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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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터키의 S-400 도입에 반대하는 이유는 [박수찬의 軍]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미국의 압박에도 러시아제 S-400 대공미사일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게티이미지

러시아제 요격미사일 S-400을 둘러싸고 미국과 터키의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S-400을 둘러싼 양국의 갈등은 유럽 내 미국-러시아의 패권 경쟁과도 관련되어 있어 접점을 찾기 쉽지 않다.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인 터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거듭된 경고에도 S-400 도입을 강행할 태세다. 터키는 러시아와 S-400 4개 포대분 25억 달러(약 2조7000억원) 어치를 구매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러시아는 S-400을 오는 8월 터키에 인도할 예정이다.

 

나토 회원국으로서 러시아의 남진을 저지하는 역할을 맡아오던 우방국의 ‘돌출행동’에 미국은 F-35A 스텔스 전투기를 앞세워 압박에 나섰다. 

 

터키 공군 F-35A 스텔스 전투기 1호기가 지난해 4월 6일(현지시간) 미 텍사스 포트워스의 록히드마틴 공장에서 출고되고 있다. 록히드마틴 제공

적이나 다름없는 러시아의 무기를 터키가 구매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는 미국은 “S-400 도입 계약을 다음달 말까지 취소하지 않으면 미국에서 F-35 전투기 조종 훈련을 받고 있는 터키 조종사들을 추방하고, 터키 기업들과의 F-35 전투기 공동생산 계약도 파기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 CNN 방송은 11일(현지시간) 애리조나 루크 공군기지에서 F-35 조종 훈련을 받던 터키 조종사 26명이 훈련 프로그램에서 제외됐다고 보도했다. 마이크 앤드루스 미 국방부 대변인은 “터키가 노선을 바꾸지 않으면 F-35 프로그램에 대한 터키의 참여를 계속 줄여나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터키는 F-35A 100대를 미국에서 도입한다는 방침이지만 S-400 구매도 예정대로 추진할 태세를 보이고 있어 미국이 F-35A의 터키 인도를 취소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美 “네트워크 시스템 통해 기밀유출 우려”

 

미국이 F-35A 판매 취소까지 거론하며 터키를 압박하는 것은 터키군의 네트워크 체계를 통해 미국의 스텔스 기술 정보가 러시아에 유출될 가능성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F-35A와 S-400이 터키군에 배치되면, 두 무기는 터키군의 영공 방어망에 통합된다. 오인 사격을 방지하기 위해 F-35A와 S-400은 각자의 기술적 특성에 대한 정보를 네트워크를 통해 주고받는다. 영공방어 훈련 과정에서 S-400 레이더에 포착된 F-35A의 흔적에 대한 전자정보도 S-400의 시스템에 남는다. S-400의 유지보수를 담당할 러시아 엔지니어들은 F-35A 관련 정보에 접근, 러시아로 정보를 보낼 수 있다. 이는 러시아군의 S-400이 F-35A를 탐지, 추적, 요격하는데 이용될 위험이 있다.

 

F-35A의 자율군수정보체계(ALIS)가 해킹을 당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자율군수정보체계는 F-35 전투기의 비행임무와 정비, 보급, 교육훈련 등 주요 현황을 통합 관리하는 네트워크 기반 프로그램이다. 터키가 효율적인 방공망 운영을 위해 S-400과 F-35A를 네트워크로 연결하면, 해커들은 S-400 시스템을 통해 자율군수정보체계에 접근하는 길이 열린다. 자율군수정보체계에 저장된 F-35A 데이터가 유출되면, 러시아 전투기에 대한 F-35A의 기술적 우위가 무너질 위험이 있다.  

 

러시아의 S-400 대공미사일 발사차량이 러시아 시민들이 보는 가운데 이동하고 있다. 위키피디아

미국이 유럽 우방국들과 추진중인 통합 방공망 구축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미국은 이란의 미사일 위협 대응을 내세워 루마니아에 이지스 어쇼어 미사일 탐지 시스템을 설치하는 등 미사일 방어망을 유럽에 구축하고 있다. 유럽 주둔 미군과 주둔국가의 방공망을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연결, 러시아의 위협에 대응하려는 의도다. 이를 위해서는 패트리엇(PAC-3)같은 미국제 무기나 나토 표준에 부합하는 유럽제 무기를 나토 회원국이 사용해야 한다.

