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는 지난해 최소 두 차례 이상 문건유출에 대해 외부의 신호를 받았지만 위기의식을 갖지 않았다. 더욱이 청와대 참모진은 제대로 조사하지도 않고 입을 봉하기에 바빴다.
이렇듯 두 조직은 책임자급이 나서서 직위를 걸고 제 목소리를 내지 않다가 호미와 가래를 모두 동원해도 막기 어려운 조직 전체의 위기에 봉착했다. 조직을 위기에 빠트리는 ‘침묵 현상’은 대한항공과 청와대뿐만이 아니다.
조사에 따르면 그냥 넘어간 이유에 대해 42.1%는 ‘말을 해봤자 달라질 것이 없기 때문에’라고 답했다.
25.6%는 ‘내 말 때문에 조직 내 갈등이 생겨서 감정만 상하고 스트레스가 쌓일까봐’라며 걱정을 늘어놓았다. 이어 13.8%는 ‘윗사람에게 부정적 평가를 받을까봐’, 9.4%는 ‘튀는 사람 혹은 분란유발자 등으로 인식돼 왕따를 당할까봐’라고 답했다. ‘어차피 안 될 것’이라는 체념적 태도와 ‘나에게 불이익이 올지도 모른다’는 방어적 태도가 구성원들을 침묵하게 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몸 담고 있는 조직은 의견을 마음대로 말할 수 없는 분위기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는 32.4%가 ‘그렇다’고 답해 ‘그렇지 않다’고 답한 비율(23.3%)보다 높게 나타났다.
반면 ‘조직의 문제점이나 개선사항을 말하는 사람을 보고 괜히 갈등만 일으킨다고 생각한 적이 있는가’라고 물어본 것에 대해서는 23%가 ‘그렇다’고 답했다.
국민은 공공부문의 침묵을 가장 심각하게 걱정하고 있었다. ‘한국사회에서 불의나 잘못에 침묵하는 행태가 가장 심각한 분야’를 묻는 질문에는 47.7%가 ‘정치권’을 꼽았다. 이어 정부·공기업(27.9%), 기업(10.6%), 시민사회(9%) 순이었다. 정부에 할 말을 하지 못하고 끌려가는 여당과 정부 내에서 대통령의 말에 반기를 들지 못하는 분위기가 반영된 결과로 풀이할 수 있다.
고대유 경희대 행정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침묵현상은 의사소통을 가로막고 조직이 집단적 창의성을 발휘하는 것을 막아 구성원들이 무력감을 느끼게 하고, 이 같은 현상이 공공부문에서 나타나면 국민이 피해를 볼 수 있다”며 “한국사회에 만연한 침묵현상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현태 기자 sht98@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