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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 KBS 아나운서’, 나는 왜 KBS를 나왔는가 [김기자와 만납시다]

2010년3월1일~2024년2월29일 재직…14년 KBS 생활
육아휴직 중 미디어 변화 예감…이제는 TV 안 보는 사람들
매일 오전 6시~오후 2시 근무 후에는 ‘뉴미디어 프로젝트팀’ 활동까지
공영방송은 누구나 ‘콜라’를 원할 때 ‘깨끗한 물’이어야 한다
퇴사 날 ‘괜찮은 인재가 시장에 나왔다’ SNS에 글…“보여줄 게 많다”
김한별 전 KBS 아나운서가 재직 당시 만든 뉴미디어 프로젝트팀 소개 티저 영상. 김한별 전 아나운서 제공

 

2010년 3월1일 입사해 2024년 2월29일자로 퇴사했다. 2월28일도 아닌 4년마다 돌아오는 ‘윤일(閠日)’에 찍은 군더더기 없는 마침표다. 아나운서 지망생이라면 꿈꾸는 KBS 아나운서로 14년을 꽉 채운 가운데 새로운 시작을 하겠다며 회사 문을 박차고 나왔다.

 

‘꽤 괜찮은 인재’가 시장에 나왔다며 퇴사를 널리 알려달라는 글을 KBS 출입증과 함께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렸다. 매일 아침 KBS 뉴스를 진행하며 국민의 하루를 열었던 김한별 전 KBS 아나운서 이야기다.

 

◆육아휴직 중 예감한 미디어의 변화…“TV를 못 봐도 불편하지 않았다”

 

“길면 길고 짧으면 짧은 시간, KBS에서의 14년을 나는 두 부분으로 나눈다.”

 

앞서 지난 20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IFC몰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 전 아나운서는 ‘퇴사하기까지의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는 취지 질문에 답하기 앞서 지난날을 돌아보며 이처럼 말했다. KBS 최초 남자 아나운서 육아휴직 기록을 보유한 그는 휴직 전까지 7~8년을 ‘1부’, 그 후를 KBS에서의 ‘2부’로 구분했다.

 

방송이 재밌고 한창 시간 가는 줄 모르던 중 들어간 육아휴직에서 미디어 시장 변화를 예감했다. 육아로 TV 챙겨보지 못한 가운데서도 일상의 불편을 느끼지 못한 일은 둘째치고, 매일 아침 뉴스를 진행하던 자신이 방송을 보지 않는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누군가 ‘일부러 뉴스를 안 본 것 아니냐’고 물을 수도 있지만 그는 의도적으로 TV를 피하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내가 KBS 직원인데 방송을, 조금 더 정확히 표현하면 ‘공중파 뉴스’가 없어도 불편하지가 않았다. 필요한 정보는 (유튜브와) 인터넷 등에서 언제든 찾아볼 수 있었고, 스마트폰이 옆에 있으니 굳이 지상파 방송을 틀어 시청할 필요가 없었다.”

 

김한별 전 KBS 아나운서가 재직 당시 만든 뉴미디어 프로젝트팀 소개 티저 영상. 김한별 전 아나운서 제공

 

고장 난 TV 수리에 조급하지 않고, ‘공중파에 있던 내가 공중파가 없어도 살고 있고, 다른 사람들도 나와 비슷하다’는 생각만 했다. 김 전 아나운서는 육아 경험 등에 관한 글을 온라인에 꾸준히 올리고 있었는데, 아이 영상을 찍고 편집해 유튜브에 올리다보니 의도치 않게 꽤 오래전부터 유튜버 생활도 하고 있었다.

 

기록 매체로 유튜브를 활용하던 그는 진행하던 ‘콘서트 필’ 프로그램에 나온 가수의 노래나 토크를 그냥 묻어두기가 아까웠다.

 

2004년 처음 전파를 탄 ‘콘서트 필’은 다양한 뮤지션과 직접 소통하고 싶은 음악을 사랑하는 지역 시청자들을 위해 마련한 KBS 광주방송총국의 최초 공개 음악 프로그램이다. 본방송은 자정에 가까운 매주 화요일 오후 11시40분부터 그다음 날 0시30분까지였는데, 좋은 의도에도 시청자 입소문을 못 타는 게 안타까워 ‘더 많은 사람이 보게 할 수 없을까’ 방법을 연구하다 유튜브 채널 게재 의사를 사측에 알렸다.

