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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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집값 올린 게 누군데”… ‘LH사태 영향 無’ 정부에 국민 ‘부글부글’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국무위원식당에서 열린 제18차 부동산시장 점검 관계장관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은 26일 최근 부동산 시장이 안정되어 가고 있다고 강조하며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가 부동산 시장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지 않아 다행”이라 말했다. 그러나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에 대한 처벌 수준이 성난 민심과 괴리가 큰 발언으로, ‘3기 신도시’ 강행 의사를 밝힌 정부의 이같은 ‘자평’은 오히려 국민의 분노에 기름을 붓고 있다는 지적이다. 

 

◆홍남기 “LH 사태 부동산에 부정적 영향 안 미쳐 다행” 

 

홍 부총리는 이날 부동산시장 점검 관계장관회의를 열고 “부동산 투기근절 및 재발방지대책을 오늘 마지막 협의 및 당정 협의 등을 거쳐 다음 주 초반, 3월을 넘기지 않고 발표할 예정”이라며 “다음 주 5.6대책에 따른 제2차 공공재개발 후보지 선정결과, 2·4대책 관련 지자체 제안 부지를 대상으로 한 제1차 도심사업 후보지를 발표할 계획”이라고 예고했다. 

 

홍 부총리는 또한 최근 부동산 시장을 분석하면서 “일부 지역에서는 사례에 따라 직전 거래보다 상당 폭 떨어지는 거래도 나타나고 있음이 관찰되고 있다”며 “LH 사태가 부동산 시장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예상도 있었으나 불확실성이 확대되지 않아 다행”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4일 경남 진주시 충무공동 한국토지주택공사(LH) 본사 입구를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다. 진주=연합뉴스

◆“지금까지 집값 올린 게 누군데” 정부 발언에 국민 ‘반발’

 

이 같은 홍 부총리의 발언은 LH 사태 이후 3기 신도시 후보지와 서울 공공재개발지역 주민들이 반발하는 분위기를 염두에 두고 기존 2·4 대책을 밀고 나가겠단 의지로 읽힌다. 다만 공직자 투기에 대한 국민 반감이 여전한 상황에서 쉽사리 LH 사태의 무게를 축소시킨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된다.

 

실제 홍 부총리의 발언이 알려지자 온라인상에선 즉각 비난 여론이 일었다. 해당 발언을 다룬 기사에 한 누리꾼은 “지금까지 집값 올린 게 누군데 어떻게 그렇게 당당한가”라고 일침했다. 또 다른 누리꾼은 “결국 3기 신도시 그대로 진행하고 투기한 LH 직원들은 제대로 처벌도 안 하고 덮고 넘어가겠다는 거네”라며 “정부 말만 믿고 투기 안 하고 정직하게 산 서민들만 또 억울하게 됐다”고 씁쓸해했다. 

 

◆시민단체 “3기 신도시 강행은 투기 세력 이익 실현” 

 

국민이 분노하는 지점은 정부가 기존 투기자들에 대한 속 시원한 처벌도 없이 반발 여론에도 3기 신도시를 강행하는 것이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3기 신도시 철회를 요청하는 글이 잇따르고 있으며 이달 초 ‘3기 신도시를 철회해 달라’며 올라온 청원에는 동의자가 11만명을 넘어섰다.

LH 일부 직원들의 광명·시흥 신도시 땅 투기 의혹이 제기된 경기도 시흥시 무지내동의 한 토지에 묘목이 빽빽하게 심어져 있다. 연합뉴스

서울역 동자동 주민대책위원회 등 시민단체들도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 주도 주택 공급 사업에 대한 국민 신뢰가 땅에 떨어지고 각종 의혹에 대한 실체적 진실을 확인하기 위한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3기 신도시 개발 계획을 강행하겠다는 것은 내부정보를 이용한 투기 세력의 이익을 실현해 주는 것에 불과하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땅 투기 처벌법’ 기존 투기자들 소급 적용 안 돼 ‘허탈감’ 확산

 

처벌 수위를 높인 ‘공직자 땅 투기 처벌법’이 정작 기존 투기자들에게 소급 적용이 안 되는 점도 국민의 분노를 돋우고 있다는 평가다. 지난 24일 국회가 의결한 공공주택특별법 개정안은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부동산을 매매하거나 타인에게 정보를 제공 또는 누설한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투기 이익의 3∼5배의 벌금에 처하고 투기 이익 또는 회피한 손실액이 50억원 이상이면 최대 무기징역에 처하는 내용이 골자다. LH 임직원과 10년 이내 LH 퇴직자가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부동산 거래 시 이익을 모두 몰수·추징하고,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위반행위로 얻은 이익의 3배 이상 5배 이하에 해당하는 벌금형을 규정한 한국토지주택공사법도 함께 처리됐다. 그러나 위헌성 때문에 이번 사태의 책임자들은 모두 적용 대상이 아니다. 

정세균 국무총리. 공동취재사진

결국 정부는 ‘일벌백계’, ‘모든 수단’이라는 애매모호한 표현으로 투기자 엄단을 약속했지만 현실적으로 뾰족한 수는 없어 보인다는 평가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지난 23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공공기관 임직원들의 투기 의혹에 대해 정부는 법과 제도가 허용하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대응하고 있다”며 “특수본에서는 대상과 지역을 한정하지 않는 철저하고 신속한 수사를 통해 투기 의혹을 명백하게 규명해 달라”고 당부했다.

 

나진희 기자 naji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