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슈퍼투스칸 와인 뛰어넘은 알토 아디제 코르타치아 로사를 아십니까 [최현태 기자의 와인홀릭]

이탈리아 볼차노 남부 와인산지 코르타치아 보르도 스타일 레드 와인 유명/매년 프랑스 그랑크뤼·이탈리아 슈퍼투스칸·미국 나파밸리 컬트 와인과 맞대결/전세계 전문가 80여명 블라인드 심사/사시카이아·오퍼스원 등 유명 와인 모두 제치고 1위 올라

 

알토 아지제 와인 서밋 개막식.

“자! 이제 마지막 4번째 플라이트 심사 결과를 발표하겠습니다. 1위는 바로 이탈리아 알토 아디제 비냐 토렌 리제르바(Vina Toren Riserva) 입니다!”

 

진행자가 심사결과를 발표하자 장내 크게 술렁인다. 이름도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이탈리아 최북단 산지 알토 아디제(Alto Adige) 와인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슈퍼투스칸의 원조 사시카이아를 밀어내고 1위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심사위원 80여명은 자신들이 매긴 점수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이탈리아의 보르도 와인’이자 슈퍼투스칸을 뛰어넘는 와인을 찾아 코르타치아(Cortaccia)로 떠난다.

파리의 심판 현장.

◆‘알토 아디제의 심판’

 

1976년 프랑스에서 열린 ‘파리의 심판’은 와인업계의 큰 충격을 준 사건으로 유명하다. 당시만 해도 와인의 변방이던 미국 캘리포니아 나파밸리 와인들이 난다 긴다 하는 유명한 프랑스 그랑크뤼 1등급 레드 와인과 부르고뉴 빌라쥐급 화이트 와인들을 모두 제치고 1위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심사위원은 그랑크뤼클라세연합회 회장, 와이너리 오너, 와인학교 교수, 미쉐린 가이드 스타 레스토랑 셰프와 소믈리에 등 전원 프랑스인으로 구성됐기에 프랑스 와인업계는 충격의 도가니에 빠졌다. 반면 나파밸리 와인은 이 사건을 계기로 전세계에 이름을 또렷하게 각인했고 최고급 컬트 와인이 탄생하면서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된다.

 

코르타치아 와인 품평대회가 열린 라임부르그 리서치센터.
더 록 셀러 입구 조형물.

지난 9월 이탈리아 알토 아디제주 남부 마을 코르타치아(Cortaccia)에서도 이와 비슷한 ‘알토 아디제의 심판’ 코스타 로사 와인 품평대회 볼차노에서 남쪽으로 차로 30분 거리인 대회 장소 라임부르그 리서치센터(Laimburg Research Center) 열렸다. 깎아지른 절벽 밑에 자리잡은 건물 앞에 설치된 분수 조형물이 눈길을 끈다. 손수확한 포도를 담은 통을 등에 진 농부가 허리를 숙여 포도를 쏟아붓는 모습을 표현했는데 포도대시 물이 쏟아진다.

 

코르타치아 와인 품평 대회 현장.
코르타치아 와인 품평 대회 현장.

지하 동굴처럼 꾸민 심사장 더 록 셀러(The Rock Cellar)로 들어서자 긴장감이 감돈다. 심사위원 80여명은 전세계 415명에 불과한 ‘와인의 신’ 마스터 오브 와인(MW), 와인 교육자, 언론인 등으로 구성됐고 한국을 대표해 기자도 심사위원으로 참석했다. 4차례 진행된 심사 대상 와인은 각 3종. 코르타치아 로사 와인 1종과 프랑스, 이탈리아, 미국 유명 와인들의 맞대결로 구성했다. 또 플라이트 마다 심사대상 코르타치아 로사 와인의 올드 빈티지를 한 종씩 넣어 번외로 심사했다.

 

사시카이아(왼쪽)와 코르타치아 와인.
오퍼스원(왼쪽에서 두번째)과 코르타치아 와인.

