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H 직원들의 신도시 사전 투기 의혹으로 국민의 분노가 들끓자 지난 8일 정세균 국무총리가 ‘일벌백계’를 약속하며 한 말이다. 그러나 의혹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고 여야에서 앞다퉈 공직자 투기방지법을 내놓고 있음에도 처벌 수위를 놓고 잡음이 끊이질 않고 있다. 처벌 수준을 대폭 강화한 법안은 기존 투기자들에겐 소급 적용할 수 없고, 정부가 3기 신도시 취소 또한 검토하지 않고 있어서다.
◆“친일파도 아닌데” 공공주택특별법 소급 적용 ‘위헌’ 가능성
당정은 부동산 개발 정보를 사적으로 이용해 땅 투기를 한 공직자에 대한 처벌을 대폭 강화하고 이들이 얻은 이익을 몰수·추징하는 내용의 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23일 공개된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법안소위 회의록에 따르면 해당 법안은 3기 신도시 사전 투기 직원들에겐 소급적용되지 않는다. 위헌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지난 18일 국토위 국토법안심사소위에서는 땅 투기에 나선 공직자가 취득한 재산을 몰수 또는 추징하고 최고 무기징역형이나 그 이익의 3∼5배에 달하는 벌금을 물리게 하는 등의 내용을 골자로 한 ‘공공주택특별법’ 개정안에 대한 심사가 열렸다.
특히 재산을 몰수·추징하는 조항은 투기자로 지목된 LH 직원들에게도 소급 적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 나왔다. 그러나 소위원장이자 법조인 출신인 더불어민주당 조응천 의원은 위헌성 때문에 ‘친일’ 수준의 행위가 아니고선 소급 적용은 가능성이 없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조 의원은 “몰수나 추징, 혹은 형벌의 소급효가 인정되는 것은 친일 재산이나 부패 재산 같은 것”이라며 “당시 처벌하는 법이 없는 상황에서 자연법으로 봐도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정도의 범죄가 아니라면 소급 적용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소급 조항은 백발백중 위헌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며 “국민의 법 감정을 생각하면 소급효를 하면 시원하겠지만, 이 문제는 굉장히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퇴직자도 친인척도 전수조사 불가… “차명 거래 확인 힘들어”
소급 적용 불발에 더불어 퇴직자나 임직원 친인척에 대한 전수조사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점도 국민의 분노에 기름을 끼얹고 있다. 국무총리실 등으로 구성된 정부 합동조사단(합조단)은 지난 11일 국토부(4500여명)·LH(9800여명)·지방자치단체(6000여명)·지방공기업(3000여명) 등 직원 2만3000여명과 그 배우자·직계 존비속 조사 임무를 경찰이 주축이 된 부동산 투기 정부합동특별수사본부(특수본)에 넘겼다. 조사 대상 인원은 약 10만명으로 추산됐다.
그러나 이후 친인척 관련 전수조사는 사실상 답보 상태다. 지금의 수사 인력 등으론 현직자만 수사하기도 버거운 상황이고 무엇보다 특수본에 전수조사 권한도 없기 때문이다. 권대중 명지대 교수(부동산학과)는 “땅 투기는 대부분 차명 거래로 이뤄지는데 정부의 조사 방식은 전산 조회를 통한 대조에 불과하기 때문에 차명 거래를 확인하기 힘들다”며 “지금과 같은 정부의 조사 방식으로는 투기 의혹의 실체를 규명하기 어렵고, 신뢰성을 담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3기 신도시 취소’도 안 된다는 정부… “법과 제도가 허용하는 모든 수단 동원”
“3기 신도시 지정을 취소하라”는 국민의 목소리가 거센데도 정부는 2·4 대책을 밀고 나갈 뜻을 분명히 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7일 오전 열린 제17차 부동산시장 점검 관계장관회의에서 “주택 공급 대책을 포함한 부동산 정책은 결코 흔들림, 멈춤, 공백 없이 일관성 있게 계획대로 추진해 나갈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며 신도시 지정 취소 등의 계획은 없음을 알렸다.
LH 투기 폭로가 있고 난 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3기 신도시 지정 취소 청원은 동의 수 11만명을 넘어섰다. 또한 리얼미터가 YTN 의뢰로 지난 12일 만 18세 이상 500명에게 설문 조사를 벌인 결과 ‘광명 시흥 등 3기 신도시 추가 지정을 철회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응답이 57.9%로 나타났다. ‘부적절하다’는 응답은 총 34.0%였으며 ‘잘 모르겠다’는 답변은 8.1%였다(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4.4%p).
정부는 현재 법과 제도가 허용하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투기자들을 처벌하겠단 입장이지만 국민 눈높이와는 여전히 격차가 있다는 지적이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23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공공기관 임직원들의 투기 의혹에 대해 정부는 법과 제도가 허용하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대응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특수본에서는 대상과 지역을 한정하지 않는 철저하고 신속한 수사를 통해 투기 의혹을 명백하게 규명해 달라”고 당부했다.
나진희 기자 naji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