 

“‘콘서트 필’이라는 좋은 프로그램이 홍보도 안 되고, 너무 늦은 시간에 방송했다. 더 많은 사람이 보게 할 수 없을까 생각하다가 ‘유튜브에 올려도 되나’라는 질문을 회사에 했는데, ‘해봐라’는 답을 받아 그렇게 영상을 올리게 됐다.”

 

흔쾌한 승낙은 뜻밖의 일도 아니었다. 방송사와 언론사는 유튜브에 큰 무게를 두지 않았었고, TV와 공식 홈페이지 VOD(Video On Demand·주문형 비디오) 서비스가 있는 마당에 다른 플랫폼을 빌려서까지 영상 올릴 필요도 없다고 여겼다.

 

김한별 전 KBS 아나운서가 재직 당시 만든 뉴미디어 프로젝트팀 소개 티저 영상. 김한별 전 아나운서 제공

 

◆EXID 역주행에 조회수 폭발한 김한별의 아카이브

 

육아휴직 중 TV 보지 않는 삶에 한 차례 익숙했던 김 전 아나운서가 다시금 유튜브와 같은 뉴미디어의 위력을 새삼 실감한 건 2014년 11월, 걸그룹 EXID의 역주행이 가요계에 커다란 바람을 일으켰을 무렵이다.

 

역주행 넉 달 전쯤 ‘콘서트 필’에 EXID가 나왔을 때가 이들의 사실상 마지막 방송이었는데, 다른 가수들처럼 출연 영상을 편집해 유튜브에 올려둔 방송이 불과 몇 달 후 이들의 역주행과 함께 조회수가 급상승했다. 아까운 가수라는 생각에 남긴 영상 조회수가 폭발적으로 올라가자 김 전 아나운서조차 의아해했다. 늘어난 유튜브 수요와 영상 제작의 필요성을 실감한 사측이 과거 가수 자료 아카이브를 구상하면서 김 전 아나운서의 유튜브 채널을 이때 발견했다.

 

“회사 감사부서에서 연락이 왔다. ‘왜 무단으로 회사 콘텐츠를 유튜브에 올렸냐’더라. ‘허락받고 올렸다’며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더니 ‘김한별 아나운서의 공로는 인정하지만 회사 콘텐츠를 무단으로 유튜브에 올리는 것은 불법입니다’라고 그랬다.”

 

‘네 마음대로 해라’며 유튜브 영상 문제 삼지 않던 회사의 ‘왜 마음대로 올리느냐’던 반응은 할말을 잃게 했다.

 

김한별 전 KBS 아나운서가 재직 당시 만든 뉴미디어 프로젝트팀 소개 티저 영상. 김한별 전 아나운서 제공

 

김 전 아나운서가 ‘뉴미디어 프로젝트팀’에 들어간 것도 이때다. 기획자를 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얘기가 회사에서 나왔다. 나름 아나운서 생활도 오래 했고 다른 부서 발령도 괜찮겠다 싶어 응했는데, 정작 회사는 아나운서 인력이 소중해 그를 인사내지 않았고, 결국 김 전 아나운서는 매일 오전 6시~오후 2시까지 이어지는 근무를 끝낸 후에도 회사에 남아 뉴미디어 프로젝트팀 활동을 했다.

 

현재 구독자 25만명을 보유해 가수들의 전설의 무대를 보여주는 식으로 운영되는 ‘901K’ 채널의 시작이 김 전 아나운서가 만든 ‘플레이버튼’이라고 한다.

 

첫발은 내디뎠지만 이것저것 ‘되는대로 해보자’ 식은 콘텐츠 백화점을 만들 뿐이었다. 특색도 없는 중구난방에 시청자가 들어올 리 없었다. 방대한 콘텐츠의 무작정 가공은 효과가 없었다. 신생 채널이나 다른 온라인 미디어가 가질 수 없는 대량의 콘텐츠를 활용한 ‘아카이브’식 운영이 이쯤 시작됐다.

 

“전국노래자랑이나 ‘유희열의 스케치북’ 같은 프로그램을 가져와서 ‘쇼츠(shorts)’ 처럼, 이승철을 예로 들면 연대별 이승철 무대를 비교하는 식의 기획으로 콘텐츠를 만들어보자고 했는데 나름 잘 됐다.”

