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샴페인 부럽지 않다…부르고뉴 떼루아 담은 스파클링 와인 ‘크레망 드 부르고뉴’ [최현태 기자의 와인홀릭]

<2026 그랑주르 드 부르고뉴를 가다 ⑦크레망>

 

13세기 오세르 지역 ‘버블 있는 와인’ 기록

 

1975년 프랑스 크레망중 첫 AOC 받아 

 

피노 누아·샤르도네 중심 8개 허용 품종

 

2026 그랑주르 드 부르고뉴  앙드레 들로름(André Delorme) 크레망. 최현태 기자
2026 그랑주르 드 부르고뉴  앙드레 들로름(André Delorme) 크레망. 최현태 기자

입술을 간지럽히는 섬세한 버블 사이로 피어나는 신선한 사과와 흰 꽃 향. 부드러운 브리오슈 뉘앙스. 날카롭지 않고 둥글게 입안을 감도는 산도. 그리고 길게 이어지는 복합미까지. 눈을 감고 마시면 영락없는 고가 샴페인 같네요. 그런데 이 와인, 생각보다 훨씬 합리적인 가격에 살 수 있습니다. 샴페인이 아니라 크레망 드 부르고뉴(Crémant de Bourgogne)랍니다. 샴페인의 주 품종은 피노 누아, 샤르도네, 피노 뮈니에. 그런데 피노 누아, 샤르도네를 전 세계에서 가장 잘 만드는 곳이 바로 부르고뉴이니 크레망 드 부르고뉴가 샴페인 뺨칠 정도로 맛있는 이유랍니다.

 

2026 그랑주르 드 부르고뉴 크레망 드 부르고뉴 행사장. 최현태 기자
2026 그랑주르 드 부르고뉴 크레망 드 부르고뉴 행사장. 최현태 기자

◆50살 넘긴 ‘크레망 맏형’ 부르고뉴

 

2년 마다 개최되는 프랑스 부르고뉴 최대 와인 이벤트, 2026 그랑주르 드 부르고뉴(Grands Jours de Bourgogne) 행사가 열리고 있는 본의 전시장 팔레 드 콩그레. 21개 크레망 드 부르고뉴 생산자가 모인 별도의 공간으로 들어서자 50주년을 축하하는 안내문이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상파뉴를 제외한 프랑스의 스파클링 와인은 크레망이라고 부릅니다. 샴페인과 똑같이 병에서 2차 발효와 숙성을 거치는 전통방식으로 만듭니다. 원산지통제명칭(Appellation d’Origine Contrôlée·AOC)을 받은 크레망 산지는 모두 8개입니다.  부르고뉴가 1975년 가장 먼저 AOC를 받았습니다. 이어 크레망 드 루아르(Crémant de Loire·1975년), 크레망 달자스(Crémant d'Alsace·1976년), 크레망 드 리무(Crémant de Limoux·1990년), 크레망 드 보르도(Crémant de Bordeaux·1990년), 크레망 드 디(Crémant de Die·1993년), 크레망 뒤 쥐라(Crémant du Jura·1995년), 크레망 드 사부아(Crémant de Savoie·2015년) 순입니다. 가장 처음 AOC를 받은 크레망 산지답게 크레망 드 부르고뉴는 샴페인 못지않은 뛰어난 품질을 자랑합니다. 최근 부르고뉴 와인협회(BIVB) 주최로 서울에서 열린 마스터클래스에서도 이 숨겨진 하이엔드 스파클링의 매력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프랑스 크레망 AOC. 와인폴리
프랑스 크레망 AOC. 와인폴리

◆13세기에서 시작된 유구한 역사

 

크레망 드 부르고뉴의 역사는 생각보다 훨씬 깁니다. 13세기 중반, 부르고 최북단 산지 샤블리의 인근 오세르(Auxerre) 지역 와인을 묘사하는 기록에 ‘뱅 프레미양(vins frémillants)’이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버블이 약간 있는 와인’이라는 뜻입니다. 부르고뉴에서 스파클링 와인의 역사가 이미 800년 전에 시작됐다는 증거입니다.