 

그런데 터키가 S-400을 도입하게 되면 상호운용성을 발휘하지 못해 방공망에 ‘공백’이 생긴다. 러시아가 S-400 시스템을 활용해 나토의 방공망 네트워크에 접근하면 해킹에 의한 기밀유출 위험을 배제할 수 없다. 상호운용성을 발휘하지 못하면 미국을 중심으로 한 유럽 내 안보협력이 흔들릴 수도 있다. 우방국들이 미국제보다 값싼 러시아제 무기를 선택하지 못하도록 저지할 필요도 있다. 미국으로서는 F-35A의 단가 상승을 감수하더라도 터키의 S-400 도입을 저지해야 할 이유가 충분한 셈이다.

 

◆미국의 ‘러시아 네트워크’ 차단 가시화되나

 

터키의 S-400 도입에 맞서 미국은 주요 우방국들이 러시아제 첨단 무기를 도입하려는 움직임을 차단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패트릭 섀너핸 미 국방부 장관 대행은 6일(현지시간) “터키가 S-400 도입을 중단하지 않으면, 터키 방산업체들은 F-35 생산에 참여할 수 없을 것”이라며 터키를 압박했다. 터키 방산업체는 F-35 동체와 엔진 정비 등을 맡고 있다.

 

일각에서는 미 국방부가 터키를 배제하고 다른 공급처를 찾을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나, 공급처를 확보하려면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한데다 대당 가격 상승을 초래할 우려도 있어 실현 가능성에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이지스 어쇼어 방공레이더는 미국 미사일 방어체계의 일부다. 록히드마틴

터키가 미국의 거듭된 경고와 압박에도 “미국의 제재도 각오하고 있다”며 “러시아와 S-500(S-400 후속 모델) 공동생산도 논의하겠다”고 큰소리를 치는 것도 이같은 현실을 감안한 ‘베짱’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이스탄불에서 열린 국제방산전시회(IDEF 2019)에서 “터키가 없다면 F-35 프로젝트는 완전히 실패할 수밖에 없다”며 “터키를 F-35 프로젝트에서 축출하려는 자들은 사안을 심사숙고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반면 미국이 주요 우방국들과 러시아와의 군사관계를 단절하는 방안을 추진한다는 점에서 터키가 F-35를 도입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미국 군사전문매체 디펜스뉴스는 지난달 말 “미 국무부가 지난해부터 동유럽 국가들이 보유한 러시아제 무기를 미국제로 교체하는데 필요한 기금을 조성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프로그램 적용국가는 동유럽의 알바니아, 보스니아, 크로아티아, 그리스, 북마케도니아, 슬로바키아다. 

 

동유럽 세르비아 공군 미그-29 전투기들이 수도 베오그라드 공항 활주로에 주기되어 있다. 게티이미지

이들 국가는 나토 회원국이지만 비용 문제를 이유로 러시아제 Mi-8 헬기와 BMP 장갑차 등을 여전히 운용하고 있다. 미국이 기금을 조성해 이들 국가의 러시아제 무기를 미국제로 교체하면, 러시아는 무기 유지보수를 통한 수익을 잃게 된다. 러시아제 무기가 사라지면 러시아 군인들은 나토 회원국의 군사기지를 방문할 명분이 없다. 러시아 군인들이 무기 유지보수 작업을 위해 군사기지를 드나드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기밀유출 우려도 사라진다. 독일, 프랑스 등 서유럽 국가들의 무기수출 시도를 차단하는 효과도 거둘 수 있다.

 

미국이 기금까지 조성하면서 주요 우방국들의 러시아제 무기를 없애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상황을 감안하면, 터키의 S-400 도입이 현실화될 경우 미국은 F-35A의 터키 인도를 취소할 가능성이 적지 않아 향후 양국의 움직임에 관심이 집중된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