 

김한별 전 KBS 아나운서가 재직 당시 만든 뉴미디어 프로젝트팀 소개 티저 영상. 김한별 전 아나운서 제공

 

◆“나는 ‘탑 아나운서’도 아니었고 그래서 쉽게 퇴사를 결심했다”

 

데스크에 앉아 방송 카메라를 보며 남의 이야기를 전하던 김 전 아나운서에게 ‘내 이야기를 남에게 들려주고 싶다’는 마음이 꿈틀했다.

 

몇만 명이 보는 뉴스에서 ‘이런저런 일이 있었습니다’를 전하는 것, 불과 몇십 명이더라도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앞에 있다는 것. 후자에서 더 희열을 느낀 그는 ‘난 이런 사람이구나’ 느꼈고, 미디어 시장과 방송국 환경 변화를 눈으로 보면서 조금씩 퇴사를 생각했다.

 

어려운 방송환경 구조 등을 이유로 내건 KBS의 희망퇴직 신청 공고가 지난달 났고, 이미 지난해 11월부터 남겨뒀던 육아휴직에 들어갔던 그는 미련 없이 사표를 던졌다.

 

“선택은 쉬웠다. 일단 나는 ‘탑(TOP) 아나운서’가 아니었다. 그래서 더 부담 없이 결정할 수 있었다. 가족도 내가 행복할 수 있는 부분에 지지를 보냈다. 마지막 날 인사를 드리러 아나운서실에 갔고, 회사에서 만들어준 감사패도 받았다.”

 

일부는 공영방송과 정치의 연결성에 집중해 그런 이유에서 퇴사한 것 아니냐는 질문을 했다. 하지만 김 전 아나운서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확고히 밝혔다. 대한민국의 ‘축소판’으로도 불린 KBS 내에는 다양한 목소리와 색깔이 존재했고 그에 따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지만 그것만이 퇴사의 이유는 아니라고 했다.

 

“나와 내 주변에서는 적어도 ‘좋은 콘텐츠’를 만들고 싶은 욕심이 많은 사람이 대다수다. 방송국이니까. 정치 진영을 떠나 시청자가 좋아할 만한 재미있는 방송을 만들고 싶고 그게 다일 수 있는데, 외풍이 불어 내 의도와 상관없는 오해를 다른 사람들에게 받는다면 아마 콘텐츠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는 힘들지 않을까.”

 

재직 내내 ‘균형감’을 잃지 않으려 했다. ‘너의 생각도 옳고 나도 맞다’는 자세는 기나긴 아나운서 생활에 윤활유가 됐다. 국민은 누구나 정치적 성향이 있고 다른 생각도 폭넓게 용인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김 전 아나운서는 말했다.

 

김한별 전 KBS 아나운서가 재직 당시 만든 뉴미디어 프로젝트팀 소개 티저 영상. 김한별 전 아나운서 제공

 

◆누구나 콜라를 원할 때, 공영방송은 ‘깨끗한 물’이어야 한다

 

몇 달 후, 몇 년 후의 방송 시장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대학 시절 전공과 지금 이론을 비교하는 것도 완전한 진리는 아닌 듯하다. ‘맞다’며 고개를 끄덕였던 예전의 이야기가 이제는 절대적이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일까. 아나운서 지망생 대상 특강에서도 그들에게 ‘이렇게 준비하라’는 말을 하는 것조차 조심스러워했다.

 

그래도 진리는 있다. MBC 예능국 PD 출신 주철환 아주대학교 교수의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시절 들은 강연을 김 전 아나운서는 소환했다.

 

“사람이 수도꼭지 틀었을 때, 물이 아니라 콜라가 나오면 무척 신기해할 거라고 했다. 물을 원해서 틀었는데 콜라가 나오니 얼마나 좋겠나. 하지만 사람은 그렇게 살 수 없다.

 

공영방송은 사람이 콜라에 익숙하고 더 자극적인 걸 원할 때도, 더욱 깨끗한 물 역할을 해야 한다. 목이 말라 물을 찾을 때, 예전보다 훨씬 깨끗한 물로 사람의 목마름을 해소할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공영방송이 물의 역할을 해야 한다던 말씀이 인상 깊었고, 지금도 그 말씀은 맞다고 생각한다.”

