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이 정한 규칙에 얽매이지 않을 거야. 마음의 소리를 믿고 나아갈 거야. 중력을 벗어나 하늘 높이 날아오를 거야.”
20일 개봉하는 영화 ‘위키드’에서 엘파바가 유명한 넘버(뮤지컬곡) ‘중력을 벗어나’를 부르는 순간 눈앞의 스크린은 사라지고, 드넓은 세상이 펼쳐진다. 엘파바와 함께 무한히 자유롭게 비상할 것만 같다. 영화 예술의 힘이다.
‘위키드’는 영화가 줄 수 있는 매력을 한데 모은 종합선물세트 같다. 뮤지컬 영화답게 신나고 할리우드 대작답게 화려하고 사랑스러우며, 자연스레 스며드는 메시지에 뭉클해진다. 즐거움과 감동이라는 기본기를 제대로 갖췄다.
‘위키드’는 고전 동화 ‘오즈의 마법사’를 재해석한 영화로, 동명 뮤지컬을 바탕으로 만들었다. 뮤지컬 ‘위키드’는 그레고리 머과이어의 1995년작 소설을 무대로 옮겨 대성공을 거뒀다. 2003년 미국 브로드웨이서 초연했고, 국내에서도 2013년 초연 이래 크게 사랑받고 있다.
영화는 뮤지컬보다 섬세하게 인물들의 감정선을 드러내고 볼거리를 펼쳐놓는다. 이번에 개봉하는 ‘위키드’는 파트1이며, 파트2는 내년에 나온다. 파트1에서는 초록 피부로 태어난 엘파바가 시즈대학교에 입학해 금발의 인기녀 글린다와 우정을 쌓는 과정을 다룬다. 학교장으로부터 마법 능력을 인정받은 엘파바는 에메랄드 시티에 사는 마법사에게 초청된다. 신이 난 엘파바와 글린다는 열차에 오르지만 곧 마법사의 진실을 알게 된다.
‘위키드’는 뮤지컬 영화가 어떠해야 하는지 교본처럼 보여준다. 원작의 매력적인 뮤지컬 넘버를 이야기 흐름에 딱 맞게 녹였다. 지나치게 노래가 많거나 듣기에 지루한 느낌을 주지 않는다. 뮤지컬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이라도 군무 장면은 쉽게 즐길 수 있을 듯하다. 군무는 수십명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노래하며 리듬감을 만들다 보니 강한 인상을 전하는 데 효과적이다. ‘위키드’에서는 밝고 신나는 합창과 군무가 곳곳에 나와 에너지가 배가된다.
이 영화에 사랑스러움을 불어넣는 건 단연 글린다다. 배우 아리아나 그란데가 만들어낸 이 입체적인 인물에 절로 웃음이 머금어진다. 글린다는 아름답고 착하지만 해맑게 이기적이고 밉지 않은 선민의식을 가졌다. 특권층답게 화려한 글린다의 옷과 방, 소품들은 눈을 즐겁게 한다. 올겨울 어린이들이 글린다의 꽃분홍 드레스와 마법 지팡이를 들고 다닐 모습이 눈앞에 그려진다.
‘위키드’는 대학을 배경으로 한 학원물·청춘물로 시작해 한 여성의 성장기로 나아간다. 이를 통해 다름에 대한 존중과 다양성의 가치, 주체적 삶의 자세를 전한다. 엘파바는 어릴 때부터 단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받는다. 엘파바의 동생은 데이트를 꿈꾸기 힘든 장애인이다. 이 외에도 대학에는 인기 없는 남학생, 권리를 위협받는 동물 교수 등 다양한 군상이 있다. 엘파바는 “세상 누구도 놀림감이, 경멸의 대상이 돼선 안 된다”고 깨닫고, 권위나 안락함에 순응하기보다 자기 길을 개척하려 날아오른다.
영화에서 시각적 찬탄을 부르는 건 글린다이지만, 관객 대부분은 배우 신시아 에리보가 연기하는 엘파바에 감정이입을 하게 될 듯하다. 우리 누구나 내면에는 일정 부분 엘파바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영화 중반 엘파바와 글린다가 서로 우정을 확인하는 장면은 눈시울을 적신다.
존 추 감독의 연출력은 곳곳에서 빛난다. 원작을 아는 이들이라면 엘파바가 곧 ‘중력을 벗어나’ 날아오르겠거니 예상돼도, 실제 장면이 펼쳐질 때 여지없이 몰입하게 된다.
대작답게 볼거리도 화려하다. 무지개색 오즈 평원부터 아랍 건축물의 실내 장식을 차용한 시즈대, 작품 속 주요 군무 배경인 도서관, 녹색을 변주한 에메랄스 시티 등이 눈을 사로잡는다. ‘위키드’ 속 오즈의 나라는 영화 ‘다크 나이트’ 시리즈, ‘인터스텔라’ ‘덩케르크’ 등의 프로덕션을 만든 프로덕션 디자이너 나단 크로리가 맡았다.
국내 더빙은 ‘위키드’ 한국 공연으로 주목받은 뮤지컬 배우들이 했다. 원작 배우들이 워낙 입체적 매력의 글린다와 엘파바를 창조해냈기에 더빙 연기로 이를 온전히 전하지는 못하지만, 노래 실력만큼은 보장한다. 엘파바는 박혜나, 글린다는 정선아, 피예로 왕자는 고은성, 마담 모리블은 정영주, 마법사는 남경주가 연기한다.
다만 160분이라는 긴 상영시간은 흠이다. 초반 일부 장면은 덜어내도 크게 무리 없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