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여인의 굴곡지고 파란만장한 삶을 농염한 묘사와 압도적인 서사로 그려낸 장편소설 『고래』를 발표하고 나자, 사람들이 그에게 물어왔다. 다음에 어떤 작품을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있느냐고. 그래서 한국 전쟁에 관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대답했다고, 소설가 천명관은 기억했다.
“『고래』를 발표한 뒤라 쓰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한국전쟁이었습니다. 전쟁을 직접 겪은 세대는 아니지만, 한국전쟁이야말로 인류사에 드문 거대한 비극이면서도 지금의 한국 사회의 지형을 만든 근원적인 사건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많은 모순과 부조리가 한국전쟁에서 출발하고, 지금도 여전히 그 자장 안에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역사책이 아닌 소설이기에 그는 개인들의 이야기를 주목했다. 그가 선택한 개인은 가장 밑바닥에서 희생된 아이들. 2012년 「길의 노래」라는 제목으로 창비 블로그에 작품을 연재하기 시작했지만, 스토리의 거의 3분의 1 정도밖에 진행이 되지 않는 상태에서 다시 영화판에 발을 들이게 됐다.
10년 만에 파란만장의 영화판에서 돌아와 다시 작품을 쓰려고 했지만, 이미 그 자신이 이전과 많이 달라져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엇보다 생각이 바뀌고, 감각이 바뀌었다. 써 놓았던 글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3년여 대대적인 개고를 거친 뒤에야 책으로 묶어 발표할 수 있었다.
“원래는 꽤 두꺼운 책을 쓰려고 했었습니다. 주인공 동이의 행로가 더 복잡하고 긴 세월에 걸쳐지며 이야기도 더 현란한 스타일로, 지금 분량의 3배 분량 정도 되는 것을 구상했지요. 하지만 10년 만에 돌아와 보니 이야기성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약간 회의도 들었어요. 그래서 오히려 이야기를 더 축소하고 구성과 문체, 스타일도 완전히 바꿔 지금 모양이 된 것입니다.”
장편소설 『고래』로 2023년 인터내셔널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른 소설가 천명관이 한국전쟁 직후 거리에서 살아가는 앵벌이들의 이야기를 그린 신작 장편소설 『아코디언』(창비)을 들고 돌아왔다. 장편소설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 이후 10년 만이다.
작품은 전쟁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1950년대 서울을 배경으로 엄혹한 현실을 마주한 소년 ‘동이’가 역경을 이겨내고 성장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피난길에 엄마의 손을 놓친 바람에 고아가 돼 거리로 내몰린 ‘동이’는 떠밀리듯 ‘양 목사’가 거느린 앵벌이 움막에 정착하게 된다.
“하나, 둘, 셋, 넷….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눈은 그쳤지만 하늘엔 여전히 짙은 먹구름이 덮여 있었다. 소년이 처음 버스정류장에 부러졌을 때보다 주변이 더 소란스러워졌다. 하지만 어린 앵벌이가 엎드려 있는 발밑의 세상은 거리의 부산함과는 아무 상관없는 곳이었다. 그곳은 물속처럼 고요하고 쓸쓸했으며 소년은 물밑에 가라앉은 조약돌처럼 아무 움직임도 없었다. 처음 지게꾼이 동전을 던져주고 간 이후 깡통에 동전 부딪치는 소리는 열한 번 들렸고 버스는 모두 일곱 대가 지나갔다.”
서로를 밀치고 물어뜯어야 하는 아비규환의 세상에서, 동이는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삶을 버티고 있는 아이들을 만나게 된다. 앞을 보지 못하지만 누구보다 맑고 깊은 목소리로 행인의 발길을 붙드는 소녀 ‘연이’, 걷지 못하지만 비상한 기억력과 판단력으로 상황을 읽어내는 ‘거북이’, 한 팔을 잃고도 민첩하게 거리의 흐름을 감지하는 ‘깜상’….
