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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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의 행보는 ‘잘 짜인 각본’?

제주 → JP 예방 → TK 방문
“정무적인 조언그룹 형성” 관측 / “검증 앞당기는 우 범해” 지적도
여권에서 차기 대권주자로 구애를 받고 있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방한 행보를 놓고 마치 ‘잘 짜인 각본’대로 움직인다는 분석이 나온다.

반 총장은 지난 25일 제주에서 좌중이 술렁일 정도로 일반적인 관측을 뛰어넘는 수위의 발언을 통해 대선 출마를 시사했다.

이어 28일에는 오랫동안 충청의 맹주로 군림한 김종필 전 국무총리를 예방해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이끌어낸 데 이어 29일 TK(대구·경북) 지역을 방문했다. 
29일 반기문 UN사무총장이 경북 안동 하회마을을 방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특히 경북 안동은 스스로를 ‘한국정신문화의 수도’라고 자처할 정도로 영남 선비 정신의 본향으로 불리는 곳이다. 여권 친박(친박근혜) 진영에서 꾸준히 제기되어 온 ‘TK·충청 연합론’, ‘충청 대망론’에 불을 붙이기 위한 행보로 이보다 더 절묘한 선택을 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이번 방한은 반 총장을 차기 대권구도의 상수로 만드는 프로젝트로 활용됐다는 게 중론이다. 프로젝트의 조력자는 기존의 외교 참모진이 아닌 정치 경험이 풍부한 정무적 조언 그룹일 것이란 얘기가 나온다.

한 친박(친박근혜) 의원은 29일 통화에서 “반 총장의 기존 참모진은 외교관으로 채워져 정무적 판단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며 “이번 대선 출마 시사 발언은 적절한 수위를 유지하면서도 반 총장 대망론을 지속적인 이슈로 만들겠다는 치밀한 계산이 깔려 있어 반 총장 주변에 정무적 조언그룹이 형성된 것 같다”고 말했다. 기존 외교 참모들이 이 정도로 정교한 정치적 조언을 하기는 힘들어, 친박이 반 총장을 조직적으로 자문하기 시작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여권 일각에서 나오는 것이다. 충청포럼 회장인 무소속 윤상현 의원이 자문그룹을 가동해 반 총장 지원에 나섰다는 소문도 들린다.

그러나 반 총장이 여전히 아마추어적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대망론에 고무된 반 총장의 조급증이 리더십·도덕성 검증시기를 앞당겨 놓는 우를 범했다는 지적이다. 여권 관계자는 “반 총장이 스스로 자신을 대선의 링으로 올려놓는 꼴이 됐고 일단 링에 오른 이상 약육강식의 서바이벌 게임을 피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반 총장은 임기 완료 전 6개월 동안에 혹독한 검증작업이 이뤄질 경우 반 총장으로선 그에 대한 해명을 할 수 없는 처지여서 무방비로 당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남상훈 기자 nsh21@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