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의 미국 투자사 2곳이 한국 정부가 한국에서 개인정보 유출 사건을 일으킨 쿠팡에 대해 차별적인 대우를 하고 있다며 미국 정부에 조사와 조치를 요청하는 청원을 제기했다. 이들 투자사는 한국 정부를 상대로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 절차에 착수하겠다는 의향서도 제출했다. 미국 정부가 이들의 청원을 받아들이면 쿠팡 사태가 본격적으로 한·미간 통상 분쟁으로 번지게 될 전망이다.
◆쿠팡 투자자, “韓, 쿠팡 표적 삼았다”
투자사 그린옥스와 알티미터는 22일(현지시간) 보도자료를 내고 미 무역대표부(USTR)에 무역법 301조에 근거해 한국의 “부당하고 차별적인 행동”을 조사하고 적절한 무역구제 조치를 해달라고 청원했다. 이와 함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중재 청구를 제기한다는 중재의향서를 한국 정부에 보냈다고 설명했다. 앞서 지난해 쿠팡에서는 약 3370만건의 개인정보가 무단으로 노출돼 현재 조사 중이다.
이들은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 사고 이후 한국 당국이 쿠팡을 겨냥한 캠페인을 벌이고 있으며, 이 때문에 투자자들이 수십억달러의 손실을 봤다고 주장했다. 또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 사태에 대한 한국당국의 대응이 일반적인 규제 집행 수준을 넘어섰다고 주장했다. 한국 정부가 쿠팡 사업을 마비시키기 위해 개인정보 유출과 관련성이 적은 노동, 금융, 관세 분야까지 정부 차원으로 전방위적인 대응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쿠팡은 한국 법인의 지분 100%를 미국에 상장된 모회사 쿠팡 아이엔씨가 소유하고 있다.
투자사들은 한국에 보낸 중재의향서에서 “한국 정부가 (쿠팡의) 한국 및 중국의 대기업 경쟁사들을 보호하기 위해 쿠팡을 표적으로 삼았다”고 주장했다. 투자사들을 대리하는 법무법인(커빙턴)이 공개한 이 통지서는 이재명 대통령과 정홍식 법무부 국제법무국장을 수신인으로 기재했다. 이들은 “쿠팡은 중국 정부, 더불어민주당, 이 대통령과 긴밀한 관계(close ties)를 유지하는 한국 내 중국 대기업의 시장 점유율을 잠식하기 시작했다”며 “쿠팡이 한국 및 중국 경쟁사들의 오래된 시장 지배력을 위협하고 있다는 사실이 분명해지자, 정부는 행정 권력을 무기화하기 시작했다”고도 주장했으나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하지는 않았다. 이들은 한국 정부가 쿠팡의 정보 유출 사건을 “구실(pretext)”로 삼아 쿠팡을 상대로 “허위·명예훼손적 캠페인”을 전개했다고도 주장했다.
◆美 정부 45일 내 조사 개시 결정할 듯
지금까지도 미국 정치권에선 한국 당국의 책임 추궁 조치가 “미국 기업에 대한 차별”이라는 주장이 제기된 바 있으나 쿠팡 투자자들의 이번 행동은 미국 정부의 직접적인 개입을 촉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지금까지보다 한 차원 더 진전된 문제 제기로 받아들여진다. 쿠팡 투자자들이 USTR에 조사를 청원한 무역법 301조는 외국 정부가 미국과의 무역 협정을 위반하거나 부당하거나 불합리하고 차별적인 행동·정책·관행으로 미국의 무역을 제한하거나 부담을 줄 경우 이에 대응할 권한을 행정부에 부여한다. 이해관계자 누구나 조사를 청원할 수 있으며, USTR은 청원 접수 45일 내로 조사개시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이에 따라 트럼프 행정부는 앞으로 45일 안에 쿠팡 사태에 대한 입장을 어떤 방향으로든 정리할 것으로 보인다. 조사 개시 자체가 가져올 파장을 고려하면 한국 정부로서는 45일 안에 미국 정부를 설득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USTR이 조사 개시를 결정하면 한국 정부와 협의에 나서게 된다. 협의를 통해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고, 조사에서 미국의 권리가 침해당했다고 판단할 경우 USTR은 관세나 수입을 제한하는 기타 조치 등으로 한국에 보복할 수 있다. 쿠팡 투자자들은 USTR에 한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 부과, 미국 내에서 한국의 서비스 제공 제한, 재발 방지 대책 마련 등을 청원했다.
USTR이 301조 조사를 개시할 경우 쿠팡만 다루지 않고 한국의 디지털 분야 규제전반을 문제 삼으면 사안이 더 커질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 국회에서 논의된 온라인 플랫폼법과 최근 제정된 허위조작정보근절법(정보통신망법 개정안) 등에 대해서도 미국 기업을 차별한다는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