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의 한 성형외과 대기실에서 데스크 직원이 일본인 방문객을 안내했다. 가벼운 옷차림의 방문객은 직원의 안내에 따라 고개를 끄덕이며 자연스럽게 상담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비슷한 시각 서울 지하철 9호선 신논현역 인근의 한 약국에서도 독특한 광경이 목격됐다. 양손에 쇼핑백을 든 중국인 관광객 일행이 진열대 앞에서 스마트폰 화면과 제품을 번갈아 비교하며 대화를 나눴다. 외국인 방문이 익숙한 듯 약국 직원은 중국어로 제품을 설명했고, 일행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결제를 마쳤다.
강남 한복판에서 목격된 두 가지 장면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최근 급변하는 외국인 관광객의 동선을 그대로 보여주는 상징적인 단면이다.
한국관광공사가 17일 발표한 외국인 카드 소비 빅데이터 분석 결과에 따르면, 지난 5월 외국인 관광객의 국내 카드 소비 지출액은 사상 최초로 2조원을 돌파했다. 지난해 같은 달의 1조2702억원 보다 무려 67.1%나 급증해 외국인들의 지갑 여는 규모가 대폭 변화하고 있음을 증명했다.
성형외과와 피부과로 대변되는 ‘K-의료·웰니스’ 업종의 성장세가 두드러졌다. 세부 업종별로 보면 피부관리·마사지 업종이 전년 동월 대비 153.9% 올랐고, 피부과도 85.5%라는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주목할 부분은 약국 업종 매출의 206.1% 증가다. 의료·웰니스와 약국 소비를 연결하는 연계형 소비 구조가 외국인 관광객 소비 패턴의 주요 특징으로 자리 잡고 있다.
면세점과 백화점 중심의 대규모 쇼핑 관광에서 벗어나 한국인의 일상을 체험하는 ‘라이프스타일형 소비’로의 트렌드 전환도 의미한다. 글로벌 20·30 세대를 중심으로 인스타그램이나 틱톡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한국 약국에서 꼭 사야 할 미용 템’과 같은 게시물이 확산하면서, 국내 약국이 비상약을 사는 곳이 아니라 일종의 쇼핑 코스로 자리 잡았다고 볼 수 있다.
외국인들의 연계 소비 동선은 이들이 즐겨 찾는 핫플레이스로도 이어진다. 관광객들이 많이 몰리는 성수2가 일대 프리미엄 약국들이 최소 30배 이상의 매출 성장률을 기록하며 이를 뒷받침했다. 지방도 예외는 아니어서 부산 해운대구 일대 약국 매출이 급증하는 등 ‘K-뷰티’와 결합한 쇼핑은 전국적인 현상이 됐다.
이와 함께 외국인들의 발길이 닿는 곳에서는 ‘체험’을 소비하는 경향도 나타난다.
글로벌 캐릭터 지식재산권(IP) 팝업스토어가 집중된 장난감·오락기기 업종은 한정판 굿즈를 사려는 팬덤이 몰리며 191.4% 올랐고, 스포츠용품 및 의류 업종도 84.5% 성장했다. 명동에서는 한국 한정판 의류를 직접 커스텀 제작하는 매장이 필수 코스가 됐고, 성수동은 SNS로 확산된 한국형 ‘고프코어’ 브랜드를 찾는 외국인들의 아지트가 됐다. 고프코어는 아웃도어 의류를 일상복처럼 자연스럽게 혹은 스트리트 패션과 믹스매치해 입는 스타일을 말한다.
업계에서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단체 관광이나 획일화된 명품 쇼핑에 매달리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한국인들이 일상적으로 누리는 미용 시술을 받고, 성수동에서 옷을 입으며 약국에서 추천 연고를 사는 등 라이프스타일을 소비한다고 짚는다. 압구정의 성형외과와 신논현역의 약국을 다녀간 외국인들의 발걸음은 국내 관광 시장이 생활 밀착형 체험 관광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진입했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한국관광공사 관계자는 “지자체와 업계가 외국인 관광 소비 변화를 포착하고 선제 대응할 수 있도록 데이터 기반 인사이트를 지속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