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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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 렉카’ 사회적 문제”라는 국민이 90%인데 ‘이강인 가짜뉴스’ 여전히 확산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연구센터, 20~50대 누리꾼 1000명 대상 온라인 설문조사
‘사이버 렉카’ 콘텐츠 본 이유로는 ‘제목과 썸네일이 눈길 끌어서’가 가장 많아
유튜브에서 퍼지는 ‘이강인 가짜뉴스’…약 400개 허위 영상으로 7억원 상당 수익 발생 추정
유튜브에 올라온 이강인 가짜뉴스 채널 사례. 파일러 제공.

 

연예인이나 스포츠 선수·정치인 등이 연루된 부정적 사건·사고를 핵심 소재로 자극적 영상을 만들어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 유튜브에서 퍼뜨리는 유튜버인 이른바 ‘사이버 렉카’가 사회적 문제라는 데 우리나라 국민 10명 중 9명이 동의했다.

 

‘사이버 렉카’는 교통사고 처리를 위해 현장에 출동하는 ‘렉카’와 ‘사이버’ 합성어로, 유명인 관련 사건·사고 정황 발생 시 온라인 공간에서 달려드는 유튜버들이 교통사고 현장에 경쟁적으로 나타나는 렉카와 비슷하다는 이유에서 생긴 용어다.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연구센터가 국내 20~50대 누리꾼 총 1000명을 대상으로 지난달 14~18일 닷새간 진행해 4일 결과를 공개한 온라인 설문조사에서 ‘사이버 렉카가 사회적 문제라는 데 인식하나’라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의 92%가 ‘동의한다’고 답했다. 구체적으로 ‘매우 동의한다’는 43.3%이며 ‘약간 동의한다’는 48.7%다.

 

전체 응답자의 71.4%는 ‘사이버 렉카가 제작한 콘텐츠를 본 경험이 있나’라는 질문에 ‘있다’고 답했고, ‘없다’는 28.6%다. 연령별로는 20대에서 사이버 렉카 콘텐츠를 본 적 있다는 응답자의 비율이 83.6%로 가장 많았고, 30대(70.0%), 40대(66.8%), 50대(65.2%)로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비율이 점점 낮아졌다.

 

사이버 렉카 콘텐츠를 본 응답자 총 714명 중 가장 많이 선택한 시청 이유는 ‘제목과 썸네일이 눈길을 끌어서’가 59.2%로 가장 많았다. 이어 ‘정보를 빠르게 알려고(34.3%)’, ‘상세한 내용을 알려고(31.1%)’, ‘시청한 동영상에 이어 재생돼서(24.8%)’, ‘내용이 재미있을 것 같아서(16.4%)’, ‘시간 때우기 용도로(13.7%)’, ‘누군가 공유해줘서(9.2%)’, ‘대화 소재로 삼으려고(3.8%·이상 중복 선택)’ 순이었다.

 

자극적인 제목과 썸네일 등으로 사이버 렉카의 콘텐츠를 보면서도 그 내용이 정확한 사실에 근거를 둔다고 생각하는 응답자는 18.8%로 낮은 편이었다. 사건의 본질을 심층적으로 다룬다는 데 동의한 응답자는 23.0%였고, 사건 당사자의 입장을 충분히 취재한다고 보는 응답자도 14.8%에 불과했다.

 

내용 신뢰성에 낮은 동의율을 보인 것과 달리 사람들의 ‘관심도’에 맞게 적정한 콘텐츠를 만든다고 답한 응답자 비율은 44.0%로 다른 항목보다 상대적으로 높았다.

 

아울러 ‘추측성 내용·근거 없는 의혹 제기가 주를 이룬다’는 문항의 동의 비율은 84.6%(매우 동의 39.6%·약간 동의 45.0%)'였고, ‘사건 자체를 자극·선정적으로 다루는 데 집중한다’에도 89.2%(매우 동의 59.4%·약간 동의 29.8%)가 동의했다.

 

이 같은 이유인지 ‘사이버 렉카의 콘텐츠 회피 경험’ 질문에 전체 응답자의 53.2%가 ‘있다’고 답해 영상 제목이나 썸네일 등을 우연히 마주했을 때 의도적으로 시청을 꺼리는 것으로 조사됐다.

 

‘사이버 렉카’의 콘텐츠를 보는 이유.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연구센터 제공.