 

김 전 아나운서는 강연을 떠올리면서 “우리도 태풍이나 홍수 등의 자연재해가 났을 때, 국가기간 방송사니 24시간 특집으로 헬기를 띄우고 전국 네트워크를 가동해 상황을 전달한다”고 말했다. 시청률을 따지면 쉽게 손댈 수 없는 영역이지만 공영방송이므로 당연한 일이라는 거다.

 

김 전 아나운서는 이것이 ‘수신료의 가치’라고 강조했다.

 

“단 한 명이 보더라도 우리 방송으로 누군가 피해를 입지 않고, 누군가의 생명을 살릴 수 있다면 공영방송인의 사명을 다한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현장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기자 동료들과 카메라 감독님을 존경한다.”

 

김한별 전 KBS 아나운서가 재직 당시 만든 뉴미디어 프로젝트팀 소개 티저 영상. 김한별 전 아나운서 제공

 

인터뷰 전날 김 전 아나운서는 새로운 프로필 사진을 찍었다.

 

2년 전 만났던 사진작가를 오랜만에 찾아갔는데, ‘더 한별님같은 모습이 나오네요’라는 말을 들었단다. 자기는 달라진 게 없는데 휴직으로 회사를 멀리하다 보니 그런 것 아니겠냐고 그는 인터뷰에서 농담했다.

 

14년간 매일 오전 4시에 일어난 리듬을 일부러 깨보려 늦게도 자보고 늦게도 일어나봤지만, 몸에 배어 있는 이유인지 결국 자신은 ‘아침형 인간’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언급했다.

 

김한별 전 KBS 아나운서가 재직 당시 만든 뉴미디어 프로젝트팀 소개 티저 영상. 김한별 전 아나운서 제공

 

◆여기저기 흩어지는 미디어…“난 보여줄 게 많은 인재다”

 

‘미디어(media)’의 어원은 라틴어로 ‘medium’, 중간 혹은 사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우리가 미디어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고 했을 때, 균형감을 갖고 중립적으로 양쪽 이야기를 고르게 전달해야 한다며 강조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과거 일부 몇 가지에 불과했던 미디어는 수십 년 사이 증가폭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늘어났고, 그 미디어 자리도 ‘너와 나의 가운데’가 아닌 한쪽에 치우치거나 누군가에게 가까워졌다.

 

“우리가 가운데라고 생각한 게 내가 생각할 때만 그렇고, 다른 사람이 볼 때는 ‘나와는 멀다’고 생각할 수 있다. 내가 아무리 ‘여기가 가운데야’라고 해도 상대방은 그렇지 않을 수 있지 않나. 무엇보다 지금은 그 가운데라는 ‘점’이 너무나도 산발적이어서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그리고 그 점이 예전에는 여의도에 집중해 있었다면 이제는 상암동이든 어디에든 다 있다.”

 

산발하는 미디어 위치만큼 콘텐츠 성격도 다양해졌다. 정해진 시간에 최상의 품질로 방송을 만들었다면, ‘NG(No Good)’도 이제는 무한한 콘텐츠가 된다. KBS 흔적을 벗어보려 하는 김 전 아나운서 지향점도 같다. 성공보다 성장과 실패도 콘텐츠가 될 수 있고, 방송에 담기지 못하던 것들이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다는 이야기다.

 

김한별 전 KBS 아나운서가 마지막 근무 날 찍은 회사 출입증 사진. 김한별 전 아나운서 제공

 

한 시간여 진행된 인터뷰의 마침표를 찍기 전, 그에게 퇴사 날 SNS에 올린 글의 ‘꽤 괜찮은 인재’의 의미가 뭐냐고 묻고서 음성녹음의 정지 버튼을 눌렀다.

 

“보여드리고 싶은 게 많았지만 KBS에서 보여드릴 수 없었던, 정치적인 이유가 아니라 변화하는 미디어로 인해 공영방송에서 보여줄 수 없었던 것들을 갖고 있다는 얘기다. KBS에서 못했지만 다른 플랫폼이나 채널에서 하고 싶은 것들이 많다. 경험과 기획 능력이 있는 꽤나 괜찮은 인재가 나왔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주면 좋을 것 같다.”

 

김한별 전 KBS 아나운서 프로필. 김한별 전 아나운서 제공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