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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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에 쉼터 제한… “숨이 턱턱” 쪽방촌 못 견뎌 새벽 배회 [밀착취재]

취약계층 ‘폭염과의 사투’

노인 등 외출자제 문자에도 밖으로
쉼터는 매주 ‘음성’ 받아야 출입 허용

탑골 배식소선 땡볕에 400명 줄서
“한 끼 해결하려면 참을수 밖에…”
“폭염은 재난… 안전망 필요” 지적

 

19일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인근 공원에서 노인들이 천막 아래에서 더위를 피하고 있다. 장한서 기자

“집안이 찜통이라 살 수가 없어.”

 

아침부터 푹푹 찌는 듯한 날씨를 보인 19일 오전,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인근의 공원에는 지친 표정의 노인들이 모여 있었다. 불쾌지수가 높은 더운 날씨에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은 에어컨을 찾아 실내로 들어갔지만, 쪽방촌 거주자들은 밖으로 나왔다. 연일 폭염이 이어지면서 정부는 ‘외출 자제’를 요청하는 폭염 경보 문자를 보냈으나 이들은 “외출을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다”고 토로했다. 변변한 냉방시설 하나 없는 쪽방촌의 작은 방은 폭염과 열대야로 내부 기온이 치솟아 바깥보다 더 덥기 때문이다.

 

80대 이모씨도 이날 날이 밝자마자 쪽방을 나와 거리로 나섰다. 공원에 설치된 천막 밑 비좁은 그늘에는 이씨처럼 더위를 피해 나온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천막 밑에는 큰 선풍기 2대가 돌아가고 있었지만 선풍기도 더위를 먹어서인지 더운 바람만 나왔다. 이씨는 “쪽방 안에 있으면 더워서 앉지도, 서지도 못할 정도”라며 “그나마 여기는 바람이라도 불어서 숨통이 트인다”고 말했다.

 

오전 11시가 되자 소방관들이 공원으로 나와 천막 주변에 물을 뿌렸다. 더위를 식히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 위해서다. 한 노인은 “너무 더워서 그러니 내 다리에도 뿌려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그러나 바닥에 뿌린 물은 30여분이 채 지나지 않아 바짝 말라버렸다.

19일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앞 공원에서 어르신들이 더위를 피하고 있다. 뉴스1

연일 무더위가 이어지면서 취약계층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올여름 기록적인 무더위가 장기간 지속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쉼터 등 무더위를 피할 수 있는 실내 휴식공간 상당수가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이날 동자동 쪽방촌에서 만난 주민들은 “여름마다 힘들었지만 올해는 더 힘들다”고 호소했다. 쪽방촌 인근에는 주민을 위한 ‘무더위 쉼터’가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에게 ‘그림의 떡’이었다. 코로나19 감염 우려 때문에 ‘코로나19 검사 음성 판정 7일 이내’인 사람만 이용할 수 있었다. 주민 이모(77)씨는 “쉼터가 있어도 검사를 매주 받기 어려우니 거의 못 가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요즘은 밤에도 더워서 잠을 자기 어렵다”며 “아예 길 건너 빌딩 앞에 돗자리를 펴놓고 자거나 해도 뜨기 전부터 밖에 나와 돌아다니는 주민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날이 더워 다들 문 열어 놓고 자는데 방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오면 주민들 다 감염될 것 같다”며 “앞으로 더 더워진다는데 어떻게 살지 걱정”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일부 주민은 식수마저 부족하다고 호소했다. 윤모(69)씨는 “지원시설에서 생수를 나눠주긴 하지만 날이 덥다보니 부족할 때가 많다”며 “목이 말라도 참으면서 아껴 마시고 있다”고 말했다.

19일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인근 공원에서 노인들이 나무 그늘 아래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장한서 기자

무더위 때문에 밥 한 끼 먹기가 더 힘들어진 이들도 많다. 이날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인근의 무료급식소에는 점심시간이 다가오자 노인 400여명이 몰려들었다. 코로나19 이전에는 2층 실내 공간에서 식사를 제공했지만, 최근에는 감염 우려 때문에 메뉴를 주먹밥으로 통일하고 야외에서 배식을 하고 있다.

 

매일 이곳에서 점심을 먹는다는 박모(74)씨는 “날이 점점 더워져서 점심을 포기해야 하나 싶을 때가 있다”면서도 “한 끼라도 해결하려면 더위를 참고 나오는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임모(63)씨는 “배식을 받으려고 기다리다 보면 도로가 이글이글 타오르는 것처럼 보인다”며 “생지옥이 따로 없다”고 말했다.

 

이날 배식소 측은 400인분의 점심을 준비했지만, 늦게 온 30여명은 배식을 받지 못했다. 70대 정모씨는 “다들 아침 일찍부터 줄을 서기 때문에 늦게 오면 고생만 하다 갈 수 있다”며 “배식을 놓치지 않으려면 덥더라도 아침 일찍 나와서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의 낮 최고기온이 32도를 기록한 19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인근에서 노인들이 배식을 위해 기다리고 있다. 권구성 기자

줄줄이 폐쇄되는 경로당도 저소득층 노인들을 힘들게 한다. 서울시에 따르면 자치구 25곳 중 경로당을 운영 중인 곳은 7곳뿐이다.

 

전문가들은 갈수록 심해지는 여름철 폭염을 ‘재난’으로 인식하고 사회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최영 중앙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더위 취약계층의 대다수는 주거문제를 가지고 있다”며 “냉방시설이 갖춰지지 못한 곳에 거주하는 건데, 이들을 위한 일회성 지원을 넘어 임대주택과 같은 주거대책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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