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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애 아빠 없이 ‘나홀로 출산’… “극도의 패닉 상태서 범행” [심층기획-‘예고된 비극’ 영아유기]

①사라진 아빠와 고립된 엄마

본지, 최근 10년 판결문 250건 분석
유기·살해 70.6% ‘유령 아빠’ 연관
법률상 친부모만 영아살해죄 적용
수사 때 生父 신원 등 파악 소극적
지난 6월 ‘수원 냉장고 영아 시신’ 사건을 계기로 이뤄진 정부 전수조사 결과, 2015년부터 8년간 출산 기록은 있지만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아동이 2123명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 중 안타깝게 유기되거나 세상을 떠난 아기들의 사연이 사회에 충격을 안겼다. 세계일보는 영아유기·살해가 개인 일탈이 아닌 ‘사회 문제’라는 인식 아래 판결문을 분석하고, 영아의 생부모 사연을 심층적으로 추적했다. 이를 통해 드러난 영아유기·살해 범죄의 이면, 아동·여성 보호와 복지 시스템의 민낯을 특별기획 시리즈 ‘예고된 비극, 영아유기’ 연재로 소개한다.

 

1살이 안 된 아기를 버리거나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 10건 중 7건은 생모에게만 임신·출산·육아의 짐을 떠넘긴 채 사라진 ‘유령 아빠’와 연관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논란이 된 출생미등록 아동 관련 경찰 수사에서도 생모(生母)는 전원 조사됐지만, 생부(生父)의 신원 파악 여부는 통계조차 없었다.

 

◆영아유기·살해 70.6%에 ‘유령 아빠’가 있다

 

세계일보 사건팀이 최근 10년(2013~2022년) 국내 영아유기·영아살해 판결문 250건을 분석한 결과는 ‘사라진 아빠와 고립된 엄마’로 요약된다. 상급심 중복 건수를 제외한 177건의 판결문에서 생부 관련 정보는 △언급 없음(35건) △연락두절·도움 못받음(19건) △낙태·입양·유기 종용(4건) △생모와의 관계만 언급됨(67건) △임신 사실 모름(13건) △유기 공범·범인 당사자(39건) 등으로 집계됐다.

 

취재진은 생부에 대한 어떤 언급도 없거나 출산 시점에 지지·도움받지 못한 경우(125건·70.6%)의 생부를 ‘유령 아빠’로 분류했다. 대부분 사건은 마지막 보루였던 아이 아빠마저 외면하자 집이나 학교, PC방 화장실 등 병원 밖에서 엄마 혼자 출산한 뒤 극도의 패닉 상태에서 저지른 것이었다.

 

영아살해죄 1심 판결문(2013~2020년) 46건을 분석한 선행 연구(‘한국 영아살해 고찰’, 김성희·성현준·성나경)에서도 생부가 누구인지 명확히 모르는 경우가 상당한 것으로 파악됐다. 생부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가해자가 41.3%에 달했고, 누구인지 알더라도 이미 관계가 파탄에 이르렀거나 불륜인 경우가 많았다. 연구진은 “생부의 신원을 알아도 대다수는 양육의 의무를 함께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고 정리했다. 

본지는 지난 두 달간 20여명의 미혼모 및 영아 범죄 당사자를 만나 이러한 판결문의 행간에 숨겨진 불편한 진실을 확인했다. 영아 범죄의 중요한 한 축에는 무책임한 아빠가 있지만, 현실과 법정에서 생부가 차지하는 중요성은 과소평가돼 있었다.

 

이들은 존재가 잘 드러나지도 책임을 추궁당하지도 않는다. 남성과 여성이 함께한 행위인데 그로 인한 결과는 여성 혼자 짊어지는 형국이다. 대부분의 판결문은 ‘마치 여자 혼자 아이를 만든 것 같다’는 인상을 줬다. 아이가 태어났다는 건 분명 아빠가 있다는 뜻인데, 남자는 아이만 만들고 연기처럼 증발했다.

 

취재진과 함께 판결문을 분석한 송명진 변호사(법률사무소 세찬)는 “산모가 도저히 아이를 양육할 수 없는 극단적인 사회경제적 상황에 처해 영아를 살해한 사안들로 보인다”고 총평했다.

