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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무기도 팔자”…군사대국 꿈꾸는 日, 무기 수출 뛰어든다 [박수찬의 軍]

평화 헌법을 내세워 무기 수출을 엄격히 제한했던 일본이 본격적인 무기 판매에 나설 태세다.

 

중국의 군사적 팽창과 우크라이나 전쟁은 일본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군사력을 확장하면서 무기를 판매할 수 있는 여지가 넓어진 것이다.

 

영국·이탈리아·일본이 공동개발할 차세대 전투기(GCAP) 모형이 전시되어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일본은 우크라이나 전쟁 지원으로 재고가 부족해진 미국에 패트리엇(PAC-3) 지대공미사일을 수출했고, 영국·이탈리아와 공동개발하는 차세대 전투기(GCAP)의 제3국 수출도 허용했다. 

 

일본이 다양한 방식으로 글로벌 방위산업 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대할 경우 중장기적으로 상당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한국도 기존 완제품 판매에서 벗어나 공동개발을 통한 수출시장 개척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무기 끝판왕’ 전투기 수출 나선 일본

 

일본 정부는 지난 26일 각의(국무회의)를 열어 6세대 전투기인 GCAP의 수출을 허용하고,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방위장비 이전 3원칙 운용지침을 개정했다. 

 

일본은 타국과 공동개발한 무기의 제3국 수출을 허용하되, 그 대상을 GCAP로 제한했다. 수출 대상국은 일본과 방위장비·기술이전 협정을 맺은 국가로 규정하고, 교전중인 국가엔 판매하지 않기로 했다. 

 

GCAP의 제3국 수출 허용은 일본 무기 판매 정책에서 전환점이 될 부분이다. 

 

일본은 헌법 9조를 근거로 무기의 완제품 수출을 사실상 금지해왔다. 구성품이나 원자재, 장비 등 이중용도로 쓰일 수 있는 것 위주로 판매가 이뤄졌다. 

 

GCAP 편대가 비행하는 상상도. BAE 시스템스 제공

그러다 지난 2014년 제2차 아베 신조 정권에서 방위 장비 이전 3원칙을 제정, 무기를 해외에 판매할 길을 열었다.

 

일본의 첫 무기 수출 무대는 호주였다. 일본은 2015년 호주가 44조원을 들여 차세대 잠수함 12척을 도입하려는 계획에 호응, 자국산 소류급 잠수함을 제안했다.

 

잠수함 수주를 발판으로 무기 수출에 활로를 열겠다는 의도였다. 하지만 호주는 프랑스를 선택했다.

 

방산수출은 정부의 지원이 필수다. 하지만 제작 업체도 영업 등의 능력이 충분히 뒷받침되어야 정부 지원도 효과가 있다.

 

사업에 참여한 일본 방위산업체들은 해외 마케팅과 영업 활동 경험이 부족했다. 일본 정부 및 자위대와의 국내 협상과 해외 잠재적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마케팅 및 협상은 차원이 다르다.

 

일본 업체들은 이같은 부분에 대한 경험이 부족했다는 평가다.

 

방산수출 성공에 필요한 경험과 개념 등이 갖춰지지 않았던 상황에서 수주 실패는 예견된 것이었다.

 

전투기 판매도 마찬가지다. 첨단 국방과학기술의 종합체이며 전략적 의미를 지닌 전투기를 개발, 수출에 성공한다면 일본의 지위는 한 단계 올라설 수 있다. 

 

GCAP가 영국 런던 상공을 비행하는 모습을 그린 상상도. BAE 시스템스 제공

일본은 전투기 설계와 생산에 필요한 산업 전문 지식과 경험이 풍부하다. 하지만 거액이 소요되는 개발 및 양산비는 독자적인 전투기 개발에 큰 걸림돌이다. 방산수출 경험과 해외 영업망이 부족한 것도 문제다. 

 

GCAP는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다. 6세대 전투기인 GCAP는 공동개발국 이외에 제3국 수출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글로벌 방산시장에서 영국·이탈리아는 일본보다 훨씬 많은 경험과 실적을 지니고 있다. 일본은 영국·이탈리아의 움직임에 편승, GCAP을 앞세워 첨단 무기 수출 시장에서 성과를 노릴 수 있다. 

 

공동개발 체제에선 참여국들이 기술 개발 책임과 구성품 생산 등을 분담한다. 일본도 GCAP에 쓰일 구성품 중 일부를 제작, 납품할 전망이다. 

 

GCAP의 제3국 수출이 늘어나면, 관련 구성품 제작과 기술개발을 맡는 일본 업체의 생산 물량 증가는 물론 수출을 통한 경제적 이익도 그만큼 커진다. 

 

막대한 자금력을 앞세운 사우디가 GCAP 참여를 조건으로 ‘현지화’를 내세우는 것에 대해 일본이 거부감을 드러내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평가다.

 

최첨단 기술이 대거 투입된 6세대 전투기 수출에 참여했다는 실적과 경험은 향후 일본의 독자적인 방산수출 활동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줄 수 있다.

 

변수도 존재한다. 일본은 무기 설계와 생산 능력은 갖췄지만, 수출과 마케팅 실적이나 국제공동개발 경험은 영국·이탈리아보다 낮다. 

 

영국·이탈리아가 실적과 경험의 우위를 토대로 GCAP 지분을 더 많이 확보하려고 한다면, 일본이 얻을 이익은 줄어든다. 

