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민주주의 제도가 미국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한국을 비롯해 대통령제도를 가진 나라들이 많지만 이 제도의 기원은 미국이다. 훗날 왕정을 벗어나 민주주의로 들어선 많은 나라가 미국의 제도를 참고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이 미국과 똑같을 수는 없다. 역사와 문화, 관습이 다르기 때문에 크고 작은 차이가 존재한다.
가령 역대 대통령을 열거할 때 한국은 임기를 기준으로 센다. 초대 이승만 대통령은 3선을 했기 때문에 1∼3대 대통령이고, 박정희는 5∼9대 대통령이다. 노태우 대통령 이후로는 단임제가 정착했기 때문에 한 임기에 한 명의 대통령만이 존재한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취임할 경우 13번째 대통령이나 한국에서는 ‘20대 대통령’이라 부른다. 미국의 경우는 몇 번 연임했느냐와 상관없이 사람의 숫자로 센다. 조 바이든 대통령의 경우 한국식으로 계산하면 59대 대통령이겠지만, 미국에서는 ‘46대 대통령’이라고 지칭한다.
국가 수반이 머무는 곳을 부르는 이름도 문화마다 다르다. 영국에선 총리 관저를 ‘다우닝가 10번지’(10 Downing Street)라고 주소만 부르지만, 프랑스 대통령은 18세기 초에 지어진 건물을 관저로 사용하고 그 공식 명칭도 ‘엘리제궁’(Palais de l'Elysee)이다. 물론 여기서의 궁은 우리가 생각하는 ‘궁전’과는 느낌이 좀 다른, 공공건물의 성격을 갖고 있다. 많은 유럽 국가가 프랑스처럼 대통령, 총리 관저에 궁전(palace, palacio, palazzo, palac)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지만, 반드시 그런 건 아니다. 체코에선 ‘프라하성’(Pra?sky hrad)이 대통령 관저다.
미국의 경우는 좀 특이하게 ‘하얀 집’(백악관)이라는 단순한 명칭을 사용한다. 물론 그냥 하얀 집이 아니라 정관사(the)가 붙고, 대문자를 사용한 ‘the White House’다. 우리나라 청와대의 영문 명칭을 ‘블루하우스’(Blue House)라고 붙이려던 시도가 있었지만 (알려진 바로는 육영수 여사의 반대로) ‘Cheong Wa Dae’라 부르고 있다.
하지만 청와대, 백악관을 비롯한 대부분 국가 수반의 관저는 단순히 거처를 의미하지 않는다. 가령 청와대에서 진정한 의미의 관저, 즉 대통령의 숙소는 일부다. 청와대는 각종 사무동과 시설을 포함한 거대한 캠퍼스고, 무엇보다 행정기관인 대통령부(大統領府)를 의미한다.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의 관저를 포함하고 있는 크레믈도 언론에서 사용할 때는 관저라기보다는 하나의 기관으로서 대통령, 즉 대통령부를 가리킨다.
민주주의 국가(혹은 자칭 민주주의 국가)에서 숙소와 기관을 한데 묶어서 부르는 것은 민주주의 이전의 정치 형태인 왕정시대의 산물로 보인다. 최종 결정권자가 왕이고, 왕이 권력을 독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모든 결정이 왕궁에서 이뤄지는 건 당연했다. 따라서 왕궁이 곧 정부였다. 물론 대부분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삼권분립이 이뤄져 있고, 대통령은 권력의 일부만을, 그것도 정해진 임기 동안만 행사하기 때문에 대통령 관저는 일정 기간 동안 거주하는 임시 숙소다. 현대 국가 운영에 들어가는 거대한 관료조직을 생각하면 각종 부처, 사무동이 별도로 존재하는 건 당연하다. 그럼에도 대통령은 개인이 아닌 대통령부로서 일하기 때문에, 그리고 경호 등의 이유로 과거 왕궁과 비슷한 형태를 지닌 사무실로서의 관저가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보편적이다.