동이의 운명은 폭력과 약육강식의 세상에서 친구들과 함께 고물덩이 가운데 주운 한 대의 아코디언이 뒤흔들기 시작한다. 무기력하게 엎드려 있던 동이가 아코디언을 어깨에 메고 우체국 앞에 서고, 그 선율 위에 연의 노랫가락이 얹히는 순간 구걸은 한순간 거리 공연으로 바뀌는데….과연 동이와 그의 친구들은 폐허의 벼랑 끝에서 뜨겁고도 구슬픈 ‘생의 합주’를 펼쳐 보일 수 있을까.
“그것은 일찍이 연이가 할아버지와 함께 앵벌이 생활을 할 때 자주 불렀던 노래였다. 그리고 동이가 백화점 앞에서 앵벌이를 할 때 맞은편 전파사에서 종일 흘러나오던 노래였다. 「목포의 눈물」은 그날 처음 선보이는 곡이었지만 두 사람 사이엔 말이 필요 없었다. 마치 오랫동안 합을 맞춰온 듯 매끄럽게 반주와 노래가 이어졌다. 연이는 찬송가를 부를 때와 표정이 사뭇 달랐다. 한 소절, 한 소절, 가사마다 깊은 감정이 실려 노래가 끝났을 땐 구경꾼들이 일제히 박수를 치며 감탄했다.”
천 작가는 지난 17일 서울 마포구 창비 서교빌딩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창작 배경과 집필 과정, 작품 내용 등 여러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처음부터 새로 쓰는 것보다 오히려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고민이 좀 많았지요. 저는 어렵 게 쓰지 않는 편인데, 이 책은 제가 쓴 책 중에서 아마 가장 좀 지난한 과정을 거쳤던 것 습니다. 가장 힘든 작업이 아니었나, 그런 생각이 듭니다.”
―『고래』와 『아코디언』 사이의 작가와 작품 등의 간극을 설명해 준다면.
“제가 인생행로가 좀 간단치는 않은데, 30대는 10년 동안 영화를 했다. 결과는 파산으로 결론이 났다. 그래서 40대에 10년 동안 소설을 썼고, 50대에 다시 10년을 영화를 하면서 보냈다. 영화를 한 20년 동안, 제가 한 노동은 적지 않은 분량이었다. 근데 결과는 영화 한 편을 만들었다. 원래 쇼비즈니스가 그런 속성이 있지만, 제가 선택한 것이기에 후회하진 않는다.(『고래』를 쓸 때에는) 제가 뭘 쓰는지를 잘 몰랐다. 그냥 제 머릿속에 뻗어나가는 상상력을 포기하지 않고 그냥 뻗어나가는 대로 놓아준 것이었다면, 이 이야기는 현실의 부조리, 폭력과 착취와 불평등 이야기를 들어 있는 리얼리즘의 이야기다. 리얼리즘을 강조하다 보니 판타지적 요소는 거의 없다. 물론 다른 형식으로 쓸 수도 있겠지만, 제가 뻗어나가는 상상력을 억제하고, 그것을 좀 이 안에 가두려고 좀 많이 했었던 것 같다.”
―한국전쟁 직후 서울의 여러 모습이 나오는데, 취재는 어떻게 했는지.
“조사를 많이 했다. 저도 좀 나름 옛날 사람이기에 그 시대적 감각이 좀 있는 것 같다.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모습이었겠구나, 라고 좀 짐작되는 바도 있고. 정확하게 저희 아버지 또래의 이야기다. 실은 아버지한테도 이야기를 많이 물어봤다. 그때 길거리에서 어떤 간식을 팔았느냐, 라고 물었는데, 뽑끼라고 대답해 제가 약간 놀랐다. 그때도 뽑끼가 있었느냐. 사진도 많이 보고. 특히 옛날 사진을 보면서, 사람들이 어떤 표정을 짓고, 손에 들고 어떤 것들이 있는지, 거리의 간판은 어땠는지 등을 보면서 상상했다. 창비에서 나온 네 권짜리 책 『한국 현대 생활문화사』가 있는데, 1950년대 편에서 많이 참고했다.”