결과는 충격적이다. 4차례 플라이트에서 모두 알토 아디제 와인들은 미국 유명 컬트와인 오퍼스원, 이탈리아 슈퍼투스칸 사시카이아와 가야 카마르 칸다, 프랑스 그랑크뤼 클라세 샤토 브랑 깡드낙, 샤토 클리네 등을 제치고 모두 최고점을 받았다. 두번째 플라이트에서만 공동 1위에 올랐을 뿐 나머지는 모두 코르타치아 로사 와인이 단독 1위다.

 

샤토 브란 깡드낙과 코르타치아 와인.
가야 카마르칸다(왼쪽), 샤토 클리네(왼쪽에서 세번째)와 코르타치아 와인. 
심사결과.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코르타치아는 알토 아디제의 다른 지역과 달리 레드 와인, 특히 보르도 스타일의 레드 와인을 생산한다. 코르타치아의 기후와 토양이 보르도를 대표하는 품종 카베르네소비뇽, 메를로, 카베르네프랑 생산에 이상적인 조건을 지녔기 때문이다. 포도밭은 해발고도 220∼900m에 달하고 코르타치아 북쪽산지는 메를로가 좋아하는 클레이 토양, 남쪽 산지는 카베르네소비뇽이 좋아하는 자갈, 모래 토양이다. 일조량이 좋고 높은 해발고도 덕분에 일교차가 커 포도가 산도를 잘 움켜져 좋은 품질의 포도가 생산된다. 고대로마시대부터 포도를 재배했으며 19세기 바론 위드만(Baron Widmann)과 카르리 오토(Carli Otto)가 카베르네소비뇽을 처음 심은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 코르타치아를 대표하는 4개 와이너리 티에펜브루너(Tiefenbrunner), 칸티나 쿠르타취(Cantina Kurtatsch), 바론 위드만, 페터 디폴리(Peter Dipoli)는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와인의 잠재력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2015년부터 알토 아디제 와인 서밋 행사 일환으로 코르타치아 레드 와인 품평대회를 열어 와인의 우수성을 알리고 있다.

 

알토 아디제 위치.        알토 아디제 와인협회
코르타치아 위치.          코르타치아와인협회

◆3000년 역사 담긴 알토 아디제 와인

 

이처럼 유명 와인과 맞대결을 펼쳐도 지지 않을 수 있다는 코르타치아 생산자들의 자신감은 하루 아침에 이뤄진 것은 아니다. 알토 아디제 와인은 2500∼300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고대 이탈리아를 지배했던 에투리리안이 와인을 양조할 때 사용한 포도씨, 포도나무 가지치기 농기구 등 유물이 베르사노네(Bressanone)에서 발견됐는데 적어도 기원전 500년 또는 그 이전부터 와인을 만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유럽의 포도가 알토 아디제에 전파된 것은 700년쯤으로 당시 수도원 40여곳의 수도사들이 와인을 만들기 시작했다. 1142년에 지은 수도원에서는 지금도 와인이 생산된다.

 

코르타치아 산지별 해발고도.             코르타치아와인협회
코르타치아 품종별 재배 현황.   코르타치아와인협회

850년 오스트리아 요한 폰 외스터라이히(Johann von Osterreich) 대공 지시로 알토 아디제에 리슬링, 카베르네 소비뇽, 메를로, 피노누아를 심었는데 이는 토스카나보다 100년 정도 앞선 시점이다.

 

알토 아디제 포도밭은 해발고도 200∼1000m에 달하는 완벽한 산악지대. 알프스와 인접해 있지만 해발고도 4000m에 달하는 오르틀스 그룹(Ortles Group) 봉우리가 매서운 추위를 막아줘 일조량은 보르도와 비슷한 300일이다. 또 남쪽 가르다 호수에서 매일 오후 불어오는 따뜻한 남풍 오라(Ora)가 아디제 밸리를 통해 꾸준히 유입되기 때문에 산악지대이지만 뛰어난 레드와인도 재배된다.

 

알토 아지제 와인 서밋 개막식.
알토 아지제 와인 서밋 개막식.
알토 아디제 스파클링 와인을 소개하는 소믈리에.
전통방식으로 만드는 스파클링 Praeclarus.
전통방식으로 만드는 스파클링 Pfitscher.