하지만 그런 대통령제를 만들어 낸 미국에서도 이런 형태는 민감한 문제였던 것 같다. 백악관 건축이 시작된 건 초대 조지 워싱턴 대통령 때인 1792년이지만, 백악관이라는 명칭이 공식화된 건 100년이 넘게 지난 1901년이었다. 그때까지는 대통령궁(President's Palace), 대통령 관저(President's House), 행정부 저택(Executive Mansion)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앞서 백악관이 초대 워싱턴 대통령 때 건축을 시작했다고 했지만, 그 집에 처음 입주한 대통령은 워싱턴이 아닌 2대 대통령 존 애덤스였다. 그러니까 워싱턴은 자신이 거주하지 않을 집의 건축을 임기 중에 시작한 것이다. 1797년, 워싱턴의 두 번째 임기가 끝났을 때 주위에서는 그에게 세 번째 임기를 권했지만 사양했다. 미국에서 대통령 임기를 두 번으로 한정한 것은 20세기 들어 이뤄진 일이지만, 그럼에도 프랭클린 루스벨트(네 번째 임기 초에 사망) 이전까지 어느 대통령도 두 번 넘게 대통령을 하지 않았던 이유는 워싱턴이 세운 ‘선례’ 때문이다.
워싱턴의 뒤를 이은 존 애덤스가 백악관의 첫 입주자기는 했지만, 오래 거주한 것은 아니다. 1800년에야 완공됐는데 애덤스 대통령의 임기는 1801년에 끝났기 때문에 그야말로 잠깐 거주하고 나와야 했다. 결국 전체 임기 동안 백악관에 머무를 수 있었던 대통령은 3대 토머스 제퍼슨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열심히 만든 백악관 건물도 오래가지 못했다. 1812년에 영국이 미국 본토를 침공하는 ‘1812년 전쟁’이 일어났는데, 전쟁 후반인 1814년에 영국군이 수도에 진입해 백악관과 의회 건물을 불태워 버린 것이다. 이는 미군이 이 전쟁에서 영국 편이었던 캐나다의 의회와 정부 건물을 불 지른 데 대한 보복이었기 때문에 미국도 할 말은 없지만, 어쨌거나 그 바람에 전쟁이 끝난 후에도 대통령은 관저로 돌아오지 못하고 다른 거처를 떠돌아야 했다. 이 화재로 백악관은 외벽 일부를 제외하고는 쓸 수 없게 됐기 때문에 결국 재건축에 들어가야 했고, 그렇게 해서 건물을 새로 짓기 시작한 후 지금의 남쪽 면이 완성된 건 화재가 난 지 10년 후인 1824년, 북쪽 면이 완성된 건 다시 6년이 지난 1830년이었다. 그사이 미국 대통령은 세 번 바뀌었다.
그 후로도 백악관은 끊임없이 변화했다. 미국 드라마를 통해서도 익숙한 대통령 집무실과 비서실 등이 포함된 업무공간인 웨스트윙(West Wing·서관)은 시어도어 루스벨트 재임기(1901∼1909)에 시작해서 후임인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대통령 때 완성됐다. 그런데 이런 별도의 업무공간이 필요하다고 처음 제안한 사람은 제퍼슨 대통령이었다. 이 공간이 필요하다고 얘기한 후 완성될 때까지 100년이 넘게 걸린 것이다. 이렇게 오래 걸린 건 단순한 건축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건물이 가진 상징성과 여론, 정치적 환경 등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일의 진행이 느릴 수밖에 없다.
게다가 그렇게 지어진 웨스트윙은 10여년 만인 1929년 크리스마스 때 큰 화재를 겪었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허버트 후버는 파티 도중에 달려와 직접 불을 끄겠다고 웨스트윙에 들어가는 바람에 경호원들이 끌어내야 했다고 한다. 다시 20년 후인 1948년에는 백악관이 너무 낡아 붕괴 위험이 있다는 진단을 받아 외벽만 유지한 채 사실상의 재건축을 해야 했고, 당시 트루먼 대통령은 일종의 영빈관인 블레어 하우스에 나와 살았다. 이 공사는 과거보다는 빨리 진행돼 4년 만인 1952년에 완성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