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이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 별세 이후 ‘탈당’하는 당원들이 잇따르는 등 진통을 겪고 있다. 앞서 류호정·장혜영 의원이 박 시장을 성추행 혐의로 고소한 피해자(전 비서)를 보호해야 한다며 조문 거부를 선언한 것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탈당하는 이들은 ‘오랜 정치적 동지’인 박 시장의 죽음을 애도하며 그가 한국 시민운동사에 남긴 족적을 기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박 시장이 고소 당한 성추행 사건에 있어서도 ‘무죄추정의 원칙’이 앞서야 한다는 논리다.
정의당이 이러한 당원들의 ‘항의성 탈당’에 굴복할지, 피해자 ‘2차 가해’ 방지에 최우선해야 한다는 소신을 지킬지 관심이 모인다.
그런 가운데, 정혜연 전 정의당 청년부대표는 지난 1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탈당하시겠다는 분들의 글을 보며 우리 당이 어떻게 이런 지경까지 이르렀는지 참담함을 느낀다”고 적었다.
이어 “최소한 사람 된 도리에 맞게 할 말과 안 할 말을 가릴 줄 아는 정치는 어디 가고 사라져버렸다”라며 “(류호정, 장혜영) 두 국회의원은 자신들의 발언이 어떤 논란을 가져올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지 않았나?”라고 비판했다.
앞서 정의당 류호정, 장혜영 의원 등은 박 시장으로부터 수년간 성추행을 당했다고 고소한 여성에 대한 2차 가해를 우려하며 조문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해 파장을 일으켰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은 박 시장이 숨진 채 발견된 지난 10일 페이스북에 “저는 ‘당신’이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다. 존경하는 사람의 위계에 저항하지 못하고 희롱의 대상이 되어야 했던 당신이, 치료와 회복을 위해 필요하다는 정신과 상담을 받고서야 비로소 고소를 결심할 수 있었던 당신이, 벌써 시작된 ‘2차 가해’와 ‘신상털이’에 가슴팍 꾹꾹 눌러야 겨우 막힌 숨을 쉴 수 있을 당신이 혼자가 아님을 알았으면 좋겠다”고 피해자를 위로하는 글을 올렸다.
류 의원은 그러면서 “저는 조문하지 않을 생각이다. 그러나 모든 죽음은 애석하고, 슬프다. 유가족분들께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고 했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도 같은 날 페이스북을 통해 “차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애도할 수 없다”라며 “고인이 우리 사회에 남긴 족적이 아무리 크고 의미 있는 것이었다 해도, 아직 우리가 알아야 할 것들이 있다”고 전했다.
이미 박 시장 조문을 마친 심상정 대표도 “피해 호소인에 대한 신상털기나 2차 가해는 절대 해서는 안 될 일이라는 것을 호소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이에 최민희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1일 페이스북에 ‘지금은 애도할 시간’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고 “박 시장 조문? 자유다”라며 “정의당은 왜 조문을 정쟁(政爭)화하나?”라고 적었다.
이어 “시비를 따질 때가 있고 측은지심으로 슬퍼할 때가 있는 법!”이라며 “뭐 그리 급한가. 지금은 애도할 시간”이라고 비판했다.
박 시장의 전 비서로 알려진 서울시 직원 A씨는 지난 8일 박 시장을 성추행 및 성폭력처벌법 위반 등의 혐의 등으로 경찰에 고소했다. 그는 고소장에서 2016년 이후 박 시장으로부터 수년간 성추행 등에 시달렸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4·15 총선에서 ‘6석 확보’에 그친 정의당은 선거 참패가 ‘민주당 2중대’라는 이미지 때문으로 보고 최근 ‘범여권’ 대신 ‘진보 야당’이라는 명칭을 선호한다고 밝히는 등 민주당과의 거리 두기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그만큼 당원들의 반발도 이어지고 있다.
한편,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12일 페이스북에 “탈당, 말릴 필요 없다. 원래 민주당에 갈 사람들이 본의 아니게 정의당에 와 있었던 것뿐”이라며 “유시민이 탈당할 때 진즉에 따라나갔어야 했다. 그 사람들은 이제라도 제 성향에 맞는 정당을 찾아 가면 된다. 그게 다 당이 정상화하는 과정”이라고 적었다.
이어 “정의당은 이참에 진보정당으로서 제 색깔을 뚜렷하게 하고, 진보적 성향의 당원들을 새로 받아들여야 한다”면서 “어차피 민주당은 완전히 맛이 갔다. 바나나 하나도 안 들어갔으나 바나나 맛이 나는 우유처럼 옛날엔 진보 ‘맛’이라도 냈지만, 지금은 그 맛 조차도 사라졌다”고 했다.
현화영 기자 hhy@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