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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호의미술여행] 오늘도 무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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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영국은 봉건적 왕권 국가에서 근대 의회 민주주의로의 전환기였다. 전환기의 혼란이 이어지면서 사회가 안정을 찾지 못했고, 런던 시내는 더럽고 도둑과 부랑아들이 넘쳐났다. 사회는 민주주의를 향해 한발 더 나아갔지만, 문화와 미술에서는 프랑스나 이탈리아와 비교해서 변방으로 치부됐다. 이런 문화적 열등감을 극복해 준 최초의 영국 화가로 조슈아 레이놀즈가 주목을 받았다.

레이놀즈는 영국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18세기 영국 상류계급을 만족시킨 화가였다. 이탈리아로 유학 가서 라파엘과 티치아노의 작품에 영향을 받았고, 귀국 후 영국 미술계에서 초상화로 두각을 나타냈다. 그는 고상하고 품위 있는 주제를 숭고하게 나타내는 미술만이 위대한 작품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화가는 저급한 손재주 이상의 학식과 상상력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슈아 레이놀즈 ‘어린 사무엘’ (1776)
조슈아 레이놀즈 ‘어린 사무엘’ (1776)

그의 그림들은 ‘장엄한 양식’으로 불렸다. 그가 교훈적인 성경이나 그리스, 로마의 신화를 배경지식으로 활용해서 그림의 권위를 살리고, 인물 초상을 실제보다 더 고상하고 위엄 있게 이상화시켰기 때문이다. 그의 초상화가 당시 귀족들의 취향을 만족시킨 것도 바로 이런 특색 때문이었다.

이 그림은 레이놀즈가 그린 대표적인 어린이 초상화이다. 어린 사무엘이 기도하는 모습인데, 흔히 알려진 것처럼 소녀상이 아니라 소년상이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이스라엘 왕국의 지도자로 존경받는 인물인 사무엘의 어린 모습이다. 어린 사무엘이 하루를 무사히 보낸 것에 감사하며 기도를 드리고 있다. 무릎 자세를 가지런히 하고 두 손을 곱게 모은 채 하늘에서 내려오는 은총의 빛을 맞이한다. 진한 갈색 주조색과 은은한 명암 대비가 조화를 이루며 차분하고 경건한 분위기가 화면 가득 흐르고 있다. 초롱초롱 빛나는 사무엘의 맑고 순수한 눈망울이 우리를 빨아들인다. 그 순간, 지치고 힘든 하루를 의연하게 버틸 수 있는 힘이 솟아난다.

금요일 아침이다. 이 그림을 떠올리며 오늘 하루를 무사히 보내고 나면 즐거운 주말이 온다.

 

박일호 이화여대 명예교수·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