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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미·러 ‘뉴스타트’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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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쿠바 아바나에서 열린 한 학술대회에서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때 핵탄두가 장착된 9기의 미사일이 쿠바에 있었다는 전직 소련 장성의 증언이 나왔다. 당시 미국은 쿠바에 있는 소련 미사일 기지를 무력화하기 위해 ‘공습’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렇지만 미국은 소련이 핵 미사일을 배치했을 것이라곤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당시 미국 국방부 장관이었던 로버트 맥나마라조차 30년이 지나서야 핵전쟁이 운 좋게 비껴갔음을 알았을 정도다.

쿠바 미사일 위기의 해결 과정은 존 F 케네디 당시 미국 대통령과 그 참모들의 올바른 상황 판단 덕분이었다고들 한다. 이와 관련해 우크라이나 출신 하버드대 역사학 교수인 세르히 프로히는 2021년 출간한 ‘핵전쟁 위기’에서 KGB(소련 정보기관) 문서 등을 통해 “쿠바 위기가 봉합된 결정적 요인은 양국이 자칫 핵전쟁으로 비화할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이성’이 아니라 ‘공포’가 핵전쟁을 막았다는 얘기다.

오늘 강대국 지도자들은 케네디와 니키타 흐루쇼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쿠바 위기 때 느꼈던 핵전쟁의 위기감을 공유하지 않는다. ‘핵은 핵으로 막을 수 있다’는 논리에 매몰돼 저마다 핵통제의 빗장을 열어젖혔다. 미국이 2018년 돌연 ‘중거리핵전력조약(INF)’ 탈퇴를 선언한 것이나,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와중에 러시아가 전략핵무기 사용 가능성까지 언급한 것이 대표적 예다.

2010년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이 프라하에서 서명한 ‘신전략무기감축협정’(뉴스타트)이 5일 종료된다. 이 조약은 양국이 실전 배치한 핵탄두 수를 각각 1550개로 제한하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전략폭격기 같은 핵 운반수단도 700기로 낮추도록 한 것이다. 인류를 핵공포로부터 지켜주던 마지막 안전핀이었다. 뉴스타트가 종료되면 미국과 러시아가 맺어온 60년간의 핵 군축 노력은 사실상 종식된다. 글로벌 핵경쟁이 더 가열될 전망이다. 올해 ‘지구종말시계(The Doomsday Clock)’가 자정 85초 전으로 앞당겨지면서 역사상 가장 멸망에 근접한 시간이 됐다. 내년에는 더 자정에 가까워질 것 같아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