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일 대 북·중·러’라는 식으로 신냉전 구도로 단순화하는 것은 신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구도는 북한이 가장 원하는 방향일 수 있습니다.”
김경한 인천광역시 국제관계대사는 지난 22일 서울 용산구 세계일보 사옥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최근의 동북아 정세를 진단하며 신냉전 구도를 언급하는 것에 대해 경계했다. 북한이 우크라이나 전쟁 파병을 계기로 러시아와 급격히 가까워지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북 가능성이 제기되며 세 나라의 밀착은 한결 끈끈해지는 상황이다. 여기에 대응한 한국, 미국, 일본의 협력 필요성이 재차 강조되면서 이런 구도가 ‘신냉전’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강하다. 김 대사는 신냉전 구도에서 북한은 외부 의존을 최대치로 끌어올릴 수 있어 다루기가 훨씬 까다로워진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돈로주의’(아메리카 대륙을 중심으로 한 미국 우선주의)를 표방하고 지역 안보에 동맹국의 책임을 강조하면서 생긴 ‘힘의 공백 가능성’ 속에서 “한·일 협력이 강화되고 있다”며 “동시에 한국은 중국과의 전략적 협력 공간 역시 관리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대사는 외교부 내에서도 미국·일본·중국 사정에 모두 밝은 외교관으로 꼽힌다. 미국, 일본, 중국에서 참사관, 정무공사, 총영사 등을 지낸 경력 덕분이다. 일본의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수출규제와 중국의 한한령을 현장에서 경험하며 경제안보 중요성을 체감했다. 북한 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여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공부를 해 한반도 문제에도 밝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음은 김 대사와의 일문일답.
―최근 한·일 관계가 안정적이다.
“지난 19일 안동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의 가장 큰 의미는 셔틀외교가 정착 단계에 들어섰다는 점이다. 7개월 동안 네 차례 정상회담이 이어지면서 양국 관계가 안정적으로 관리·발전되고 있다. 이재명정부의 국익 우선 실용외교가 일정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국제정세의 대전환기 속에서 한·일 간 전략적 협력이 불가결하다는 양국 정상의 공통 인식 역시 신뢰 심화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안동 회담에서 주목한 것은.
“급변하는 중동 정세에 대응해 에너지 안보와 핵심광물 공급망 협력을 확대하기로 했다. 양국 모두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높은 상황에서 ‘어려울 때 서로 협력하는 호혜적 관계’를 실제로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양국 국민 입장에서도 전략적 파트너십의 효용성을 체감할 수 있는 사례다. 셔틀외교를 통해 쌓아온 신뢰를 구체적인 성과로 연결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갈 수 있냐가 앞으로 중요하다.”
―안정적 관계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과거사 문제뿐 아니라 대중국 인식을 비롯한 국제정세를 바라보는 양국의 인식 차이가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전략적 소통이 더욱 중요하다. 서로의 처지와 이해관계를 충분히 공유하면서 공통 인식을 넓혀가야 한다. 지금처럼 국제질서가 재편되는 시기에는 기존 질서에 안주하거나 민감한 현안을 단순히 회피하는 방식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한·일 양국은 물론 지역 전체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새로운 질서를 함께 설계해나갈 필요가 있다. 일본이 주도하는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 한국 가입을 논의하는 것은 이런 측면에서 의미 있는 출발점일 수 있다.”
―한·일 협력 강화에 미국 변수가 있나.
“큰 배경 중 하나가 트럼프 대통령의 재등장이다. 미국은 지난해 이른바 ‘해방의 날’을 계기로 스스로 80년 자유무역 질서의 종언을 선언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국가안보전략 보고서를 통해 서반구 우선 전략인 ‘돈로주의’를 내세우고 있다. 동맹국들에 더 많은 역할과 부담을 요구하면서, 미국 역시 점차 거래적 관점의 역외 균형자 역할로 이동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실제 변화가 나타나고 있나.
“그렇다. 최근 중동 정세 불안으로 한국과 일본에 배치됐던 미국 전략자산이나 주일미군의 경우 부대 일부가 이동했다. 한·일 양국 모두 미국의 ‘힘의 공백’ 가능성을 일정 부분 체감하게 된 것이다. 최근 미·중 정상회담 이후 사실상 주요 2개국(G2) 구도가 다시 부각되는 흐름 역시 강대국 정치의 귀환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보인다. 다만 최근 미·중 관계는 전면 충돌보다는 ‘관리된 상호의존과 안정적 경쟁’ 국면으로 이동하는 흐름도 함께 나타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일은 자강과 중견국 연대 그리고 동맹인 미국과의 연계 강화를 통해 억지력을 높여야 한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는 극우로 평가되기도 했다.