 

18세기 초 병입이 대중화되면서 의도하지 않은 자연 발생적 버블이 흔해졌습니다. 18세기 영국에서는 이미 부르고뉴 와인이 의도치 않게 스파클링 와인 상태가 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이어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가 되자 프랑스와 유럽 전역에서 스파클링 와인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고 부르고뉴도 스파클링용 베이스 와인을 생산합니다. 1818년에는 꼬뜨 드 뉘(Côte de Nuits)의 샹베르탱(Chambertin), 끌로 드 부조(Clos de Vougeot) 최상급 뀌베가 스파클링 레드 와인으로도 생산됐다는 기록도 남아 있습니다.

 

끌로 드 부조 스파클링 와인(두번째).
끌로 드 부조 스파클링 와인(두번째).

터닝포인트는 1830년 찾아옵니다. 상파뉴 출신의 청년 프랑수아 바질 위베르(François Bazille Hubert)가 코뜨 샬로네즈의 륄리(Rully)에 와이너리를 세우고 상파뉴 양조 방식을 부르고뉴에 접목합니다. 1820년부터 1930년 사이에는 40개의 부르고뉴 포도밭(끌리마)이 스파클링 와인 생산지로 지정됩니다. 1940년에는 샤블리(Chablis)의 시모네-페브르(Simmonet-Fèvre)와 모로(Moreau)가 샤블리 스파클링 와인을 생산해 국내외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둡니다. 1943년 3월 16일에는 화이트, 레드, 로제 와인 모두 생산 가능한 부르고뉴 무쏘(Bourgogne Mousseux) AOC가 제정됩니다. 1960~1970년대 들어 생산자들이 품질 향상을 위해 프랑스 국립 원산지 명칭 관리국(INAO)과 본격적으로 협업하기 시작했고, 1975년 10월 17일 마침내 화이트와 로제에 한해 크레망 드 부르고뉴 AOC가 제정되면서 현대적 정체성을 확립합니다.

 

부르고뉴 와인중 크레망 생산 비중. BIVB
부르고뉴 와인중 크레망 생산 비중. BIVB

◆엄격한 생산 규칙과 품종

 

크레망 드 부르고뉴는 부르고뉴 전역에서 생산될 수 있습니다. 부르고뉴 남단에 붙어있는 보졸레(Beaujolais) 일부 지역도 포함됩니다. 생산 면적은 약 2800ha, 연간 평균 생산량은 약 17만6000헥토리터, 약 2200만병 규모입니다. 부르고뉴 와인 전체 생산에서 크레망이 차지하는 비중은 12%로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허용 품종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뉩니다. 화이트 및 로제 크레망에는 레드 품종인 피노 누아(Pinot Noir), 가메(Gamay), 피노 그리(Pinot Gris)와 화이트 품종인 샤르도네(Chardonnay), 알리고떼(Aligoté), 믈롱(Melon), 피노 블랑(Pinot Blanc), 사씨(Sacy)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 중 피노 누아와 샤르도네가 핵심 품종으로, 대부분의 뀌베에서 블렌딩의 중심축을 이룹니다.

 

크레망 드 부르고뉴 생산과정.  BIVB
크레망 드 부르고뉴 생산과정.  BIVB

생산 조건도 까다롭습니다. 포도는 반드시 송이째 손으로 수확해야 하며 통풍이 잘 되는 천공 상자를 사용해 운반합니다. 포도 150kg을 압착할 때 얻을 수 있는 포도즙 양도 최대 100ℓ로 제한합니다. 포도를 너무 강하게 쥐어짜서 껍질이나 씨앗에 있는 떫고 쓴맛이 와인에 섞여 들어가지 않도록 부드럽게 짠 초반의 맑고 순수한 포도즙만 사용하라는 품질 관리 규칙입니다. 버블 형성을 위해 최소 9개월 동안 효모와 함께 숙성하며 출시 전까지 총 12개월 이상 숙성을 거칩니다. 연중 내내 포도밭과 생산 장비에 점검이 이뤄지며, 베이스 와인 품질 관리와 최종 완성 단계에서 두 차례 엄격한 테이스팅 평가를 통과해야 합니다.

 

그랑 에미낭 레이블과 로고.
그랑 에미낭 레이블과 로고.

