌 자신에게 폭행 혐의를 몰아 감독과 선수를 보호하려 했다는 의심을 사게 한다. 가해자로 지목된 감독과 선수들이 폭행 의혹을 강하게 부인한 점도 이런 추정을 뒷받침한다.
이러한 가운데 안씨의 성추행 사례 증언도 쏟아져 나왔다. 더불어민주당 임오경 의원이 7일 공개한 진술서에 따르면 한 선수는 “(안씨가) 갑자기 자기 방으로 불러서…. 너한테 어떻게 해줬는데 이러면서 뺨을 두 차례 때렸다가 갑자기 또 웃으면서 내가 널 얼마나 예뻐했는데 하면서 볼에 뽀뽀했다”고 썼다. 또한 “수영 동작을 알려준다며 서 있는 상태에서 어깨에 손을 올리고 한쪽 손으로 목을 감아서 사랑하는 남자친구를 끌어안을 때처럼 안으라고 해서 굉장히 불쾌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여자 선수 숙소에 무단 침입한 사례도 있었다. 한 선수는 “저녁을 먹었다고 했음에도 둘밖에 없는 여자 숙소에 와인 한 병을 들고 와서 혼자 드셨다”고 진술했다. 여기에 더해 폐활량 체크나 혈을 본다며 옷 속으로 손을 넣었다는 증언도 있다. 일부 선수에게는 사랑한다는 등 부적절한 문자를 보냈다는 말도 나왔다.
송용준 기자 eidy015@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