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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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도 임신하셨어요?" 도입 6년, 임산부 배려석 둘러싼 갑론을박

 

 

왼쪽 사진은 기사와 상관 없음. 최근 논란이 된 문구인 ‘아저씨도 임신하셨어요’ 공익광고협의회의 공익광고제 동상 수상작. 게티이미지뱅크, 공익광고협의회.

 

임산부 배려석을 비워 놓는 것이 ‘의무’인지, ‘양보’인지 논쟁이 격화되고 있다. 이같은 임산부 배려석 논쟁은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등을 통해 일파만파 퍼지면서 ‘임산부 혐오’ 혹은 ‘여성 혐오’ 등의 남녀 대립 구도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임산부 배려석 비워놓기’ 홍보 캠페인은 다각도로 적극 도입됐으나 정작 이용에 불편을 느꼈다는 임산부 여론도 높아지는 추세다.

 

지하철 임산부 배려석은 서울특별시의 여성정책 일환으로 서울지하철 1~8호선을 운영하는 서울도로교통공사가 2013년 12월부터 도입했다. 노약자석과 별개로 일반석 7석 중 출입문과 가장 가까운 쪽 좌석 2곳을 지정해 임산부들이 쉽게 이동할수 있도록 배려한 좌석이다. 서울교통공사는 교통약자인 임산부 배려 문화를 확산하기 위해 2015년부터는 임산부 배려석의 시트커버를 ‘분홍색’으로 교체했다. 또 “내일의 주인공을 위한 자리입니다”라는 패치를 붙이고 다국어 문구로 이를 안내했다. 이듬해부터 ‘비워두기’ 홍보 캠페인을 시작해 ‘임산부 배려송’도 발표했다.

 

‘임산부 배려석 비워두기’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다양한 방법이 모색됐다. 대전도시철도는 2017년 11월 지하철 내 임산부 배려석에 ‘테디베어’ 곰 인형을 설치했다. 또 지난해 7월 서울공항철도도 임산부 배려석에 공항철도 캐릭터 ‘나르’ 인형을 비치했다. 임산부 배려석에 앉기 위해서는 이 인형을 안고 탑승해야 한다.

 

대전도시철도와 서울공항철도 등은 임산부 배려석 비워놓기 캠페인을 위해 테디베어 인형이나 혹은 공항철도 캐릭터 나르인형 등을 배치했다. 사진=대전도시철도 트위터, 온라인 커뮤니티, 서울공항철도 페이스북

 

이같은 적극적 홍보 캠페인의 시행에도 불구하고 임산부 배려석 제도에 대한 논쟁은 계속 되고 있다.

 

지난달 18일 서울메트로에 따르면 전날 서울지하철 4호선 전동차 객실 좌석 가운데 유독 임산부 배려석과 임산부 엠블럼만 골라 굵은 펜으로 크게 '가위표(×)'를 그어 훼손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 낙서는 해당 지하철 10량 중 7량에서 발견됐다. 이러한 사건이 전해지자 “왜 임산부만 따로 배려해주냐”라는 주장과 “임산부, 여성에 대한 혐오”라는 반론이 팽팽하게 맞섰다.

 

지난달 초 한 여성은 스마트의 익명 게시판 기능을 이용해 임산부 배려석에 앉은 한 남성에 대해 “임산부 배려석 앉은 남성, 정말 미개하지 않나요” 라고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 이 글은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옮겨졌고 이후 남성 누리꾼들은 “배려석을 강요하지 마세요’”라는 취지의 댓글을 달았다. 이 글에 댓글을 단 남성들은 “임산부 배려석은 말 그대로 ‘배려’ 이지 ‘강요’가 아니다”, “임신이 벼슬이냐”라고 주장했다.

 

지난달 17일 서울 4호선 열차 10량 중 7량의 임산부 배려석에서 ‘X’자 표기된 사건이 발생했다.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자신을 아이 둘의 엄마라고 소개한 한 누리꾼은 언론에 기고한 글을 통해 맘카페에 게시된 질문을 인용하며 임산부 배려석을 이용하는 임산부들이 되려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고 털어놨다. 그가 언급한 한 맘카페에는 “임산부 배지하고 다니면 자리 양보해주나요?”라는 질문이 달렸다. 이에 대한 답글로 회원들은 “배지 달아도 무용지물. 그거 하고 다녀도 소용없어요”, “저는 임산부 배려석에 앉기 싫어요. 거기 앉으면 눈총 받는 기분이에요”, “만삭에 지하철 타도, 임산부 배려석에 앉은 사람들이 그냥 대 놓고 쳐다만 봐요. 민망할 정도로 계속 위아래로 훑기만 하고 양보는 안 해주고. 정말 너무 수치스럽고 기분 나빴어요” 등의 의견을 달았다. 글쓴이는 실제 상당수 임산부가 임산부 배려석에 앉기를 꺼려한다고 언급했다. 그는 임산부 배려석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 주눅 들고 특히 핑크 좌석에 앉아 ‘전시’당하는 기분이었다며 임산부 배려석 사용 당사자로서 느낀 불편함에 대해 털어놨다.

