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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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 마실 생수 구하자" 사재기 광풍

도쿄 ‘방사능 수돗물’ 공포 확산
마트·편의점 등 매진사태… 재고 꺼내기 무섭게 동나
택배 주문 최소 2주 대기… 보육원·유치원도 초비상
960만명이 사는 일본의 도쿄도에 수돗물을 공급하는 정수장에서 유아의 음용 기준치를 초과한 방사성물질이 검출되면서 주민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 도쿄도에서 24일 유아가 있는 8만가구에 550㎖짜리 생수 3병씩을 긴급 배급했지만, 시민들은 ‘언제 끊길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대형 마트와 동네 슈퍼, 편의점 등을 찾아 ‘닥치는 대로’ 생수를 사들이고 있다. 방사능 전문가들이 “장기간 복용하지 않으면 건강에는 이상이 없는 수치”라고 차분한 대응을 호소하지만 사재기 광풍을 막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이다.

이날 오전 10시30분 도쿄 신주쿠(新宿)구의 대형마트인 ‘돈키호테’. 이른 아침부터 생수를 사려는 손님들이 몰려들면서 매장 진열대의 2ℓ짜리 생수병이 모두 동이 나버렸다. 점원들이 창고의 재고 박스를 가져와 풀기 무섭게 팔려나갔다. 마트 측이 생수 사재기를 막으려고 1인당 1개로 판매량을 제한했으나 수요를 대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생수 ‘고갈’ 도쿄 신주쿠의 한 대형마트 음료판매대에서 24일 생수가 자취를 감췄다. 도쿄도의 수돗물 방사성 물질 검출 발표 이후 생수 사재기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도쿄=김동진 특파원
4살배기 아들을 둔 한 주부(34)는 “집 근처 슈퍼들은 이미 오늘분 생수 판매가 끝나버려 버스를 타고 시내까지 나왔다”면서 “남편과 나는 괜찮지만 아이에게는 당분간 생수를 먹이고 싶은데 충분한 양을 구하지 못해 걱정”이라고 말했다.

점포에 이어 음료자판기도 매진사태다. 이날 오후 1시30분 신주쿠 시나노마치역 주변의 자판기 20여대에는 생수 선택버튼마다 매진을 알리는 빨간 불이 켜져 있었다. 인근 주민들이 가게에서 생수를 구하기 어렵자 자판기용 550㎖짜리 생수에 손을 뻗친 것이다. 현장에서 만난 한 주부(62)는 “첫째 딸이 지난달 손자를 출산해 지금 집에 와 쉬고 있다”면서 “(도쿄)도에서 유아 가정에 생수를 나눠주고 있지만 사태가 언제까지 계속될지 몰라 비축분을 마련해둘 생각”이라고 말했다.

보육원과 유치원에도 비상이 걸렸다. 5세 이하 아동 110여명이 다니는 세타가야(世田谷)구 ‘오도모다치 보육원’의 후지모리 마모리(58) 원장은 현지언론에 “사태가 장기화하면 급식에 사용할 물을 마련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전날 생수를 주문하려고 소매점에 전화를 걸었지만 재고가 부족해 구입하지 못했다. 보육원 측은 결국 이날부터 보호자들에게 아이를 맡기려면 생수통을 반드시 지참하도록 요구하는 편법을 썼다.

약 80명의 아이들을 보유한 고토(江東)구의 ‘히나다마리 보육원’은 그간 원아들의 급식과 차, 분유 등에 끓인 수돗물을 사용했다. 하지만 도쿄도의 발표 후 수돗물 사용을 일절 중단하고 재해에 대비해 비축해둔 생수를 꺼내 사용하고 있다. 이 보육원의 원장은 “생수 비축분이 1∼2일분밖에 남지 않았다”면서 “물을 사용하지 않을 수는 없는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다”고 하소연했다.

인터넷과 전화로 주문을 받아 음료수를 택배해주는 회사인 ‘아쿠아쿠라라’에는 주문이 쇄도해 홈페이지의 서버가 다운됐다. 본사 콜센터에도 불과 3시간 만에 1만2000건 이상의 주문이 밀려들어 소화하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수도권에서 이 회사의 생수 배달을 받으려면 최소 2주 이상 대기해야 한다.

도쿄도는 이날 오후 1세 미만 유아에 대한 수돗물섭취제한을 해제했다. 도쿄도는 전날 수돗물에서 요오드가 검출된 가나마치 정수장 물을 검사한 결과 요오드 검출량이 유아의 음용제한 기준치를 밑돌았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도쿄=김동진 특파원 bluewins@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