◆크레망 등급

 

크레망 드 부르고뉴는 크레망 드 부르고뉴, 에미낭(Éminent), 그랑 에미낭(Grand Éminent) 등 세 가지 등급이 있습니다. 에미낭은 병을 가로로 뉘어서 촘촘하게 쌓아 올려 숙성하는 쉬르 라뜨(Sur latte) 방식으로 최소 24개월 숙성을 거쳐야 하며, 레이블에 에미낭을 표기하기 위해서는 세 번째 테이스팅 평가까지 통과해야 합니다. 그랑 에미낭은 조건이 한층 더 까다롭습니다. 피노 누아 혹은 샤르도네만 사용 가능하고(로제는 가메 최대 20% 허용), 수확 시 포도의 잠재 알코올 함량이 최소 10도 이상이어야 합니다. 압착된 주스의 첫 75% 즉 뀌베(cuvée)만 사용하며 쉬르 라뜨 방식으로 최소 36개월 숙성을 거칩니다. 스타일은 브뤼(Brut)만 허용되며 역시 세 번째 테이스팅 평가를 통과해야 비로소 그랑 에미낭 라벨을 달 수 있습니다.

 

도미니크 그뤼에(Dominique Gruhier) 그랑 퀴베 블랑 드 누아(왼쪽), 블랑드 블랑. 최현태 기자
도미니크 그뤼에(Dominique Gruhier) 그랑 퀴베 블랑 드 누아(왼쪽), 블랑드 블랑. 최현태 기자 

◆다양한 스타일로 즐기는 크레망의 세계

 

크레망 드 부르고뉴는 블렌딩 방식, 품종 구성, 도자쥬(dosage) 당도에 따라 매우 다양한 스타일로 분류됩니다.

 

품종 구성에 따라 크게 세 가지로 나뉩니다. 화이트와 레드 품종을 모두 쓰는 일반 크레망, 화이트 품종만 사용하는 블랑 드 블랑(Blanc de Blancs), 레드 품종만 사용하는 블랑 드 누아(Blanc de Noirs)입니다. 샤르도네 중심의 블랑 드 블랑은 신선하고 섬세한 꽃향기와 미네랄리티가 특징이며, 피노 누아 중심의 블랑 드 누아는 풍부한 과실미와 구조감이 두드러집니다.

 

 

 

도미니크 그뤼에 로제(왼쪽), 엑스트라 브뤼. 최현태 기자
도미니크 그뤼에 로제(왼쪽), 엑스트라 브뤼. 최현태 기자

도자쥬 당도에 따라서는 브뤼 나뛰르(Brut nature), 엑스트라 브뤼(Extra brut), 브뤼(Brut), 엑스트라-섹(Extra-sec), 섹(Sec), 드미-섹(Demi-sec) 순으로 당도가 높아집니다. 현재 시장의 대세는 당도를 최소화한 브뤼와 엑스트라 브뤼입니다.

 

빈티지 크레망은 표시된 연도의 포도만으로 생산된 것으로, 생산자가 그해의 품질이 뛰어나다고 판단했을 때만 출시됩니다. 레지오날, 빌라쥐, 또는 특정 포도밭 단위에서 선별된 ‘떼루아 크레망’도 있습니다. 이는 부르고뉴 와인의 DNA인 떼루아 개념이 크레망에서도 충분히 표현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시도입니다.

 

<2026 그랑주르 드 부르고뉴를 가다 ⑧에서 계속>

 

최현태 기자는 국제공인와인전문가 과정 WSET(Wine & Spirit Education Trust) 레벨3 Advanced, 프랑스와인전문가 과정 FWS(French Wine Scholar), 부르고뉴와인 마스터 프로그램, 뉴질랜드와인전문가 과정, 캘리포니아와인전문가 과정 캡스톤(Capstone) 레벨1&2를 취득한 와인전문가입니다. 2018년부터 매년 유럽에서 열리는 세계최대와인경진대회 CMB(Concours Mondial De Bruxelles) 심사위원, 2017년부터 국제와인기구(OIV) 공인 아시아 유일 와인경진대회 아시아와인트로피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소펙사 코리아 한국소믈리에대회 심사위원도 역임했습니다. 독일 ProWein, 이탈리아 Vinitaly 등 다양한 와인 엑스포를 취재하며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미국, 호주, 독일, 체코, 스위스, 조지아, 중국 등 다양한 국가의 와이너리 투어 경험을 토대로 독자에게 알찬 와인 정보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