“과거 사례를 돌아보면 한국의 진보 정부와 일본 보수 정권 조합에서 양국 관계가 안정적으로 관리된 경우가 적지 않았다. 셔틀외교가 시작된 게 2004년 노무현정부 시절이고, 당시 일본 총리는 보수 성향이 강했다. 일본은 보수 정치인이 과거사 문제에 대해 (전향적인 입장을 내는 것을) 국내적으로 설득하는 데 상대적으로 유리한 측면이 있고, 한국은 진보 진영이 대일 협력의 필요성을 국내 여론에 설명하는 데 강점을 갖는 측면이 있다.”
―북·중 관계가 긴밀해지고 있다.
“중국은 북한 문제를 다룰 때 항상 미국을 의식해왔다. 2018∼2019년 북·미 정상회담 국면만 보더라도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시 주석은 다섯 차례 정상회담을 가졌다. 남북, 북·미 대화가 진행되는 전후 과정마다 북·중 간 전략 조율도 긴밀하게 이뤄졌다. 대화 재개를 위한 역할이 주목되는 대목이다. 중국은 북한이 미국과 대화하는 것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는다. 북한이 미국과의 대화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 가운데에는 중국이 대신 제공해줄 수 없는 부분도 있기 때문이다. (국내외 언론에서 보도한) 시 주석의 방북이 실제로 성사되면 지정학적 의미와 정치적 상징성이 상당히 큰 이벤트가 될 것이다. (2024년 6월 방북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이어 시 주석까지 평양을 방문하게 되면 김 위원장의 외교적 위상 역시 상당 부분 제고될 수 있다. 중국이 북한과 한반도 문제에 대한 영향력을 과시하려는 움직임을 보일 가능성이 있다.”
―중국 역시 나름의 계산이 있을 것 같은데.
“중국은 북·미 대화가 자국의 전략적 이해와 충돌하지 않는 방향으로 진행되기를 원한다. 북한 문제에서 중국은 스스로 일정한 ‘오너십’을 갖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려 하지만, 동시에 미국과의 관계 측면 역시 강하게 의식하고 있다. 미국과 러시아 정상의 잇따른 방문에 이어 국제정세를 떠받치는 신뢰할 만한 대국 이미지를 국제사회에 과시하려 할 것이다.”
―한·미·일 VS 북·중·러 구도의 고착화인가.
“북·중·러 연계가 강화되고 있는 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구도로 바라보는 데 신중해야 한다. 북한이 가장 원하는 구도일 수 있다. 북한은 구조적 취약성이 높은 체제다. 그런데 한·미·일, 북·중·러 대결 구도가 강화되면 북한은 자신의 취약성은 감추면서도 외부 의존은 극대화할 수 있게 된다. 러시아와 중국을 동시에 활용해 경제·안보 측면의 부담을 줄이면서, 대미 협상력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
―중국도 그런 구도를 원하지 않나.
“아니다. 중국은 진영화에 일정한 거리감을 유지하려 한다. 어디까지나 ‘대국외교’ 차원에서 북한 문제를 관리하려는 성격이 강하다. 미·중 관계에 미칠 영향을 감안해 진영화에는 비교적 신중한 태도를 보여왔다. 지난해 베이징에서 열린 전승절 행사에 김 위원장, 푸틴 대통령이 참석했지만 셋이 같이 모이는 회담은 열지 않았다.”
―북·미 대화 재개 가능성은.
“최근 미·중 정상회담에서 다시 ‘북한 비핵화’가 공동 목표로 언급된 점은 긍정적이다. 무엇보다 한반도 문제가 다시 미·중 간 의제로 논의되기 시작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다. 2019년 베트남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교착 상태가 이어져 왔지만, 최근 들어서는 일정한 변화 기류가 읽힌다. 시 주석의 방북 가능성이나 북·중 관계 복원 흐름 역시 그런 징후 가운데 하나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재개를 위한 조건은.
“남북 관계는 북·미 관계 진전 없이 독자적으로 개선하는 데 분명한 한계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정부도 북·미 대화를 촉진하고 남북 대화를 재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한·미 정상회담에서 이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피스메이커’ 역할을 요청하고, ‘페이스메이커’를 자임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한국의 핵추진잠수함 도입 추진이 주변국의 반발로 이어질까.
“우리가 추진하는 핵잠은 핵확산금지조약(NPT) 의무를 준수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와도 충분히 협력하는 방향이다. IAEA가 호주와 (호주에 핵잠 관련 기술을 제공한) 오커스(AUKUS: 미·호주·영국 군사협력체)에 대해 NPT 체제에 부합한다고 보는 사례처럼 국제사회가 수용 가능한 틀 안에서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 또 한국은 원전 26기를 운영하는 원자력 강국인데, 저농축 우라늄을 전적으로 수입에만 의존하는 것은 에너지 안보 측면에서도 고민이 필요한 부분이다.”
김경한 인천광역시 국제관계대사는…
●1967년 부산 출생 ●제24회 외무고시 합격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학사 ●북한대학원대학교 석사 ●주일본대한민국대사관 공사 ●주칭다오대한민국총영사관 총영사 ●인천광역시 국제관계대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