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극장가가 ‘2차 여름대전’에 오른다. 다양한 장르와 개성의 한국영화 두 편, 할리우드 영화 두 편이 한꺼번에 관객과 만난다. 상차림이 풍성하다. 한국영화로는 묵직한 시대극인 ‘행복의 나라’, 발랄한 청춘물 ‘빅토리’가 있다. 할리우드 재난 블록버스터 ‘트위스터스’, 우주 서바이벌 스릴러 ‘에이리언: 로물루스’도 대기 중이다. 지난달 여름 극장가가 ‘인사이드 아웃2’ 외에 큰 흥행작 없이 100만∼200만 안팎의 관객을 모은 데 이어 신작 네 편이 극장가에 지각변동을 불러올지 주목된다.
◆10·26의 육군 대령… 신나는 치어리딩
‘행복의 나라’는 ‘광해, 왕이 된 남자’(2012)의 추창민 감독이 연출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당한 1979년 10·26 사건에 영화적 상상력을 가미했다. 당시 가담자 중 한 명인 박태주 대령(이선균)과 그를 변호하게 된 정인후 변호사(조정석)를 중심으로 시대상을 그린다. 박태주의 모델은 10·26 사건에 가담한 박흥주 대령, 정 변호사는 가상 인물이다.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은 전상두라는 인물로 바꿨다.
이 영화는 올해 극장가에서 보기 드물었던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법정에서의 엎치락뒤치락을 통해 영화적 흥미를 유지하면서 시대에 짓밟히는 개인을 조명하고 원칙과 양심의 가치를 묻는다.
정인후는 “법정은 옳은 놈, 그른 놈 가리는 데가 아니에요. 이기는 놈, 지는 놈 가리는 데라고요”를 입에 달고 사는 세속적 변호사다. 그가 적당히 살며 돈만 벌면 된다고 생각하게 된 데는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학생·노동운동 수배자를 숨겨준 아버지로 인해 힘든 성장기를 보낸 그는 신념보다 실리를 중시한다. 이런 그가 모두 꺼리던 박태주를 변호하면서 독재자와 처절하게 맞서는 인물로 변하는 과정이 영화의 큰 줄기다.
정인후가 박태주로 대변되는 ‘아버지’를 구하는 과정 외에도 이 영화는 다층적 메시지를 담았다. 박태주는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는 군인의 원칙, 국가와 민족을 위한다는 대의와 대통령·동료의 목숨을 뺏는 데 가담했다는 죄책감 사이에 낀 문제적 인물이다.
이들과 대비되는 전상두 합동수사단장의 야욕과 폭력도 볼 수 있다. 추창민 감독은 “10·26에서 12·12로 이어지는 시기를 다룸으로써 그 시대가 얼마나 야만적이었는지 보여주고 싶었다”며 “당시 권력층의 야만성을 대변하는 인물이 전상두”라고 밝혔다. 추 감독은 시민사회를 대변하는 인물로 정 변호사를 내세워 역사적 인물 한 명을 조명하기보다 당시 시대상을 보여주려 했다.
‘빅토리’는 청춘의 에너지로 가득한 작품이다. 밝고 활기차다. 1999년 경남 거제의 한 고등학교에 다니는 필선(이혜리)과 미나(박세완)는 억지로 치어리딩 동아리를 만든다. 학교에서 춤출 장소를 만들기 위한 꼼수다. 딴 맘을 품고 시작했지만 학교의 만년 꼴찌 축구팀을 응원하면서 이들은 서서히 치어리딩의 매력에 빠져든다. 여기에 거제 조선소 하청 노동자들의 애환이 씨줄처럼 엮인다.
영화를 보다 보면 90년대 인기가요가 이렇게 좋았나 싶다. 이들이 서태지와 아이들의 ‘하여가’, 디바 ‘왜 불러’, 듀스 ‘나를 돌아봐’, 김원준 ‘쇼’ 등에 맞춰 춤출 때면 관객의 엉덩이도 들썩일 듯하다. 치어리딩의 매력도 재발견할 수 있다. “우리가 응원하면 사람들 눈에서 빛이 나니까 내 가슴도 막 뛴다”는 대사에 공감하게 된다.
◆토네이도 맞선 인간… 에이리언 신작
할리우드 대작 ‘트위스터스’는 ‘미나리’(2021)를 만든 한국계 정이삭 감독이 연출했다. 미국 오클라호마주 대평원을 배경으로 토네이도를 연구하는 케이트(데이지 에드거 존스)와 위험한 기상상황을 생중계하는 유튜버 타일러(글렌 파월)의 도전을 담았다.
‘트위스터스’는 재난영화로서 영상과 이야기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다. 맑은 하늘에 느닷없이 나타났다 온 세상을 초토화한 뒤 홀연히 사라지는 토네이도의 공포를 영상으로 실감 나게 구현한다. 특히 영화관 대피소에 토네이도가 휘몰아치는 후반부의 긴박감이 대단하다.
토네이도에 친구들을 잃은 케이트가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다시 재난에 맞서는 과정, 케이트와 타일러가 과학으로 자연을 길들이려는 시도도 흥미롭게 그린다. 이 작품은 할리우드 영화 ‘트위스터’(1996)의 속편이지만, 사전 지식 없이 봐도 즐기는 데 무리 없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명작 ‘에이리언’은 일곱 번째 시리즈인 ‘에이리언: 로물루스’로 돌아온다. 연출은 ‘맨 인 더 다크’의 페데 알바레스 감독이 맡았다. 1편인 ‘에이리언’(1979)과 ‘에이리언 2’(1986)의 중간 시기를 배경으로 한다. 2142년 20대 청년들이 더 나은 삶을 위해 식민지를 떠나 거대 기업의 버려진 우주 기지인 로물루스에 도착하지만, 바로 에이리언이 무자비하게 공격해온다.
이 작품은 ‘에이리언’의 열렬한 팬인 알바레스 감독이 리들리 스콧에게 아이디어를 제시하며 시작됐다. 시거니 위버가 연기한 리플리의 계보를 잇는 여전사 ‘레인’은 케일리 스패니가 연기한다. 알바레스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 이전 시리즈에서 해결되지 않았던 여러 답변을 제시하고 연결 지어줄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