◆청정 와인의 매력에 빠지다

 

알토 아디제 와인협회는 매년 전세계 와인 전문가들을 초청해 다양한 행사를 통해 와인을 알리는 알토 아디제 와인 서밋 행사를 연다. 볼차노의 역사적인 마레트쉬 캐슬(Maretsch Castle)에서 진행된 개막행사에는 다양한 스파클링 와인이 소개됐다. 특히 샴페인처럼 병에서 2차 발효하는 전통방식으로 빚는 스파클링이 대거 선보여 큰 주목을 받았다.

 

알토 아디제 와인 시음행사.
알토 아디제 와인 시음행사.

97개 와이너리 290여종이 선보인 대규모 시음행사도 열렸다. 보통 시음 행사는 스탠딩으로 진행돼 정신이 없을 정도로 산만하기 마련인데 독일 문화가 깃든 알토 아디제는 사뭇 다르다. 와인 전문가들이 자기 자리에 앉아서 차분하게 테이스팅한다. 와인 목록을 보고 시음하고 싶은 와인의 번호를 종이에 적어내면 소믈리에가 바구니 한번에 6종을 가져와 잔에 따른다. 도서관처럼 침묵이 흐르는 환경에서 시음하니 와인의 맛과 향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우리나라도 이런 방식의 시음 행사를 도입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알토 아디제 와인협회장 안드레아 코플러.
피르미안 캐슬 알토 아디제 와인 서밋.
피르미안 캐슬 알토 아디제 와인 서밋.
피르미안 캐슬 알토 아디제 와인 서밋.

알토 아디제의 역사적인 피르미안 캐슬(Firmian Castle)에선 알프산을 배경으로  정통 알파인  요리와 알토 아디제의 프리미엄 와인을 즐기는 디너도 열렸다. 이 행사에서도 다양한 전통방식 스파클링 와인과 화이트 품종 실바너, 케르너, 샤르도네, 소비뇽블랑, 피노비앙코 등이 소개됐다. 

 

생 폴 교회.
생 폴 와이너리 조합 생산자.

볼차노 서쪽 와이너리 생 폴(St.Paul)에서는 시골 마을의 넉넉한 인심도 만난다. 마을 어디서나 보이는 생 폴 교회 높은 종탑을 와인 상징으로 삼은 생 폴은 1907년에 설립돼 100년이 훌쩍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조합 와이너리. 조합원의 아담한 집 마당으로 들어서자 인심 좋게 생긴 주인장 아주머니 자매가 지역 전통 음식을 정성스레 내놓는다.

 

생 폴 전통방식 스파클링. 
칸티나 콜터렌지오 소비뇽블랑.
아바지아 디 노바첼라 피노누아 Praepositvs

생 폴은 스파클링을, 함께한 와이너리 칸티나 콜터렌지오(Cantina Colterenzio)는 소비뇽 블랑, 아바지아 디 노바첼라(Abbazia di Novacella)는 피노 누아를 선보였다. 특히 20년이 지난 2002년산 피노누아는 우아한 향수향이 넘쳐나 감탄이 쏟아진다. 프랑스 부르고뉴 유명 피노누아 와인 샹볼 뮈지니나 쥬베르 샹베르탱도 울고 갈 맛이다. 알토 아디제의 무한한 잠재력은 과연 어디까지 펼쳐질까. 앞으로가 더 기대된다. 

 

최현태 기자는 국제공인와인전문가 과정 WSET(Wine & Spirit Education Trust) 레벨3 Advanced, 프랑스와인전문가 과정 FWS(French Wine Scolar), 뉴질랜드와인전문가 과정 등을 취득한 와인전문가입니다. 매년 유럽에서 열리는 세계최대와인경진대회 CMB(Concours Mondial De Bruselles) 심사위원, 소펙사 코리아 소믈리에 대회 심사위원을 역임했고 2017년부터 국제와인기구(OIV) 공인 아시아 유일 와인경진대회 아시아와인트로피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보르도, 부르고뉴, 상파뉴, 루아르, 알자스와 이탈리아, 호주, 체코, 스위스, 중국 등 다양한 국가의 와이너리 투어 경험을 토대로 독자에게 알찬 와인 정보를 전합니다.


볼차노(이탈리아)=글 사진 최현태 선임기자 htchoi@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