 

임산부 배려석을 양보해야 한다는 주장에 갑론을박이 이어지기도 했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노약자석에선 노약자 우선, 임산부석에서는 임산부 우선...이게 어려운건가요?”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이 글의 글쓴이는 “몸이 힘들고 피곤해도 임산부석은 최소한 양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글에 일부 누리꾼들은 동의한다는 입장을 보였으나 일부 누리꾼들은 반대 입장을 보였다. 반대한 누리꾼들은 “필요하면 (양보해달라고) 요청해라”, “양보는 자유”, “대중교통이기 배려를 못 받을 수도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등 댓글을 달았다.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 및 SNS 등을 통해 확산된 '임산부 배려석'에 대한 탑승객들의 불편한 감정을 표현한 패러디 사진.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이처럼 임산부 배려석을 둘러싼 다양한 논쟁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관련 민원도 꾸준히 늘고 있는 추세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임산부 배려석 관련 민원건수는 2만7589건에 달했다. 이들 민원은 “임산부 배려석에 일반 승객이 앉아있다”, “임산부 배려석 안내 방송을 해달라” 등의 내용이다. 지난해 1월부터 그해 11월까지 하루 평균 약 80건에 달하는 임산부 배려석 관련 민원이 접수된 것이다.

 

임산부 상당수가 일상생활에 있어 임산부 배려석 이용에 있어 불편을 느꼈다는 설문 조사 결과도 있다. 인구보건복지협회가 2017년 보건복지부와 인구보건복지협회가 임산부 3212명과 일반인 740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온라인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임산부 60.2%만이 “배려를 받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임산부 10명 중 4명은 자리 양보를 포함한 배려를 체감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또한 인구보건복지협회가 지난해 1월1일부터 8월31일까지 출산한 경험이 있는 20~40세대 임산부 총 40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임신경험으로 본 배려문화와 지원정책’ 결과에 따르면 대중교통 임산부 배려석 이용에 불편을 느꼈다는 응답이 88.5%로 조사됐다. 임산부 10명 중 9명은 임산부 배려석에 불편을 느낀 것이다. 이들은 불편을 느낀 이유는 ‘일반인이 착석 후 자리를 비켜주지 않아서’가 58.6%로 가장 높았다. 이어 ‘임산부 배려석이 모자라서(자리가 없어서)’도 15.5%로 나타났다.

 

임산부 배려석의 임산부 이용율이 매우 저조하다는 조사결과도 나왔다. 온라인매체 톱데일리는 지난해 5월1일 오전·오후 5시간 동안 서울지하철 1호선부터 9호선까지 열차를 무작위로 탄 후 임산부 배려석 이용실태를 조사했다. 조사결과 임산부 배려석 총 136석 중 비워진 임산부 배려석은 24곳으로 전체 임산부 배려석의 약 20%에 불과했다. 좌석 이용객 중 성비는 여성이 84명, 남성이 27명으로 여성 탑승객이 남성 탑승객 보다 3배 높은 이용률을 보였다. 이들 중 임산부는 고작 1명이었다. 전체 136석 중 고작 0.7%만 임산부 탑승객을 위해 사용되고 있었던 것이다.  

 

전문가는 배려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김동식 센터장은 지난해 12월 인구보건복지협회 주최로 열린 ‘임신경험으로 본 배려문화와 지원정책’ 토론회에서 “배려는 인식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실천이 동반돼야 (상대방에게) 배려가 된다”고 강조했다. 

 

반면 배려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주장도 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지난 1월15일 파이낸셜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무조건 임산부가 아니면 앉지 못하게 하는 것보다도 복잡한 시간대에는 다른 불편한 사람도 앉을 수 있게끔 하는 등 상황에 맞는 유연한 제도가 필요해 보인다”고 제도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장혜원 온라인 뉴스 기자 hodujang@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