 

사이버 렉카가 사회적 문제라는 점에 동의한 총 920명을 대상으로 ‘근절되지 않는 이유’를 묻자, ‘콘텐츠 생산자의 비윤리성’이 92.6%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다만, 두 번째로 많은 ‘언론의 책임 소홀(90.8%)’은 언론도 사이버 렉카 콘텐츠 확산에 책임이 크다는 점을 시사했다. 이 외에 ‘수요에 따른 공급(90.1%)’, ‘콘텐츠 유통 플랫폼(유튜브 등)의 책임 소홀(87.5%)’, ‘규제 당국의 책임 소홀(87.3%·이상 중복 선택)’ 등이 뒤를 이었다.

 

사이버 렉카 콘텐츠에 따른 유명인의 권리 침해 문제 해결 방안에는 전체 응답자의 94.3%가 ‘가해자에 대한 처벌 강화’를 제시했다. 이와 함께 ‘권리 침해 피해자를 구제할 수 있는 제도 강화(93.4%)’, ‘타인 권리 침해 콘텐츠에 대한 플랫폼의 자율 규제 강화(88.2%)’, ‘권리 침해 콘텐츠의 위법·위험성을 알리는 캠페인 활성화(86.4%·이상 중복 선택)’ 등 순이다.

 

이번 연구를 진행한 양정애 한국언론진흥재단 책임연구위원은 “사이버 렉카가 만드는 유명인에 관한 콘텐츠는 사실 확인을 거치는 경우가 드물고, 조회수와 구독자를 늘리기 위해 자극적인 내용으로 많이 채운다”며 “그 과정에서 유명인에 관한 허위사실 유포나 인격권 침해가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언론이 해당 사건을 다루려면 취재 과정을 거쳐 기사화하는 시간이 필요한 데 비해, 사이버 렉카는 근거 없는 의혹 제기로도 콘텐츠를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양 연구위원은 “사이버 렉카가 제기한 의혹을 언론이 제대로 된 검증과정을 거치지 않고 중계하듯 보도해 이슈를 확대·재생산함으로써 문제를 더 심각하게 만든다”며 “언론이 받아쓴 내용을 통해 그 허위사실에 대해 이용자들은 확신을 갖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밝혔다. 사이버 렉카의 콘텐츠에 그치지 않고 언론이라는 경로를 통해 재확산 시 허위사실을 ‘사실’로 이용자들이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부각하고, 언론의 책임을 강조한 것으로 해석됐다.

 

언론진흥재단은 총 9954명에게 안내 이메일을 발송했고 그중 2227명이 조사 페이지에 접속했다. 성별·연령대·거주지역별 할당을 이유로 조사과정에서 탈락하거나 중간에 자진 중단한 이들을 제외하고 응답을 완료한 사람은 1196명이며, 데이터 클리닝 과정 등을 거쳐 총 1000명의 데이터를 분석에 활용했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0% 포인트다.

 

‘사이버 렉카’의 사회적 문제에 동의하는 국민이 많지만 여전히 유튜브는 이들의 온상이다.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카타르 아시안컵’ 4강전을 앞두고 한국 국가대표 축구팀 내에서 다툼을 벌인 사실이 알려진 뒤 일명 ‘탁구 게이트’에 중심에 섰던 이강인에 대한 가짜뉴스가 유튜브에서 계속 생산·유포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동영상 콘텐츠 맥락 분석을 하는 인공지능(AI) 기업 ‘파일러’에 따르면 해당 이슈가 알려진 지난달 14∼27일 이강인 관련 가짜뉴스 콘텐츠로 감지된 영상은 총 361개, 채널 195개가 확인돼 광고 게재가 차단됐다.

 

해당 영상 총 조회수는 무려 6940만8099회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를 토대로 영상 게시자 등에게 7억원 상당의 광고 수익이 발생한 것으로 ‘파일러’는 추정했다.

 

영상 제목도 ‘내 눈앞에서 이강인 고의 폭행 목격: 클린스만, 손흥민 구타 사건 모든 것 폭로, 이강인, 손흥민 손 부러뜨린 영상 유출’, ‘이제 이강인 유니폼 안 팔린다…PSG 방출 임박, 미공개 독단적 장면 대 충격, 국가대표 인생 끝났다’ 등 자극적인 제목들과 썸네일이 대부분이다.

 

파일러는 규제 사각지대에 있는 해외 플랫폼에서 자극적인 이슈나 가짜뉴스를 지속해 생산·유포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유튜브 광고 특성상 광고가 어떤 지면에 노출되는지를 광고 담당자가 일일이 확인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며 인공지능 애드테크 설루션을 활용해 부적절한 광고 노출과 가짜뉴스 크리에이터 후원 구조를 차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