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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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생활 길수록 “말해서 뭐해” 체념

[침묵하는 사회] ‘해체’ 운명 맞은 해경의 사례
“업무 향상 제안 땐 입장 난처 우려”
신입 6.8%·기존 직원 19% ‘그렇다’
세월호 침몰 사태와 함께 각종 문제점을 드러내며 창설 61년 만에 해체된 해양경찰은 ‘침묵 조직’이 몰락해가는 길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다.

고대유 경희대 행정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의 박사논문 ‘조직문화 인식이 조직침묵에 미치는 영향’(2014년)에 따르면 해경에서 조직생활을 하면 할수록 구성원이 침묵하는 경향이 강해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신입 해양경찰 117명과 현직 해양경찰 275명을 대상으로 ‘입장이 난처해질 것이 걱정돼 업무처리를 향상시킬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지 않는다’라는 물음을 제시했는데, 신입 해경은 6.8%가 ‘그렇다’고 답한 반면 현직 해경은 18.9%가 그렇다고 응답했다.

‘부정적인 피드백이 돌아올 것이 염려돼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다’라는 물음에는 신입 해경의 6.8%, 현직 해경의 21.1%가 ‘그렇다’고 답했다. 신입 해경의 9.4%는 ‘입장이 난처해질까봐 어떤 정보를 일부러 빠뜨리고 이야기하지 않을 때가 있다’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고, 현직 해경은 22.9%가 같은 대답을 했다.

조사 결과는 해경에서 조직생활을 하면 할수록 자포자기하는 마음에 입을 다무는 ‘체념적 침묵’을 하거나 자신이 위기에 빠질 것을 걱정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방어적 침묵’을 하는 성향이 강해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해경은 지난해 4월 세월호 침몰 사건 때 초기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해 수백명의 희생자가 발생하는 결정적 빌미를 제공했다. 사건 현장에 제일 먼저 도착한 해경 123정은 우왕좌왕하면서 ‘승객 퇴선을 유도하라’는 상부의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 정장은 이후 퇴선방송을 했다고 거짓말까지 했다. 결국 해경은 참사의 책임을 지고 해체됐다.

해경이 조직의 문제점을 제때 지적하고 고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는 점이 해경의 실책과 해체로까지 이어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강제상 경희대 교수(행정학)는 “해경의 조직침묵 현상을 해체에 이르게 된 하나의 계기로 볼 수 있다”며 “사람들이 침묵한다는 것에 대해 침묵이라는 단어만 생각하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침묵하는 사람의 의식 속에는 수동적 행동이 자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현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