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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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尹, 우크라 조건부 군사 지원 시사… 국민 설득 뒷받침돼야

“학살 시, 인도적 지원 고집 어려워”
26일 한·미 정상회담서 의제 될 듯
야권 거센 반발로 국론 분열 우려

윤석열 대통령이 어제 공개된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러시아 침공으로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 대해 “민간인에 대한 러시아의 대규모 공격이나 학살, 심각한 전쟁법 위반 등 국제사회가 용납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인도적·재정적 지원만 주장하는 것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했다. 전제 조건이 붙긴 했지만 “교전 국가에 살상 무기는 절대로 지원하지 않는다”는 우리 정부의 입장이 달라진 것이어서 논란이 일 전망이다. 야권의 거센 반대로 자칫 국론 분열로 비화할 수도 있다.

 

윤 대통령의 발언은 러시아의 반발을 낳을 민감한 사안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작년 10월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제공할 경우 한·러 관계가 파탄 날 것”이라고 강력 경고했기 때문이다. 그간 우리 정부는 우크라이나에 살상 무기는 빼고 방독면·방탄헬멧 같은 군수 물자만 지원했다. 작년 11월 155㎜ 포탄 10만발을 한국에서 사 간 미국은 최근 155㎜ 포탄 수십만발을 추가 구매하겠다는 요청을 해왔다고 한다.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면서 자국 내 비축분이 부족해지자 한국산 구매에 나선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아직까지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고 전했다.

 

윤 대통령이 전제 조건을 달았지만 살상 무기 지원 의사를 밝힌 것은 미국의 요청이 그만큼 강하다는 얘기와 다름없다. 오는 26일 워싱턴에서 열릴 한·미 정상회담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이 이 문제를 꺼낼 공산이 크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지 엊그제로 1년이 넘었지만 그 끝은 보이지 않고 있다.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미국 등 서방은 한국의 재래식 전력에 주목하며 살상 무기 지원을 압박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산 포탄이 전쟁터에서 발견되면 러시아의 보복 조치로 우리 경제와 기업이 타격을 입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해도 리스크가 따를 수밖에 없는 처지다.

 

하지만 러시아의 명분 없는 침공으로 인한 우크라이나 국민의 희생이 커진다면 마냥 외면할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나라도 6·25전쟁에서 유엔군의 군사 지원과 국제 원조로 국난을 극복하고 선진국의 반열에 오르지 않았는가. 더욱이 주요 8개국(G8)과 글로벌 중추국가 진입의 꿈을 갖고 있는 한국 입장에선 국제사회의 평화 수호 활동에 대한 기여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단 국민 설득 작업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일제 강제동원 해법으로 제3자 배상을 결정한 뒤 국정 지지율이 하락한 데에는 충분한 설명과 설득이 부족한 것도 큰 몫을 차지했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