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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란드 지키려다… 조기 총선 후 혼돈 빠진 덴마크 정국

‘그린란드 지킴이’ 자처한 총리의 승부수 실패
기존 집권 세력인 좌파 연합 의석수 되레 줄어
선거 후 6주일 지나도록 연정 구성 협상 ‘난항’

의원내각제 국가인 덴마크가 총선 후 6주일이 지나도록 정부를 구성하지 못하는 혼돈 속으로 빠져들었다. 덴마크령 그린란드 섬의 영유권을 노리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개입의 빌미를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8일(현지시간) 메테 프레데릭센 덴마크 과도 총리가 프레데리크 10세 국왕과의 면담을 마치고 왕궁에서 나온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8일(현지시간) 메테 프레데릭센 덴마크 과도 총리가 프레데리크 10세 국왕과의 면담을 마치고 왕궁에서 나온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8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사민당을 이끄는 메테 프레데릭센 과도 총리가 주도해 온 연립정부 구성 협상이 이날 최종 결렬됐다. 지난 3월24일 총선 이후 6주일 만이다. 앞서 총리였던 프레데릭센은 새 정부가 출범할 때까지 임시로 덴마크 국정을 이끄는 과도 총리를 맡고 있다.

 

단원제인 덴마크 의회는 총 179석이다. 이번 총선에서 프레데릭센의 사민당은 38석을 얻어 원내 1당 자리를 지켰으나 과반(90석 이상)에는 한참 모자란 만큼 다른 정당들과 협상해 연정을 꾸려야 하는 처지다. 그런데 좌파를 제외한 중도 및 우파 정당들이 프레데릭센의 협상 주도권 행사에 반기를 들고 나선 것이다.

 

사실상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는 중도 성향의 온건당이 프레데릭센에 비우호적 태도를 보이며 “다른 정당 대표에게 연정 구성 협상의 주도권을 이양하라”고 압력을 가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혼돈은 프레데릭센이 자초한 측면이 크다. 2019년 총선에서 사민당 등 좌파 연합이 승리하며 집권한 프레데릭센은 이미 총리로서 2차례 임기를 수행했다. 그의 3연임 성패가 달린 총선은 원래 오는 11월에 실시될 예정이었으나 프레데릭센은 총선을 3월로 앞당겼다. 그런데 조기 총선의 결과 정당들의 난립으로 정부 구성이 어려워지며 되레 정국이 꼬이고 말았다.

 

프레데릭센이 조기 총선이란 승부수를 띄운 것은 그린란드에 대한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욕심이 직접적 원인이 됐다. 덴마크는 물론 유럽 국가들까지 트럼프 비판에 한목소리를 내는 과정에서 프레데릭센의 존재감이 부쩍 커졌다. 그는 트럼프와의 전화 통화에서 “그린란드는 매물이 아니다”라고 단호하게 외쳤다.

2025년 6월 네덜란드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에서 조우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메테 프레데릭센 덴마크 총리. 서로 눈을 피하며 어색한 표정을 짓는 등 불편한 기색이 역력하다. AP연합뉴스
2025년 6월 네덜란드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에서 조우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메테 프레데릭센 덴마크 총리. 서로 눈을 피하며 어색한 표정을 짓는 등 불편한 기색이 역력하다. AP연합뉴스

2025년부터 여러 차례 그린란드를 방문한 프레데릭센은 현지 자치정부 고위 관계자와 주민들의 마음을 얻는 데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그 결과 옌스-프레데리크 닐센 자치정부 총리로부터 “우리는 덴마크를 지지한다”라는 확고한 다짐을 얻어냈다. 프레데릭센으로선 총선을 앞당기면 ‘그린란드를 지키기 위해 현 총리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되며 사민당이 압승할 것이란 판단을 내렸을 법하다.

 

하나 이 같은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조기 총선의 결과 사민당 의석은 기존 50석에서 38석으로 크게 줄었고 덩달아 좌파 연합의 세력도 약화하며 중도 및 우파 정당들의 입김이 강해졌다. 연정 구성도 그만큼 어려워졌다.

 

물론 프레데릭센의 3연임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 있다는 것이 현지 언론의 분석이다. 연정 구성을 위한 협상 주도권을 누구에게 부여할 것인지는 국가원수인 국왕이 결정한다. 현 덴마크 국왕 프레데리크 10세가 ‘그린란드를 수호하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여긴다면 2025년부터 미국과 트럼프의 압박에 맞서고 그린란드의 민심을 얻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해 온 프레데릭센에게 연정 구성 협상의 주도권을 계속 맡길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