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지 마세요, 피부에 양보하세요”를 커피에 적용할 때는 주의해야 한다. 먹어서 탈 나지 않을 정도라면 피부에 마르는 것쯤이야 대수롭지 않게 보인다. 효과는 둘째치고 얼굴에 바르는 행위가 재미있기도 했다. 새로운 쓰임새를 알고 나면 해보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게 인간의 본성이 아닌가?
광고가 첫선을 보였던 2005년쯤 먹을거리를 얼굴에 바른다는 것은 사실 호기로운 시도였다. 카피가 묘하게 사람들의 자존심을 건드리기도 했다. 허겁지겁 배만 채우려 하지 말고 외모에 신경을 쓰라는 눈치를 주는 듯했다. 이에 대한 반발이었을까? 피부에 좋다면 먹을 수 있어야 한다면서 숟가락으로 화장품을 퍼먹는 퍼포먼스가 퍼지기도 했다.
광고가 나온 지 대략 10년 만에는 반전이 일어났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내면에서 비롯된다는 기치와 함께 ‘생선 보자기론’이 나왔다. 싱싱한 생선을 담은 보자기가 물이 간 생선을 싼 보자기보다 깨끗한 것처럼 일단 속이 좋아야 한다는 일침이었다.
광고 카피가 마침내 바뀌었다. 같은 모델이 나와 “몸에 좋은 걸 왜 바르세요. 먹어야지” 하면서 애교를 부렸다. “바르지 마세요. 입에 양보하세요”라는 말이 대세가 됐다. 그런데 커피 문화에서 뒤늦게 아이스 커피를 얼굴에 바르는 장면이 자주 목격되고 있다. 커피 찌꺼기까지 알뜰살뜰 모아 두었다가 각질제거용으로 활용한다. 커피의 쓰임새가 늘어나는 것은 반길 일이지만 주의해야 할 게 있다.
민감한 피부로 스며드는 커피가 ‘순수한 것(Purity)’인지를 따져야 한다. 인위적인 첨가물이 없는 자연 그대로의 것인지를 살펴야 하는 것이다. 아이스 커피를 묻힌 거즈를 올려두면 피부가 진정된다는 사실은 최소한 냉각 자체로 인한 물리적인 효과가 검증된 만큼 손사래를 칠 일은 아니다. 복잡한 준비 단계를 귀찮아하지 않고 공을 들이는 과정에서 심적 안정과 정화 효과도 있으니 일석이조이다. 카페인이 혈관을 수축시키고 피부의 붉은 기운을 줄여주는 효과를 내거나 클로로젠산이 활성산소를 중화해 피부노화를 방지하는 데 도움이 준다는 사실은 동물실험과 국소적 임상시험을 통해 일부 입증되기도 했다.
피부의 두툼한 방어층 때문에 커피액을 발라도 피하의 세포까지 스며들기 힘들다는 적잖은 의사들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커피를 바르는 의식’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커피를 볶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독소물질, 카페인을 제거할 때 사용한 화학물질의 잔여물, 날카로운 커피 입자 등이 해를 끼칠 수 있다는 우려는 커피액과 찌꺼기를 종이필터나 채로 거르면서까지 사용하는 ‘알뜰족’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1000년이 넘는 커피 음용의 역사에서 수많은 사람이 안전성을 검증한 측면도 있다. 하지만 최근 4~5년 퍼진 ‘절임커피’(인퓨즈드 커피·Infused coffee)는 찜찜하다. 맛을 내기 위해 복숭아, 파인애플, 리치 등 과일을 커피에 버무려 만드는 커피들은 알레르기를 유발할 수 있다. 실제로 시나몬을 추가한 커피를 섭취했다가 목숨까지 잃을 뻔한 사건도 벌어졌다. 파는 사람들이야 화려한 향미 때문에 마진을 많이 붙여 파는 재미가 쏠쏠하지만, 비싼 값에 구입해 마시고 바르는 사람들은 경제나 건강관리 측면에서 손해가 아닐 수 없다. 커피를 대할 때 이제는 순수함을 잘 헤아려야 한다.
박영순 커피인문학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