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 프루 ‘진흙탕 인생’(‘브로크백 마운튼’에 수록, 전하림 옮김, 에프)
와이오밍은 웅장하고도 척박한 대자연에 속해 있으며 황소 타기, 즉 로데오로 유명한 지역이다. 청년 다이아몬드 펠츠는 짧게 깎은 검은 머리에 왼쪽 뺨에는 별자리 모양의 점이 있고, 깨끗한 셔츠를 입는다면 꽤 괜찮아 보이는 외형인데도 162㎝인 키 때문에 평생 “꼬맹이, 난쟁이, 반 토막, 쪼그만 녀석” 등으로 불렸다. 할 줄 아는 것도 잘하는 일도 없던 그가 고등학교 졸업반이던 어느 날 친구 아버지가 운영하는 목장에서 하루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 친구가 그 일은 송아지들에 낙인을 찍고 거세하고 백신 주사를 놓는 일이며 “질퍽거리는 땅 위에 누워서” 해야 하는, 별로 하고 싶지 않은 일이라고 귀띔도 해주었다.
다이아몬드는 농장의 숙련된 일꾼이 송아지들에 하는 그 일을 유심히 보았지만 그때는 알지 못했다. 자신이 뒤로도 그 일꾼과 비슷한, 남들은 알아주지 않지만 자신이 선택한 일에 평생을 종사하는 사람들을 여러 명 만나게 될 거라는 사실을. 친구 아버지가 제안했다. 농장에 로데오용 황소가 있는데 여기까지 왔으니 재미로 황소를 타보지 않겠느냐고. 친구 아버지도 농장 사람들도 맹수로 보이는 펄쩍펄쩍 뛰는 황소 등에 올랐다가 삼 초도 견디지 못하고 곤두박질치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다이아몬드는 한 번 해보겠다고 지원했다. 짧게 조언해준 그들은 이 꼬맹이가 얼마나 금방 땅으로 내팽개쳐질지, 씩 웃으며 그를 지켜보았다.
그는 황소 위에서 버텼다. 목장 사람들이 시간이 다 되었음을 알릴 때까지. 다이아몬드는 두 발로 착지했다. 자신이 소 전체가 된 것 같은 느낌, 두려움이 다 사라져버린 것 같은 느낌, 인생이 두 배로 넓어진 것 같은 느낌, 얼떨떨하고 자신이 어쩌면 굉장한 것을 해낼지도 모른다는 느낌으로. 그게 시작이었다. “죽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 “멍투성이의 거친 삶”이 동반될 수밖에 없는 로데오의 꿈을. 그래서 그 후 청년 다이아몬드는 어떤 삶을 살게 되었을까.
작가 애니 프루는 천구백구십 년대 후반에 와이오밍으로 이주한 후 그 지역을 중심으로 한 단편들을 쓰기 시작했다. 그 단편 중 ‘브로크백 마운틴’은 이안 감독이 영화로 만들었으며 ‘가죽 벗긴 소’는 존 업다이크가 선정한 ‘금세기 최고의 단편’으로, 이 ‘진흙탕 인생’은 오헨리 단편소설상을 받았다. 이 작품들이 모두 수록된 소설집 ‘브로크백 마운튼’을 종종 다시 읽곤 하는데 단편이어도 한 편 한 편마다 장대한 서사, 시간이 함축돼 있어 장편을 읽고 난 느낌이 들며 지금 같은 계절이 돌아오면 어째서인가 ‘진흙탕 인생’이 다시 읽고 싶어지는 것이다.
사람에게는 정신적인 위기와 물리적인 위기가 올 때가 있는데 때로 그것은 결정적 타격을 가하듯 동시에 몰려오기도 한다. 다이아몬드는 꿈의 시작이 친구네 목장에 간 그날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부모 사이가 좋았던 시절, 다섯 살 때 여행 중에 시골 축제에서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황소를 아버지가 번쩍 들어 올려 태워준 적이 있었다. 그가 거기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아버지가 계속 옆에서 어깨에 손을 얹고 붙들어 주었던 추억. 그런데 아버지가 집을 떠나며 무서운 얼굴로 했던 말이 불쑥 떠올랐다. 자신을 친아버지라고 부르지 말라고. 다이아몬드는 별거 아닌 경기에서 황소에게 내팽개쳐졌고 뿔로 공격을 받아 부상당했다. 점수는 0점.
다이아몬드는 이제 텅 빈 도로에 들어섰다. 조금만 더 가면 열기와 섬광으로 꽉 찬 경기장이 있는 길을 바라보다 지금껏 만난 묵묵히 자신의 일에 오랜 시간 종사해오던 사람들이 떠올랐다. 삶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은 농장 일꾼이 일하며 쓰던 칼날보다는 느렸지만, 더하면 더했지 덜 날카롭지는 않은 것 같다고도. 하지만 그는 생각한다. 이게 다는 아닐 거라고.
때때로 내 인생이 진흙탕 같을 때가 있어도 지금 해볼 수 있는 것을 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내가 믿는 것, 내가 나일 수 있으며 진정한 존재감을 느끼는 그 일을 포기하지 말고. 인생은 정말 어떻게 될지 알 수 없고 누구도 하늘 전체를 다 보았다고는 말할 수 없으니까.
조경란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