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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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더미서 건진 노트엔 '孝行' 글씨…학부모 오열

쓰나미 덮친 오가와 초등교
아이들 흔적이라도 찾으려… 영하의 날씨에도 잔해 뒤져
8살 개구쟁이 아들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진흙투성이 책가방만 달랑 돌아왔다. 그것도 자위대원들이 무너진 학교 건물의 잔해더미를 뒤지고 뒤져 겨우 찾아낸 것이다. 엄마는 떨리는 손으로 책가방을 열었다. 바닷물에 젖은 아들의 노트가 있었다. 한자쓰기 연습을 한 모양이었다. ‘親孝行(효도)’이라고 쓴 아들의 서툰 글씨를 보곤 엄마는 쓰러져 통곡했다.

미야기(宮城)현 이시노마키(石卷)의 오가와(大川) 초등학교는 이번 쓰나미로 건물이 통째로 무너졌다. 전교생 108명 가운데 생사가 확인된 것은 31명뿐이다. 영하의 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24일에도 진흙과 건물잔해, 그리고 바닷물이 뒤엉킨 교정에서 부모들은 돌아오지 않은 자식의 흔적을 애타게 찾았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지난 11일 강진이 발생하자 이 학교의 학생들은 실내화를 신은 채 운동장으로 피신했다. 운동장에는 오후 2시50분 출발하는 통학버스 1호가 도착해 있었다. 지진에 자식이 걱정돼 직접 마중나온 학부모도 있었다. 교사의 인솔로 아이들이 통학버스에 타거나 부모한테 인계돼 막 돌아가려는 순간이었다. 집채만 한 파도가 운동장을 집어삼켰다.

쓰나미가 멈춘 뒤 주민들이 달려갔을 때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학교 건물은 무너졌고, 운동장은 여기저기서 떠내려온 잔해에 파묻혀 원래 모습을 알아볼 수 없었다. 부모들은 그때부터 식음을 전폐하고 매일 잔해더미를 뒤지며 아이들을 찾고 있다.

쓰나미 당시 자위대 헬기에 구출된 나가누마 게이코(永沼惠子·40)는 그런 부모 중 한 명이다. 2학년 장남 고토(琴·8)의 얼굴이 어른거려 피난소에 있을 수 없었다. 남편과 함께 깨진 벽돌과 판자, 진흙을 손으로 헤치면서 아들을 찾아 다녔다. 그런 나가누마에게 자위대원이 책가방을 건넸다. 효도와 친절, 모친이라는 한자가 쓰인 아들의 노트는 나가누마 부부뿐 아니라 주변의 사람들을 눈물짓게 했다.

사이토스에코(佐藤·37)는 6학년 장녀 미쿠(末空·12)와 3학년 아들 다쿠미(拓海·9)를 한꺼번에 잃었다. 졸업식을 앞둔 딸은 중학교에 입학해 교복을 입는 것을 고대하고 있었다. 사이토는 학교 잔해에서 발견된 딸의 사진을 어루만지며 “사놓은 교복을 한번도 입어보지도 못했는데 너무 빨리 갔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오가와 초등학교는 학생뿐 아니라 교직원도 피해가 컸다. 전체 교직원 13명 가운데 한 명만 시신으로 발견됐고, 9명은 아직도 행방불명 상태다.

도쿄=김동진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