 

현행법상 영아살해죄의 구성요건은 ‘치욕을 은폐하기 위하거나 양육할 수 없음을 예상하거나 특히 참작할 만한 동기’다. 이때 여성에게 결혼을 했거나 할 예정인 남성이 있는지, 양육에 있어 아이 아빠로부터 충분한 정서적·경제적 지원을 받을 수 있었는지 등이 더 반영됐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송 변호사는 “정상참작 측면에서 아쉬움이 드는 판결문이 꽤 있었고, 심지어 생부에 대한 아무런 언급조차 없는 경우도 상당수였다는 점이 의외였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사회가 정상 가족에 대한 기대가 큰 만큼 산모 입장에서 생부를 알지 못하는 등의 사정은 큰 치욕일 수밖에 없다”며 “생부가 자신의 아이를 양육하기를 거부하는 등 아이 아빠와 관련된 사정들이 범죄 성부(成否)를 판단하고 양형을 결정함에 있어 중요한 요인으로 충분히 고려될 필요가 있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법률상 친부모에게만 적용되는 영아살해죄가 엄마의 고립을 부추길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송 변호사에 따르면 아직 한국 법원은 혼인 상태가 아닌 생부를 ‘사실상의 직계존속’에 포함하지 않는 좁은 해석을 하는 경향이 있다.

 

미혼 여성이 아이를 낳는 순간 그는 친모로 인정되지만 상대 남성은 인지 청구 소송을 통해서만 친부로서의 의무를 지게 된다. 혼인신고를 안 한 생부의 경우 직계존속으로 보지 않으니 영아살해 적용이 안 된다고 여겨 생부와 관련된 쟁점을 경시하는 판례태도를 보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엄마는 다 조사하지만 아빠는 안 하는 이유

 

경찰 수사 단계에서는 어떨까. 영아 사망 사건에서 생부에 대한 조사는 현재 적극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보기 어려웠다.

 

본지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송재호 의원실을 통해 여러 차례 경찰청에서 받은 자료를 종합하면 영아 관련 사건 수사 의뢰 시 생모의 신원은 바로 지방자치단체에서 경찰로 통보되지만, 생부의 신원은 미상이다.

 

생모는 아동 임시신생아번호와 함께 복지부 예방접종시스템에 기록돼 있으나 생부는 그런 기록이 없어서다. 경찰 관계자에 따르면 “(생부가 누군지는) 산모가 직접 입을 열지 않는 한 알아내기 힘들고, 보통은 얘기를 잘 안하려고” 하니 그 이상 캐묻는 건 사생활 침해 소지가 있어 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지난달 11일 기준 전국에서 발생한 영아 사망 관련 경찰 수사 의뢰는 1119건, 이 중 843건이 종결됐다. 취재진은 올해 논란이 된 출생미등록 아동 관련 수사에서 ‘생부의 신원을 파악한 것이 몇 건이고, 출석 요구를 한 것은 몇 건인지’ 경찰에 물었다. 

 

경찰의 답변은 “조사사실 공개 우려, 사생활 보호 등을 이유로 아동 소재·확인 및 혐의 확인을 위해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생부의 신원, 현재 가족관계 등을 수사하고 있지 않음”이었다. 엄마는 다 조사하지만 아빠는 다 조사하지 않는 셈이다. 경찰은 해당 통계를 회신하기 어려운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생부에 대한 신원 파악 여부를 집계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생부의 신원은 수사가 반드시 필요한 게 아니라서 통계 취합할 때 따로 란을 만들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아동을 유기했을 경우에는 생부가 함께 범행했는지 알아보는 수사가 필요하니 진행하지만, 베이비박스에 넣었을 경우 생부를 확인할 필요는 없어서 별도로 항목에 넣지는 않은 것입니다.”