―왜 아이들이었는가.
“아이들은 그 시대에 희생자다. 좀 더 적나라하게 폭력의 어떤 피해자로서 당시를 그려내는 데 조금 더 효과적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이들을 설정했다.(어떤 캐릭터들을 만들어내려고 했는지) 캐릭터라이징에 있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복잡성이다. 한 인물 안에서 선의는 늘 선하기만 하고 악의는 늘 악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내면의 작은 변화에 의해 어떤 짓이든 할 수 있도록 한 인간 안에서 입체적인 복잡성들을 포착해내고 싶어 하는 면들이 있다. 제가 자연스럽게 떠올린 어떤 풍경들 속에서 어떤 장애를 가진 아이들 인물을 만들어냈다.”
―왜 소설 속 곳곳에 노래를 삽입하고 활용할 생각을 하게 된 것인가(이번 작품에선 「목포의 눈물」, 「슈산 보이」, 「홍콩아가씨」, 「단장의 미아리 고개」 등 당시 대중가요를 다수 등장시켜 시대상과 분위기를 보여주기도 한다).
“저도 연배는 좀 있지만, 여기에 등장하는 노래들은 제 세대의 노래는 아니다. 이 노래들은 오히려 지금은 돌아가신 저희 엄마가 제가 어릴 때 항상 들려줬던 노래였다. 어머니는 노래를 잘하시고 좋아하셔서 우리한테 「눈물의 부산 정거장」이라든지 「에레나」 등 노래를 많이 들려주셨다. 굉장히 인상적인 노래였다. 「단장의 미아리 고개」 곡에 ‘철사줄로 두 손 꽁꽁 묶여’라는 구절은 무서우면서 노래 가사에 어떻게 이런 내용이 들어가 있을까, 어릴 때도 충격이었던 기억이 난다. 돌이켜 보면, 그때 민중의 삶과 아주 밀접하게 다 있었고, 우리의 삶을 그대로 드러내려고 노력했고, 상처나 트라우마도 있지만, 또 어떤 익살이라든가 아이러니, 또 어떤 새로운 세계에 대한 공격 등도 담겨 있었다. 그 노래들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나 그것들을 떠올리면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 이 소설은 그 시대의 노래에 바치는 일종의 헌사이기도 하다.”
―아코디언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왜 하필 아코디언이었는지.
“왠지 아코디온 하면 거리의 악기라는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에밀 쿠스트리차 감독의 영화 「집시의 시간(Dom Za Vesanje, 1988)」에서도 (집시 특유의 감수성을 상징하는 악기로) 아코니온이 나온다. 가볍게 이동을 할 수 있고, 베이스도 있고, 에너지도 있고, 풍부한 음악 소리도 낼 수 있다. 아코디언 소리에는 뭔가 아련한 슬픔과 집시적인 아련함이 있다. 당연히 아코디언이었다. 저는 그 소리가 매우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혹시 영상화를 염두에 두고 쓴 것인가.
“아니다. 소설을 구상할 때나 쓸 때 카메라의 움직임이 머릿속에 많이 그려지는 편이다. 오랫동안 시나리오를 써서 그런지 그림이 좀 그려진다, 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다. 아마도 제가 사실의 진술을 좀 더 많이 쓰는 편인 것 같다.”
1964년 경기도 용인에서 태어나고 자란 천명관은 2003년 단편소설 「프랭크와 나」가 문학동네신인상에 당선돼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장편소설 『고래』, 『고령화 가족』, 『나의 삼촌 브루스 리』(2권),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 등을, 소설집 『유쾌한 하녀 마리사』, 『칠면조와 함께 달리는 육체노동자』 등을 발표했다.
