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의 한 건물 지하. 33㎡(약 10평) 남짓 공간에서 재봉틀 6대가 요란한 기계음을 뿜어내고 있었다. 이곳은 소매업체가 맡긴 원단과 패턴으로 의류를 만드는 봉제공장이다. 이런 공장이 용두동에만 100개가 넘는다. 이들 대부분은 동대문 업체와 직거래하기 때문에 따로 간판도 없다.
공장 관계자는 “전국에서 ‘레플’ 문의가 빗발친다”며 “원단과 패턴을 맡기면 한 벌당 5000원 선에 만들어주는 식”이라고 귀띔했다.
최근 온라인상에서 레플리카 상품이 범람하고 있다. 생소한 용어 탓에 해외 유명 브랜드인가 싶지만 레플리카는 기존 ‘짝퉁’의 다른 이름에 불과하다. 시중에서 ‘A급’, ‘S급’ 등으로 분류되며 은밀하게 거래되는 짝퉁과 달리 레플리카는 정품인 것처럼 팔린다.
25일 관세청과 의류·잡화 업계에 따르면 인터넷 오픈마켓에서 판매 중인 레플리카 의류·잡화는 4만여점, 관련 쇼핑몰과 카페 등은 1400여개로 추산된다.
이들 사이트는 국내외 명품 디자인을 그대로 베낀 상품을 정품의 절반 이하 가격에 팔고 있다. 한 유명 사이트는 ‘16S/S(봄여름) 유아인 블레이저’라며 프랑스 패션 브랜드 ‘생로랑(Saint Laurent)’의 블레이저 복제품을 19만8000원에 올려놨다. 이 상품의 공식 판매가는 284만원이다.
레플리카는 원작자가 자신의 작품을 똑같이 재현한 복제품을 일컫는 예술계 용어다. 의류업체 관계자는 “레플이나 ‘ST(스타일)’란 용어가 어느 순간 짝퉁을 대신하기 시작했다”며 “복제업자들이 유명 브랜드에 ST란 약어만 붙여 복제품인 사실을 공공연히 알린 채 판매한다”고 말했다. 한 쇼핑몰 관계자는 “우리는 짝퉁처럼 상표(tag)를 위조해 붙이지 않는다”며 마치 합법 제품인 양 설명했다.
하지만 이같이 레플리카 제작, 판매는 엄연한 불법이다. 유명 브랜드인 경우 따로 상표 등록하거나 특허를 받지 않았어도 이를 복제하면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이다. 위조한 상표를 붙이면 상표법 위반, 디자인이 특허청에 등록돼 있으면 디자인보호법 위반(친고죄)이다.
특허청에 따르면 온라인 위조상품 단속 실적은 2013년 5250건에서 2014년 5802건, 2015년 6091건으로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전문업자가 제조, 유통하는 짝퉁과 달리 영세업자 중심인 레플리카에는 단속의 손길이 미치지 못한다.
특허청 특별사법경찰대 관계자는 “단속 인력이 17명에 불과해 인터넷에 광범위하게 퍼진 레플리카까지 단속하기는 힘들다”며 “경찰도 위조상품 단속에만 집중할 수 없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솜방망이 처벌’도 레플리카 확산을 부추긴다. 한 레플리카 제조 공장 관계자는 “레플리카는 주로 주부나 학생 등이 판매한다”며 “동종전과가 없고 영세업자라면 단속에 적발돼도 처벌이 벌금 200만~500만원 수준”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단속 강화와 함께 국민 인식 개선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대한변리사협회 김웅 디자인제도위원장은 “우리나라는 디자인 권리나 보호에 상당히 무감각하다”면서 “불법복제 사건에 징벌적 손해배상을 인정하거나 공시제도 마련 등 직간접적 억제책을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상표를 안 붙이면 합법인 것처럼 잘못 알려진 만큼 적극적인 홍보도 긴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창수 기자 winteroc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