 

생모에 비해 생부의 책임은 다소 사각지대에 있고, 수사 기관도 이를 ‘수사 사항’으로까지 인식하지는 않는 모습이다. 미혼모 관련 소송을 다수 진행해 온 대한법률구조공단 윤인권 변호사에게 이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단적인 예로 임신 소식을 알리자 남자가 연락을 끊은 상태에서 여자 혼자 화장실에서 아이를 낳고 죽음에 이르게 했어요. 이런 경우에 도망간 아이 아빠에 대해서는 처벌이나 조사가 이뤄지기 힘든 건가요?”

 

“예, 그것만으로는 처벌하기가 좀 어렵고요. 경찰이 조사하는 것도 재량으로 할 수는 있겠지만 대부분 필수적으로 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사건 현장과 관련해서 특별히 남자가 알고 있는 것이 없다면요. 책임을 방기한 사람에 대해 형법이 어디까지 처벌하느냐, 입법적 문제긴 한데 현재로서는 처벌이 어렵고 그렇기 때문에 조사도 이루어지기가 어렵다고 보입니다.”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 미혼모들이 임신과 출산, 입양 혹은 양육의 문제를 가장 허심탄회하게 의논하고, 도움을 줄 수 있는 대상이 미혼부이다. 그러나 미혼모는 있지만 미혼부는 없다는 말처럼 미혼부들의 변심과 배신, 연락두절 등의 행태는 미혼모들의 임신기간 내내 가장 힘들게 하는 요인이다.

 

-『이 땅에서 미혼모로 살아가기』최승희, 71-72쪽

 

결국 현 제도 하에서 미혼모가 아이 양육을 거부하는 생부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인지청구 및 양육비청구 소송뿐이다. 긴 기간 소송이라는 힘든 싸움을 거쳐 여성이 얻는 것은 월 몇십 만원의 양육비가 전부인 경우가 많다. 

 

“생부에게 출산에 대해 어떠한 책임도 묻기 어려운 현실의 반대편에는 이러한 상황을 예상하고 어쩔 수 없이 영아를 살해하는 생모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송 변호사가 말했다.

 

“아빠 없이 출산이 가능한가요? 불가능합니다. 사건 사례를 들추어보면, 대부분 아빠가 임신과 출산을 외면한 뒤 엄마 홀로 출산을 감당해야 하는 상황에서 사건이 발생합니다. 책임을 회피한 아빠는 영아를 살해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도의적 책임뿐 아니라 법적인 책임도 반드시 물어야 할 것입니다.” 송재호 의원도 이렇게 강조했다.

 

<관련 기사>

 

[심층기획 - ‘예고된 비극’ 영아유기]

 

프롤로그 - 유령아빠, 불행의 씨앗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910509604

 

①[단독] 애 아빠 없이 ‘나홀로 출산’… “극도의 패닉 상태서 범행”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910508352

 

②‘국가의 부재’ 속에 아기가 떠난 그날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912500544

 

③벼랑 끝 내몰려 ‘아이 버릴 결심’ 하기까지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913500163

 

④아빠가 먼저 ‘두 사람’을 버렸다…부양 점수 5점 만점에 1.3점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913520264

 

⑤“엄마를 보호하는 게 영아 지키는 길”… ‘비정한 모정’ 다시 본 그 판사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915500252

 

⑥“주민등록 말소, 이사 등 온갖 꼼수”… ‘도망간 아빠’ 찾아 삼만리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915513897

 

⑦“책임 안 지면 빨간 줄…‘히트앤드런 방지법’, 왜 안 생기나요?”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915513915

 

⑧외국인 미혼모와 ‘무등록’ 아동…“아이 성년 되면 생이별”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919510570

 

⑨“가부장적 체류 제도가 ‘투명 아동’ 양산…핏줄·혼인 중심 틀 깨야”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920510203

 

⑩‘살아남은 유기 영아’ 이야기…원가정도, 새 가정도 없다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920512263

 

⑪“누구에게도 기댈 생각을 못해요”… ‘버팀목’ 없이 고립되는 청년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922502617

 

⑫[좌담회] “예기치 않은 임신은 재난상황…생부에게 더 책임 물어야”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922513086

 

에필로그 - 이중잣대에 지친, 미혼모들의 속마음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924502371


사건팀=김선영·정지혜·박유빈·조희연·김나현·윤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