 

3국이 동등한 지분을 갖게 된다고 해도 그 과정에서 적지 않은 진통을 겪을 수 있다.

 

실제로 프랑스와 독일, 스페인이 공동개발하는 미래 전투기체계(FCAS)는 기술 및 지식재산권 공유와 일거리 분담 등의 문제를 놓고 3국이 수년간 갈등을 빚었다.

 

GCAP 편대가 이탈리아 로마 상공을 비행하는 모습을 그린 상상도. BAE 시스템스 제공

영국·이탈리아와 일본이 원하는 GCAP의 성능 격차 문제도 있다.

 

GCAP의 요구성능 설정과 기술개발 단계서부터 영국·이탈리아와 일본이 ‘동상이몽’을 할 수도 있다. 

 

일본은 2030년대부터 30~40년간 중국과의 충돌에 대응할 수 있는 군사적 역량을 원한다. 높은 수준의 성능을 지닌 차세대 전투기가 필요하다. 반면 영국·이탈리아가 직면한 위협은 그 정도로 높지는 않다. 

 

요구성능이 과도하게 상승하면 개발비가 늘어나고, 이는 손익분기점이 높아지는 결과로 이어진다. 3국이 모두 만족할만한 수준의 요구성능을 설정해야 하는데, 전장환경이 서로 다른 3국이 이를 조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경험과 요구성능의 차이. 이것은 GCAP 개발과 생산, 수출을 통해 산업·군사적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일본의 의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포스트 K2·K9’ 준비해야 

 

일본의 GCAP 공동개발 참여와 제3국 수출 추진은 한국에도 고민거리를 던져준다.

 

한국은 최근 폴란드에 K2 전차와 K9 자주포, 천무 다연장로켓 등을 대규모로 판매해 ‘K방산’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주목을 받았다.

 

한국군이 사용하는 국산 무기들이 꾸준히 대량생산이 이뤄지면서 가격 경쟁력과 후속군수지원체계를 충분히 갖췄고, 성능도 검증된 덕분에 가능했다.

 

문제는 전 세계를 강타한 우크라이나 전쟁의 충격이 차츰 약해지면서 재래식 장비를 한국 등에서 긴급 구매하는 것보다는 자국이나 역내에서 조달하려는 경향이 뚜렷해진다는 점이다.

 

미군이 쓰던 P-3 해상초계기가 한국 해군용 P-3CK로 바뀌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이같은 문제를 풀어나가려면 글로벌 방산업체 공급망의 일원이 되는 방식으로 소부장(소재·부품·장비) 분야의 수출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해외의 체계종합업체 만든 무기 수출이 늘어나면, 국내 업체의 이익도 커지는 구조다.

 

항공무장과 관련 장비를 다수 개발했던 미국 방산업체 레이시온(현 RTX)의 경우 자사의 장비들을 록히드마틴과 보잉의 군용기에 납품했다. 

 

록히드마틴과 보잉이 해외에 전투기를 수출할 때 레이시온의 항공무장과 레이더는 기체와 더불어 패키지 형태로 함께 팔렸다. 공급망의 일부가 되니 자연스레 매출도 늘어나는 구조다.

 

공급망의 일원이 되어 새로운 수출 영역을 개척하는 것은 방위사업청도 추진중인 사안이다. 

 

지난해 대형수송기 2차 사업에서 국내 기업과의 컨소시엄을 구성하도록 했고, 공중조기경보통제기 구매 시 국내 장비 탑재 등을 조건으로 제시하고 있다. 해외 대형 방산업체가 전 세계에 수출한 무기에 대한 정비 시장 개척 등도 추진할 방침이다.

 

이같은 방식은 효과가 있지만, 한계도 뚜렷하다. 이미 개발이 완료된 무기체계는 전체 시스템에 대한 공급업체가 정해져 있다. 공급망이 완성되어 있는 셈이다. 

 

주일 미 공군 F-15 전투기가 창정비를 받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이 단계에서 공급망에 진입하려고 하면, 성과는 제한적인 수준에 그친다. 수익과 일감을 극대화하고자 치열한 경쟁을 벌였던 기존 공급업체들이 한국 기업에 순순히 지분을 내줄리는 없기 때문이다.

 

부가가치가 높은 첨단 무기의 공동개발 참여는 이같은 제약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다. 공동개발의 주요 파트너 국가가 되면 지식재산권과 기술 공유 및 일감 확보, 구성품 제작 등에서 더 많은 혜택을 얻는다.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국내 방산업체의 역량과 수익을 높이면서, 글로벌 방산업계의 공급망 진입도 한층 쉬워진다. 이는 업체의 자체 투자 역량을 키우는데 도움이 된다.

 

공동개발 참여는 막대한 비용과 기술이 필요하다. 정부 차원에서 정책적 결정을 해야 하는 사안이다. 정부가 공동개발 참여를 통해 소부장 분야 방산수출 확대의 물꼬를 트면, 업계는 수십년 동안 지속적인 이익을 창출할 수 있다. 이는 국익 증진 효과로 이어진다.

 

한국군이 사용중인 무기를 판매해 수출 실적을 올리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일본처럼 장기적 관점에서 산업적 이익과 국가안보를 함께 도모하는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 정부가 해외 선진국의 첨단 무기개발 동향을 주시하면서 기회를 탐색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