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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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독일 원정’ 꿈꿨던 드골

1958년 9월 콘라트 아데나워 독일(당시 서독) 총리가 프랑스 파리 동남쪽 어느 시골 마을로 달려갔다. 곧 출범할 프랑스 제5공화국 초대 대통령이 될 것이 확실한 샤를 드골 장군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드골은 제2차 세계대전 초반 프랑스가 나치 독일에 패망한 뒤 흔히 ‘레지스탕스’로 불리는 저항군을 이끈 지도자였다. 아데나워로선 드골이 강력한 반독일 정책을 펴지 않을까 염려했을 것이다. 독일이 2차대전 패배와 동·서독 분단이란 수렁에서 벗어나려면 이웃 나라 프랑스의 협조가 절실했다.

아데나워의 걱정과 달리 드골은 대범한 태도를 보였다. “독일이 전범의 오명을 벗고 재통일을 이루도록 프랑스가 도와 달라”는 아데나워의 부탁에 드골은 흔쾌히 동의했다. 훗날 회고록에서 드골은 나폴레옹 전쟁부터 2차대전까지 계속된 프랑스와 독일의 오랜 악연을 언급한 뒤 “(양국 간의) 이 높은 장벽의 산을 없애는 유일한 방법은 프랑스가 대대손손의 적이던 독일에 기분 좋게 손을 내미는 것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그의 머릿속에는 이미 프랑스·독일 화해의 원대한 구상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1963년 1월 드골과 아데나워가 파리 엘리제궁에서 회동했다. 두 정상은 양국의 적대 관계를 영원히 끝내고 외교·국방·교육·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힘을 합치자는 내용의 엘리제 조약을 체결했다. 이후 프랑스·독일은 세상에 둘도 없는 단짝 친구가 돼 함께 유럽연합(EU)을 이끌어 왔다. 지난해 1월 엘리제 조약 체결 60주년을 맞아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우리(프랑스·독일)가 하나가 되면 불가능이란 없다”고 선언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도 “양국의 협력에 유럽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화답했다.

드골의 미공개 서신과 유품 등 350여점이 다음 달 16일 파리에서 경매에 출품될 예정이다. 여기엔 그가 10대 청소년 시절 가명으로 썼다는 ‘독일 원정(遠征)’이란 제목의 소설 원고도 포함돼 있다. 장차 프랑스군을 이끄는 장군이 되길 소망했던 젊은 날의 드골이 독일을 얼마나 증오했는지 엿볼 수 있다. 하지만 정치 지도자가 된 뒤로는 생각을 완전히 바꿔 프랑스·독일 밀착의 초석을 놓았으니 그 발상의 전환이 그저 놀랍기만 하다.


김태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