특히 등단 이듬해 발표한 장편소설 『고래』로 문학동네소설상을 수상한 데 이어, “한 번도 이렇게 전개되는 플롯을 읽어본 적이 없을 것”이라는 극찬과 함께 2023년 인터내셔널 부커상 최종 후보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는 소설가로 등단하기에 앞서 영화인으로 먼저 활동했다. 군 제대 후 우연한 계기로 영화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면서 「총잡이」 「북경반점」 「이웃집 남자」 등의 영화 시나리오를 집필했다. 오랫동안 품은 연출의 꿈은 2022년 동료 작가의 소설을 영화로 옮긴 「뜨거운 피」를 통해 실현했다.
―『고래』로 2023년 인터내셔널 부커상 최종 후보에도 올랐는데.
“부커상은 제 인생에서 그냥 재미있는 해프닝이었다. 수상자 발표를 하는 순간, 제 옆자리에 앉아 있던 불가리아 작가에게 ‘최후의 화살’이 순식간에 날아갔다. 사실 저는 제가 못 받을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끝까지 저한테 연락이 없었다. 불가리아 작가 분은 가족을 다 데리고 오셨더라. 저분이 받겠구나, 생각했다. 인상적인 건, 그분이 상 받고 내려오자마자 저한테 오셨다. 악수를 청하면서 ‘불가리아에 있을 때 네가 받는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이렇게 돼 미안하다’고 말했던 기억이 있다.”
―언젠가 인터뷰에서 과거 리얼리즘 문학을 비판하기도 했는데.
“리얼리즘 작업은 1980년대에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당시 새로운 사회에 대한 어떤 열망이 많이 담겨 있었고, 하위 주체들에 대한 어떤 연대나 공감이 중요한 요소였고, 그런 삶을 담아내려고 많이 노력을 했다. 하지만 1990년대 소위 ‘내면성의 문학’이 등장하면서 리얼리즘 문학들이 잘 안 보이게 됐다. 리얼리즘 형식이 유효하지 않게 된 이유는 무엇보다 독자들이 좀 더 세련된 것을 찾게 되면서부터인 것 같다. 그래서 저는 좀 더 새로운 형식이 필요하지 않나라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했다. 그래서 이 소설도 좀 지루하지 않게 쓰려고 좀 애썼던 것 같다.”
―요즘 문학과 영화 등은 어떻게 보고 있는지.
“제가 젊었을 때는 공감의 문학이 있었다. 「전원일기」 등 그야말로 장삼이사들의 이야기, 골목길에서 살아가는 서민들의 이야기, 하위 계층의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많았다. 같은 사람이구나, 같은 고민을 하고 있고, 그걸 보고 세상의 온기를 느끼면서 살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완전히 사라지고 이제 선망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최근에는 재벌들이 몰려다니니까 거의 실시간 라이브로 중계를 하더라. 저는 그 감각이 뭔지 모르겠다. 지금은 선망의 시대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저도 어릴 때 많은 것들을 선망하고 살았지만,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선망도 좋지만 공감이 거의 사라져 이제는 타인을 다 적대시하는 분위기로 가는 게 아닌가. 요즘에는 하위 주체를 다루는 문학이나 영화, 드라마 등이 거의 없다. 그들은 오히려 사회로부터 격리해야 될 존재처럼 혐오가 심해졌다. 결국 공감하고 서로 함께 이겨내지 않으면 방법이 없는데, 서로 혐오만 키우고 점점 더 고립돼 가는 이 상황이 좀 안타깝다.”
“눈에 보이진 않지만 어떤 식으로든 모두가 서로 연결돼 있다고 믿는다”(「작가의 말」)는 소설가, 10년의 기다림을 깨고 돌아온 이야기꾼 천명관. 그의 이야기가 정말 다시 맹렬하게 펄떡이기 시작한 것일까. 당신이 이 글을 읽는 동안에도 어디에선가 부지런히 연결로를 만들고 있을까.
“제가 50대 때 ‘10년간 영화를 한 번 더 해보자, 그리고 이후에는 소설을 쓰면서 삶을 보내지 않을까’라고 구상했었습니다. 앞으로도 소설을 계속 쓸 겁니다. 지금 밀려 있는 집필 스케줄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계속 달려야 될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