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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심 7개·장애 4급…‘슈주’ 김희철, 웃음 뒤 삼킨 ‘시한부’ 가수 수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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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가 가루가 된 2006년 그날의 새벽과 20년째 품고 산 금속판, 댄스 가수라는 직업적 사망 선고 대신 예능에서 증명한 자기 유지의 방식

2006년 8월 10일 새벽 서해안고속도로에서 발생한 차량 전복 사고는 그룹 슈퍼주니어 멤버 김희철의 신체 구조를 영구적으로 바꿔놓았다. 당시 동료 멤버 부친의 조문 후 서울로 향하던 소속사 차량은 타이어 결함으로 가드레일을 들이받았다. 이 사고로 그는 왼쪽 대퇴부와 발목이 분쇄 골절되는 중상을 입었으며 응급 처치 과정에서 다리에는 7개의 금속 철심이 박혔다. 당시 의료진이 내린 소견은 지체장애 4급 판정이었다. 격렬한 안무를 소화해야 하는 20대 초반 댄스 가수에게 내려진 행정상의 장애인 등록은 직업적 사형 선고나 다름없었다.

2006년 대형 사고 직후 수술을 통해 대퇴부에 박아 넣은 7개의 금속 철심은 그의 화려한 수명에 사실상의 시한부 선고를 내린 순간이었다. SBS ‘인체의 신비’ 방송 화면·세계일보 자료사진
2006년 대형 사고 직후 수술을 통해 대퇴부에 박아 넣은 7개의 금속 철심은 그의 화려한 수명에 사실상의 시한부 선고를 내린 순간이었다. SBS ‘인체의 신비’ 방송 화면·세계일보 자료사진

 

당시 집도를 맡은 의료진은 그의 대퇴부 골절 상태를 두고 “뼈가 가루가 된 수준”이라고 표현했다. 부러진 뼈 파편이 주변 근육과 신경을 건드려 과다출혈의 위험이 컸던 상황이었다. 실제 훼손된 부위를 고정하기 위해 대퇴부부터 골반까지 가로지르는 대형 금속판을 삽입해야 했으며 의료적 조치 후에도 다리 길이가 달라질 수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훗날 그는 방송을 통해 “근육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아 재활 과정조차 고통의 연속이었다”고 밝혔다. 봉합 자국과 금속판의 이물감은 그가 무대 위에서도 매일 마주해야 하는 물리적 현실이었다.

 

응급실을 나선 후 재활 과정을 거쳤지만 다리 기능은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대퇴부에 박힌 금속판은 근육이 수축할 때마다 살을 짓눌렀고 기온이 떨어지거나 기압이 낮아지면 상처 부위에는 날카로운 통증이 이어졌다. 안무를 소화한 뒤에는 염증 수치가 급격히 상승했다. 의료진으로부터 무리한 활동은 남은 관절마저 손상시킬 수 있다는 경고를 받았다. 결국 그는 소속사와 멤버들에게 “더 이상 팀의 퍼포먼스에 참여하기 어렵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댄스 가수로서의 수명은 2006년 그 새벽에 멈춰 섰다.

 

실제로 그는 슈퍼주니어의 정규 앨범 활동에서 퍼포먼스 비중을 점진적으로 줄였다. 무대 마지막에 잠깐 등장하거나 대열에서 제외되는 상황이 잦아졌다. 이를 두고 일부 대중은 성의 없는 태도를 지적했으나 그는 자신의 장애 등급이나 구체적인 통증 수치를 대외적으로 알리지 않았다. 대신 무대 뒤에서 독자적인 활동 중단을 고민했다. 가수라는 정체성이 무너진 자리에는 보행의 불안정을 안고 살아야 하는 한 청년의 현실만이 남았다.

사고 이후 무대 활동에 제약이 생기자 김희철은 방송을 통해 팀원들과 팬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하며 고립된 심경을 털어놓기도 했다. tvN ‘인생술집’ 화면 캡처
사고 이후 무대 활동에 제약이 생기자 김희철은 방송을 통해 팀원들과 팬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하며 고립된 심경을 털어놓기도 했다. tvN ‘인생술집’ 화면 캡처

 

가수로서의 활동이 불투명해진 시점에 그는 예능이라는 새로운 무대로 이동했다. 몸을 쓰는 퍼포먼스 대신 언어 구사력에 집중했다. 독설과 순발력을 앞세운 캐릭터를 구축하며 예능판에서 자신의 입지를 확보했다. 하지만 예능 촬영 역시 장시간의 기립을 요구하는 육체 노동이었다. 수 시간 동안 이어지는 녹화에서 그는 부어오르는 다리를 감추고 웃음을 만들었다. 대중에게 노출되는 모습은 세련된 스타였으나 그 뒤에 남겨진 것은 얼음찜질과 소염제 복용의 반복이었다.

신체적 결함을 수용한 채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한 20년. 웃음 뒤에는 늘 소염제 복용과 통증의 누적이 있었다. SBS ‘미운 우리 새끼’ 화면 캡처
신체적 결함을 수용한 채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한 20년. 웃음 뒤에는 늘 소염제 복용과 통증의 누적이 있었다. SBS ‘미운 우리 새끼’ 화면 캡처

 

그는 방송에서 종종 자신의 사고를 가벼운 소재로 언급했다. “다리가 아파서 사회복무요원으로 판정받았다”는 식의 화법은 자신의 신체적 한계를 타인의 동정이 아닌 웃음으로 치환하려는 전략이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주변에 짐이 되기 싫다”는 책임감이 자리 잡고 있었다. 팀의 활동을 저해하지 않기 위해 무대 변두리를 자처하면서도 예능 무대에서는 공격적인 역할을 유지했다. 그것이 그가 찾은 지속의 방식이었다.

일상 속에서도 불편한 통증을 안고 살아야 하는 현실. 하지만 그는 좌절 대신 예능이라는 새로운 무대에서 자신만의 생존 방식을 묵묵히 증명해 냈다. 김희철 SNS
일상 속에서도 불편한 통증을 안고 살아야 하는 현실. 하지만 그는 좌절 대신 예능이라는 새로운 무대에서 자신만의 생존 방식을 묵묵히 증명해 냈다. 김희철 SNS

 

사고로부터 20년이 흐른 현재 그의 다리에는 여전히 흉터 자국과 약해진 근육이 남아있다. 안무를 소화하면 다리에 무리가 가고 평생 지속될 후유증은 일상의 기본값이 됐다. 하지만 그는 ‘장애’라는 틀에 갇히는 대신 그 제약을 자신의 서사로 수용했다. 1등 댄서가 될 수 없다면 가장 오래 버티는 예능인이 되겠다는 선택은 현실적인 판단의 결과였다.

 

김희철의 20년은 인위적인 극복이 아니다. 신체 일부분의 기능을 상실한 상태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영역을 찾아 묵묵히 버텨온 시간의 누적이다. 대퇴부에 박힌 철심은 통증의 원인인 동시에 자신을 지탱해온 지지대였다. 카메라 밖에서 은퇴를 고민하던 청년은 이제 자신의 결핍을 숨기지 않으면서도 그 조건 위에서 새로운 역할을 수행하는 인물로 살아가고 있다. 100%의 신체가 아님을 인정하고 얻은 세월, 그것이 김희철이 증명한 자기 유지의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