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8월6일 괌에 추락해 산산조각 난 대한항공 보잉 747기의 모습. 당시 기장과 부기장의 소통 부족이 사고의 주요 원인으로 드러났다. ‘타임’ 인터넷 제공 |
1999년 한진그룹 회장으로 취임한 조양호 회장은 미국인을 훈련·교육 책임자로 임명해 조종사들의 문화를 바꾸고 조종실 내 소통을 강화했다. 그리고 국제선의 조종실에서는 영어로 대화하도록 했다. 영어라는 언어에서는 권위가 들어설 여지가 없었다. 이로 인해 부기장은 자기의 의견을 기장에게 적극 개진할 수 있었다. 사고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하지만 조 회장을 비롯한 오너 일가를 둘러싼 경영진 간에는 의사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땅콩 회항’ 사태가 그러한 것을 잘 웅변하고 있다.
서울 강서구 공항동 대한항공 본사 로비에서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이 ‘램프 리턴’으로 물의를 일으킨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 관련 기자회견에 앞서 고개를 숙여 사과하고 있다(위쪽 사진). 조 전 부사장도 서울 강서구 공항동 국토교통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에서 조사를 받기 전 사과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
땅콩 회항 때 비행기에서 강제로 내린 박창진 사무장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제가 오너의 따님인 그분께 어찌 감히…”라며 소통이 불가능한 현실을 털어놓았다. 괌 추락사고 당시 기장의 권위에 눌려 의견을 개진하지 못한 부기장의 입장과 유사하다.
‘오너가 바로 회사’라는 문화가 뿌리 깊게 박힌 기업에서 어찌 보면 이번 사건은 당연한 결과로 보인다. 대한항공은 조현아 전 부사장이 땅콩 회항 사태를 촉발한 뒤 이를 덮기에 급급했다. 여모 상무는 조 전 부사장의 잘못을 지적하지 못한 채 오너 일가의 눈치를 보며 사건 은폐를 시도했다. 대한항공 출신 국토부 조사관도 은폐에 공모한 정황이 포착됐다. 대한항공은 박 사무장과 사건 당일 지적을 받은 스튜어디스에게 침묵을 강요했다. ‘조 부사장의 서비스 지적은 임원으로서 당연하다’는 내용의 사과문을 발표하는 등 일방통행적인 기업문화를 그대로 노출했다.
그는 “개혁적 성향이 강한 젊은 층은 조직의 문제나 위기에 대해 지적할 수 있는 능력이 있지만, 우리 사회는 이를 수직적으로 억압해 결국 사태를 키우는 악순환이 계속된다”고 지적했다.
정선형·이지수 기자 linear@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